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 먹는 음식 재료이고, 공자를 기리는 석전대제 행사 때 쓰였으며 충성심을 상징하는 채소이자, 세 가지 덕을 가졌고, 조선 성균관에서 심어 유생들의 부식으로 사용했으며, 성균관을 달리 표현할 때, 혹은 인재 등용을 이야기할 때 거론되는 채소가 있다. 바로 미나리(芹)다.
봄철 입맛을 돋우고 혈액을 맑게 해주는 등 많은 효능 덕분에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미나리를 품격 있는 채소로 대접하며 오랜 세월 애용했다. 부처님 오신 날 불살생(不殺生)을 실천하기 위해 채소 중심으로 된 소찬(素饌)을 먹었는데 '미나리 강회'가 그것이다. 요즘 한식 조리기능사 시험에도 나온다고 한다.
선조들은 또 초목에 품격을 매길 때 나무의 으뜸으로는 늘 푸른 소나무를, 꽃의 으뜸은 눈 속에 피는 매화를, 야채의 으뜸으로는 응달의 수렁에서도 잘 자라는 미나리를 꼽았다. 아울러 근채삼덕(芹菜三德)이라며 미나리를 '세 가지 덕을 가진 식물'로 여겼다. 더러운 물을 맑게 하며, 응달에서도 잘 자라고, 가뭄에도 잘 이기는 식물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미나리는 '밭을 가는 농부가 먹어보고 맛이 너무 좋아 임금에게 드리기 위해 부잣집에 바쳤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야인헌근(野人獻芹)이란 말처럼 '사소한 것도 임금부터 생각하는 충성심'을 나타내는 식물로 일컬어지고 있다.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는 '소나무나 매화가 아버지라면 미나리는 어머니'라고 읊었고, 중국 시경(詩經)은 인재를 발굴하는 것을 '미나리를 뜯는다'는 뜻의 채근(菜芹)이란 말로 표현했다.
이런 배경 때문일까. 조선조 유학 교육 담당 기관인 성균관을 근궁(芹宮'미나리궁)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성균관 안에 미나리를 심어 유생들 부식으로 했다는 데서 유래한 듯하다. 성균관 역사에 대한 기록인 조선조 문인 윤기의 '반중잡영'에 따르면 공자를 기리는 석전대제를 석채(釋菜)라고 부르기도 했고 '나물을 벌여 놓는다'는 뜻인 석채 때 미나리가 사용됐다고 한다. 미나리 '대접'이 상당했음을 짐작게 한다.
요즘 곳곳에서 미나리 생산 소식이 들려온다. 그 속엔 미나리밭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농사짓는 경북 청도 농부 장병기(54) 씨의 '펀(fun) 농업' 이야기도 있다. 세칭 '상하이 마타하리'(덩신밍) 사건으로 연일 시끌시끌한 봄 같지 않은 이 봄, 장 씨 이야기는 미나리 향처럼 상큼하다.
정인열 중부지역본부장 oxen@msne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