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당시 중국은 장칭(江靑'1914~1991)을 비롯한 4인방(四人幇'4명의 불량배)의 시대였다. 문화혁명의 와중에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1월 사망했고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은 죽기 직전이었다.
7월 28일 새벽 3시 42분 허베이(河北)성 탕산(唐山)시에서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 전대미문의 참사가 빚어졌다. 이 참사는 4인방의 보도통제 지시로 바로 알려지지 않았다. 인민해방군 10만 명이 동원돼 삽과 곡갱이로만 구조작업을 벌였다. 세계 각국의 지원 제의가 쏟아졌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자력회복만 외쳤다. 뒤늦은 구조와 열악한 의료시설로 인해 사망자가 24만2천여 명, 중상자 16만여 명. 20세기 최대 참사였다. 그러나 비공식적인 사망자는 65만 명에서 80만 명으로 전해졌다.
이 참사는 4인방을 몰락시키는 계기가 됐다. 가택연금된 덩샤오핑(鄧小平)과 추종자들은 4인방의 참사 은폐와 구조 소홀을 맹비판했고 4인방은 그해 11월 체포됐다. 1914년 3월 어느날, 산둥성에서 태어나 배우생활을 하다 마오쩌둥의 세 번째 부인이 돼 그토록 권력에 집착하던 그녀도 대자연의 힘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지진이 권력투쟁에 이용된 극단적인 사례다.
박병선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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