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서 논술 톺아보기] 논술폐지, 그 다음이 문제다

입력 2011-03-15 07:42:40

지난달 28일, 지역 명문 경북대학교 대학입학시험에서 수시논술고사를 폐지한다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여전히 토요논술학교는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처음보다는 그 열기가 훨씬 줄어든 상황이다. 대구광역시교육청 논술교육 동아리 공모에 대한 공문이 전달되었지만 학교 현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여전히 대한민국 교육은 대학입학시험의 변화에 의해 좌우된다는 만고의 진리(?)가 다시 한 번 확인되는 순간이다. 2009개정교육과정이 고시된 이후 학교 현장은 정신없이 바빴다. 기대와 우려가 반복되면서 교사들의 업무는 가중되었지만 정작 학부모들은 별로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교육과정이 대학입학시험의 하위 기준이라는 것이 대한민국 교육의 풍경이다. 모든 학교가 교육과정에 따라 정상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바르고 빠른 길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인가?

스스로 자율화라는 화두를 던진 것은 현 정권의 교육 담당자들이다. 자율화가 도대체 무엇인가? 자율화를 강조하면서 바람직한 정책조차 부정하는 그 속내를 진정 알 수 없다. 사교육에 대한 문제가 교육의 본질보다 앞선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교육정책이 사교육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면 오히려 학교교육에 매질을 가해 그런 정책이 학교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할 것이다. 그로 인해 바람직한 정책조차 부정하는 것은 학교교육의 무기력을 키우는 지름길일 뿐이다. 본말이 전도된 이러한 교육정책은 답답하다 못해 한심하다. 하나의 정책이 폐지되었다면 분명 그 정책을 대신할 새로운 제도가 시작될 게다. 하지만 학교교육은 새로운 정책에 적응하는 속도가 더디다. 예상하지 못하는 교육정책은 사교육의 배만 더욱 불릴 뿐이다. 아마 경북대학교의 이번 결정에 대해 사교육 시장은 환호성을 지르고 있을 게다. 그리고 경북대학교의 다음 발표를 기다리고 있을 게다.

경북대학교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지난해 11월 2011년 대학입학시험에서 논술고사를 확대한다는 경북대학교의 발표가 이미 있었던 터였다. 하지만 교육과학기술부의 요구를 국립대학교가 무시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교과부의 지원이 줄어든다면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이 힘들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작용했을 것이다.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번 경북대학교의 결정은 잘못되었다. 기나긴 전통을 지닌 명문 국립대학교가 결국은 자본에 굴복하였다는 것은 학문의 전당인 상아탑조차도 자본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번 결정의 여파는 오래갈 게다. 물론 그 모든 것은 경북대학교 자신의 몫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도 존재한다. 아마도 논술 폐지를 발표하는 순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전혀 논술을 준비하지 않았던 교사와 학생들이다. 준비하지 않았던 학생들에게는 논술 전형으로 뽑던 학생들의 숫자만큼 지원 가능성은 더 열리는 것이니까. 하지만 대학입학시험도 하나의 평가제도라면 준비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줘야할 것인가, 아니면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유리해야 할 것인가? 교육정책이 단순히 표면적인 여론에만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셈이다.

'드라마에서는 NG가 나면 씩 한번 웃어주고 다시 찍으면 그만이지만 교육 현장에는 NG가 없다.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아이들을 만나야 하고, 교육이라는 포기할 수 없는 전제 아래 교단에 서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교육은 어렵고 교육정책의 변화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경북대학교 논술고사의 폐지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폐지가 바꿀 수 없는 결정이라면 남은 것은 앞으로의 선택이다. 대학 측에서도 나름대로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논술고사에 대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교사와 학생들에게 깊은 상처로 남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나름대로의 도움을 줄 수 있는 전향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공은 경북대학교 입시담당자들과 정책 연구원들에게 다시 넘어갔다.

한준희(대구통합교과논술지원단, 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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