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과거, 절망에 빠진 사람 도와야지…"

입력 2011-03-17 10:41:20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지진과 쓰나미 피해로 수많은 목숨이 희생된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며 일본을 돕자고 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지진과 쓰나미 피해로 수많은 목숨이 희생된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며 일본을 돕자고 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해선 안 되지."

16일 만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3'대구 달서구 상인동) 할머니는 대지진과 지진해일로 고통받고 있는 일본을 바라보며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안겨 준 일본이지만 무고한 생명들이 희생되는 모습에 분노보다는 안타까움이 앞섰다고도 했다.

"TV 화면으로 쓰나미가 마을을 덮치는 광경이 나오는데 손이 덜덜 떨렸어요. 일본이 과거에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분명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되잖아요."

할머니는 66년 전에 겪었던 고통스러운 순간이 지금도 뼛속까지 사무쳐 있지만 고통과 절망에 빠진 일본인들을 도와야 한다고 했다.

1944년 10월의 어느 날 밤, 열여섯 살 소녀는 군인들이 겨눈 총부리 앞에 내몰리듯 기차에 올라탔다. 집으로 보내달라며 애원하는 소녀에게 돌아온 건 무자비한 군홧발과 몽둥이세례였다. 소녀는 대구역에서 경주로, 다시 평양으로 실려 다니며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얻어맞았다. "차가운 개울물에 달달 떨고 있던 도라지꽃이 내 처지 같아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생사의 기로에 서길 수차례. 다행히 따뜻한 마음씨의 가미카제 대원을 만나 목숨을 건졌고, 폭격으로 무너진 방공호에서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에 대해 이 할머니는 "우리는 악랄하게 하면 안 된다"고 거듭 말했다. "진작에 과거사와 위안부 문제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하지만 우리 국민들이 과거사를 넘어 일본을 돕는다면 일본 국민들도 더 정신을 차릴 거예요."

일본이 빨리 참사를 딛고 일어서야 위안부 문제도 잘 해결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 할머니의 선한 마음 덕분일까. 본의 아니게 일본인 부부도 이 할머니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대지진이 일본을 덮치기 하루 전인 이달 10일. 이 할머니의 일본 초청 강연을 의논하기 위해 아오야키 부부가 할머니를 방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부의 집은 쓰나미가 덮쳤던 센다이시(市) 아오바구(區)였다. 이 할머니는 "아오야키 부부가 나를 만나러 한국에 온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고 하더라"며 다행이라고 했다. 이 할머니는 연락이 끊겼던 재일조선인 위안부 피해자인 송신도 할머니가 이번 지진에서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기뻐했다. 송 할머니는 가장 큰 지진 피해를 입었던 미야기현에 살고 있다.

이 할머니뿐만 아니라 과거사 관련 시민단체들도 대지진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일본 돕기에 나서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 모임인 나눔의 집과 민족문제연구소 등 한일 과거사 청산과 관련한 시민단체 32곳은 15일 공동 성명을 내고 "한일 과거사를 잊지 말아야 하지만, 이 엄청난 재난에 대해 일본시민과 재일동포를 비롯한 주일 외국인 등 모든 분들께 위로와 격려 그리고 협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매주 수요일 위안부 할머니들이 여는 수요집회도 침묵시위와 추모식으로 대체하고 일본을 도우자고 했다. 안경욱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대표는 "역사적 감정은 좋지 않지만 일본이 마주한 커다란 재앙 앞에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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