서울 여의도에 자리 잡은 한국지방세연구원은 다소 어수선했다. 4월 초순 개원을 앞두고 마지막 인테리어 작업이 한창이었다. 한강 조망이 빼어난 원장실도 책상과 회의용 탁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원장실이 크면 뭐 하겠습니까? 규모를 반으로 줄이라고 지시했어요. 소파도 갖다두겠다기에 필요없다고 했습니다. 직사각형 회의 테이블도 권위적인 느낌이 싫어 원탁으로 바꿀 생각입니다." 지난해 8월 행정안전부 차관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강병규(57) 초대 한국지방세연구원장은 여전히 격의 없고 소탈한 모습이었다.
지방세연구원은 지방세기본법에 따라 전국 244개 자치단체가 출연하는 재원으로 운영하는 재단법인이다. 국세를 주로 연구하는 한국조세연구원의 카운터파트 격인 셈. 지방세'지방재정에 대한 발전 방안, 지역 경제 현안과 이슈 등을 전문적, 체계적으로 연구할 예정이다. 올해 운영 예산은 40억원 정도로 현재 연구원들을 선발하고 있는 중이다. 지자체들은 공무원들을 지원인력으로 파견할 계획이다.
"지방세연구원은 지방재정 확충을 염원하는 모든 자치단체가 노력한 결실입니다. 경제와 사회 현상을 지방 시각에서 재해석하고 지방 세제, 재정의 역할과 방향을 도출하는 등 지자체의 싱크탱크 역할을 할 계획입니다. 지방세 분야는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영역이지만 제대로 된 연구가 없던 터라 실질적 지방자치 정착을 위한 초석이 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아직 정식 개원을 하지 않았지만 의욕만큼은 넘쳤다. "석'박사급 연구원을 24명 수준으로 운영할 예정인데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요즘 민간연구소, 국책연구소를 찾아다니며 우수한 인력을 스카우트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지자체의 공무원 전문화 교육, 재정 컨설팅, 공동 연구 프로젝트 수행도 할 수 있을 겁니다."
1977년 행시 21회에 합격, 공직에 입문한 강 원장은 '지방 행정의 달인'이라는 별명이 딱 어울린다. 경기도'부산시에서 사무관'서기관으로 근무했고 2005년부터 1년여 동안 대구 행정부시장을 지내 지역 사정에 밝다. 또 탁월한 업무실력 덕분에 5공때와 김대중 정부, 두 차례나 청와대에 파견근무하기도 했고, '친정'인 행안부에서는 감사관'자치행정국장'정책홍보관리실장'지방행정본부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현 정부 출범 때 행안부 차관 '0순위'로 꼽혔지만 '영남-고려대'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오히려 역차별을 받았다는 후문도 있다.
그를 이야기하면서 '아웅산 테러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1983년 10월 9일, 버마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 및 수행원들을 대상으로 북한이 아웅산 묘역에서 감행한 테러 현장에 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장관,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 등 17명이 숨졌다.
"5공 초기 대통령비서실장실에서 2년 3개월간 근무하면서 김경원'이범석'함병춘 비서실장을 잇따라 모셨습니다. 특히 함 실장님은 사건 당일 아침에 '마지막인데 둘이서 식사 한번 하자'며 부르셔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같이 아침을 들었습니다. 둘 다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면 청와대를 떠날 예정이었거든요. 아직도 폭탄이 터지기 직전 몇 걸음 뒤에 서 있던 저를 뒤돌아보시던 얼굴이 잊히지 않습니다."
그는 의성 옥산면 출신이지만 공군장교였던 부친을 따라 일찍 상경, 서울에서 경기중'경기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다. 그런 까닭에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는 거의 쓰지 않는다. 하지만 고향에 대한 애정만큼은 뜨거워 지역 발전을 위한 따끔한 충고를 잊지않았다.
"대구경북은 잠재력이 대단한 지역입니다. 인적 자원도 우수하고요. 그러나 시대흐름을 읽거나 장기 플랜을 마련하는 데 약한 편이라 안타깝습니다. 당장 지역을 위한 예산 확보도 중요하지만 대구경북만의 브랜드, 트레이드마크를 만드는 게 시급합니다. 공무원들의 중앙과의 인사 교류도 훨씬 늘어나야 하고 출향인사들의 노하우를 끌어내는 노력도 강화돼야 합니다."
공직에 있을 때보다 시간 여유가 있어 "인간답게 살고 싶은 마음에 요즘 음악'미술 공부를 하고 있다"는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하다. 초대 원장으로서 연구원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다음에는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딴 부인과 함께 사회봉사활동을 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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