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들꽃마을' 최영배 신부

입력 2011-03-12 07:44:04

"참사랑 의미 전하고파 가수 김태우에게 노랫말 7곳 써줬죠"

20년 넘게 소외된 이웃을 돌보고 있는 사회복지법인
20년 넘게 소외된 이웃을 돌보고 있는 사회복지법인 '들꽃마을' 창설자 최영배 신부.
들꽃마을 지킴이를 순명((順命)으로 받아 들인 최 신부의 웃음은 봄 햇살 마냥 따뜻하다.
들꽃마을 지킴이를 순명((順命)으로 받아 들인 최 신부의 웃음은 봄 햇살 마냥 따뜻하다.

사회복지법인 '들꽃마을'을 만들어 소외된 이웃을 돌보고 있는 최영배(세례명 비오·57) 신부. 알아 주지 않는 길을 20년 넘게 묵묵히 걸어온 그의 외길 인생은 복지사각 지대를 밝히는 빛과 소금이 되고 있다. 입소문을 타고 조금씩 행적이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지만, 그는 낮은 곳을 향하는 한결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첫 인상도 영락없이 마음씨 좋은 동네 쌀집 아저씨였다. 포항들꽃마을 식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기자가 왔다는 말을 듣고 밖으로 나온 최 신부는 근엄하기보다 수더분했다. 사제가 아니라면 포항들꽃마을 식구와 구분이 잘 되지 않을 만큼 소외된 이들의 삶에 동화된 그의 모습에서 인생 행적이 그대로 느껴졌다.

◆"신부 될 생각은 감히 못했죠"

가정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 4학년을 다니다 중퇴한 소년이 있었다. 친구들이 학교 가는 시간에 소년은 돈을 벌기 위해 공장으로 향했다. 소년의 손에는 책 대신 공구가 쥐어져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소년은 공부가 미치도록 하고 싶었다. 공부가 싫어서 학업을 중단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던 것. 환경을 탓하며 마냥 앉아 있을 수 없었던 소년은 주경야독의 길을 선택했다. 공장 일을 마치면 곧바로 학원으로 갔다. 당시 소년의 팔에는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이 가득 적혀 있었다. 일하는 틈틈이 팔을 보며 공부를 했다. 어린 나이에 남들보다 두 배 더 바쁘게 산 덕분에 소년은 초·중·고졸 검정고시 합격증을 차례로 손에 쥐었다. 최 신부의 어릴적 이야기다.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최 신부는 야간 대학에 진학하려고 했다. 그러다 성당에서 열린 예비 대학생 모임에 간 것이 계기가 돼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됐다. "가톨릭이 모태 신앙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신부님은 늘 존경과 공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제가 신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했습니다." 최 신부는 야간 대학 대신 대구가톨릭신학대학에 진학해 1988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사회복지에 MB식 경제논리 투영은 곤란"

최 신부가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일에만 매진한 이유도 어릴적 겪었던 가난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가난을 겪어 보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의 처지를 더 잘 이해하고 한결같이 그들 곁을 지킬 수 있었던 것 같다. 최 신부는 현재 포항들꽃마을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포항들꽃마을은 연고는 있지만 보살펴 줄 사람이 없는 노인 40여 명이 삶의 터전으로 삼은 곳. 복지시설이지만 정부지원금은 받을 수 없다. 연고가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까닭에 지원대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최 신부는 강의 수익금과 후원금 등으로 포항들꽃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정부지원을 받지 못해 살림은 넉넉하지 않다. 하지만 최 신부는 부족한 삶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있다. "넘치는 것보다 조금 모자라는 것이 오히려 좋습니다. 복지시설에 돈이 쌓이면 욕심이 생기고 부패의 원인이 됩니다. 운영자의 편익을 위해 인위적으로 일을 벌이지 않으면 운영비가 모자랄 이유가 없습니다. 섭리에 따라 일을 추진하면 운영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일은 없습니다."

최 신부는 시장 논리에 물들고 있는 한국의 사회복지 시스템에 대해 우려감을 표시했다. "사랑과 희생을 먹고 자라는 사회복지가 자본의 논리에 좌우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에 경제 논리가 적용되면서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은 현 정부 들어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경제 논리를 앞세우니 사회복지도 경제 논리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의 소프트웨어인 사랑과 희생이 메말라 가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가 메마르면 하드웨어는 무용지물이 됩니다. 국민들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대통령의 역할입니다."

◆가수 김태우에게 가사를 써 준 사연

올해 사제 서품 23주년을 맞은 최 신부는 대구 대봉천주교회 보좌신부로 첫 부임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교회가 많이 세속화 되었음을 느낀다고 했다. 사랑이 교회의 가장 큰 재산인데 교회가 점점 그 재산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그는 교회 대중화를 주장하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세속화 문제를 거론하면서 대중화를 주장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최 신부가 생각하는 교회 대중화 의미를 들어보면 고개가 끄떡여진다. 그가 말하는 교회 대중화는 일종의 교회 본질(사랑) 회복 운동이다. "대중들의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기 위해 이 시대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적극적으로 사랑을 전파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교회는 너무 엄숙했고 자기만의 영역에 갇혀 있었습니다."

최 신부는 최근 가수 김태우(전 GOD 멤버)의 부탁을 받아 7곡의 가사를 써줬다. 김태우가 가을에 발매할 신곡에 사용될 가사들이다. 그가 가사를 써 준 이유도 교회 대중화와 맥이 닿아 있다. "몇 달 전 지인 소개로 김태우씨를 만나 인연을 맺었습니다. 가사 주제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공동체적인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사랑을 합니다. 사랑이 개인화되다 보니 이혼율이 높아지는 등의 사회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올바른 사랑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가사를 써 줬습니다."

◆책을 출간한 이유도 사랑 때문

15년 전 최 신부는 미국 LA를 방문해 한인들을 대상으로 설교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설교를 들은 김창렬 주교가 설교 내용이 감동적이라며 글을 써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그는 글 재주가 없다며 거절했다. 그러자 김 주교가 "당신이 가진 것은 누구 것입니까? 당신 것입니까? 예수님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스스럼없이 "예수님 것입니다"고 답했다. 이 말을 들은 김 주교가 "그러면 최 신부가 글을 쓰고 말고 할 권리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최 신부는 2002년 첫 단상집을 펴낸데 이어 지난해 두번째 단상집 '빈 그릇'을 출간했다. 경제적 가치를 우선적으로 쫓는 각박한 현대인에게 사랑과 감사의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서다. '빈 그릇'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가슴으로 쓴 글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 잊을 수 없는 일화도 있다. 책을 낸지 얼마 안돼 불교 신자 한명이 최 신부를 찾아왔다. '빈 그릇'을 읽고 감동을 받아 포항들꽃마을을 방문한 것이다. 불교 신자는 인생을 일깨우는 소중한 글이 담긴 책을 교도소 재소자에게 보내자고 제안한 뒤 1천권을 선뜻 기증했다. 불교 신자가 기증한 책은 대구·포항·경주 교도소에 보내져 재소자들의 영혼을 살찌우는데 소중히 활용되고 있다.

이후 최 신부는 '빈 그릇'을 교도소에 보내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교도소 재소자와 우리는 같은 죄인입니다. 재소자들은 죄가 드러나 자유를 구속당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죄가 드러나지 않아 신체적 억압을 받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책 한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사회가 얼마나 밝아지겠습니까. 책을 직접 구입해 보내주고 싶지만 여력이 안돼 후원의 손길(054-262-9093)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정이 희망이다"

최 신부는 계획을 세워 일을 추진하지 않는다고 했다.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고 살아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에 오늘을 충실히 살면 계획을 세우지 않더라도 일이 순리대로 풀린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최 신부도 유일하게 계획한 일이 있다. 가정이 부서져 갈 곳을 잃은 들꽃마을 식구들에게 가정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그는 올해 안으로 포항들꽃마을 뒷편에 주택 한채를 지어 7명의 식구들이 서로 의지하며 살 수 있는 보금자리로 제공할 생각이다. "가정은 사랑의 출발점입니다. 가정이 바로 서야 개인과 국가가 바로 섭니다. 들꽃마을 식구들이 가정을 제대로 꾸려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기우입니다. 수백만년 동안 진화를 거듭하며 환경에 적응해 온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충분한 자생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자생력을 키워주기 보다 자생력을 억누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한국의 복지제도는 개선되어야 합니다." '빈 그릇'에서 최 신부는 순명((順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들꽃마을 지킴이를 자신의 순명으로 받아들인 그의 웃음은 봄 햇살 마냥 따뜻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천주교대구대교구 들꽃마을재단은…

재단 산하에는 고령들꽃마을과 포항들꽃마을·들꽃노인복지센터·민들레공동체·그룹홈 등이 있다. 재단 영성지도 신부를 맡고 있는 최 신부는 1989년 고령천주교회 주임신부로 부임한 뒤부터 소외된 이웃을 보살피다 1993년 고령들꽃마을을 설립했다. 이어 2006년에는 포항들꽃마을, 지난해에는 들꽃노인복지센터와 민들레공동체를 만들었다. 부랑자 시설인 고령들꽃마을에는 현재 1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포항들꽃마을 인근에 위치한 민들레공동체에는 중증장애인 30여명이 생활하고 있으며 들꽃노인복지센터에서는 노인 요양보호 뿐 아니라 방문 목욕, 방문 빨래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대구에서 운영되고 있는 그룹홈에는 연고 없는 중·고·대학생 40여명이 거주하며 학교에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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