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긋한 고분 따라 쉬엄쉬엄, 신비감에 탄성 절로
봄을 만끽할 수 있는 색다른 즐김은 없을까?
풋풋한 미역냄새가 풍기는 바닷가 여행도 좋다.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달성공원 나들이도 좋겠다. 하지만, 유난히 고향의 흙길을 걸으며 새롭게 움트는 삶의 생기를 느껴 보고 싶다면 고령의 '대가야 왕릉길'이 어떨까? '왕릉길'은 특이한 체험이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1천500년 전의 조상과 만날 수 있다.
3월의 초입, 봄볕이 따사로운 날. 대가야의 도읍지인 경북 고령으로 향하는 여정은 신비감으로 가득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1천500년 전으로 돌아가 대가야 주민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이뿐이랴. 잘하면 악성 우륵 선생의 가야금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고령의 왕릉길 걷기는 대가야 박물관 탐방부터 시작한다. 찬란했던 대가야의 문물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지척에 대가야 왕릉 전시관이 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확인된 대규모 순장무덤인 지산동 44호 고분을 재현했다.
32명의 생사람을 죽여 순장한 이 잔인한 무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대가야 사람들은 이승의 삶이 내세에 이어진다고 믿었던 것일까. 이용호 문화관광해설사는 "아이를 감싸 안은 어른의 유골이 누운 자세 그대로 발굴된 것도 있다"고 설명한다.
대가야 고분군은 왕릉전시관 뒤 지산리 산 능선에 밀집해 있다. 처음엔 약간 오르막길이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 오르면 고분군이 오롯이 나타난다.
산 능선을 따라 펼쳐진 고분군의 모습은 장관이다. 이곳의 고분군은 30호부터 시작된다. 작은 산봉우리 같은 고분 군락이 연이어진다.
고분 사이를 걸으면 고분군 속의 주인공이 궁금해진다. 정상으로 갈수록 무덤의 규모가 커진다. 한참을 오르면 44호 고분이다. 높이 6m, 지름 27m가 넘는 규모의 거대함에 놀란다. 이렇게 큰 무덤이어서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무덤을 파헤치고 싶어했던 것일까? 비탈길을 좀 더 오르다 보면 지산동 고분군 중 가장 큰 47호가 나타난다. 주변에 있는 48호, 49호, 50호, 51호 등 4개의 거대한 고분이 당당하게 맞는다. 지금까지 밝혀진 대가야 왕국의 고분군은 모두 704기. 이 중 이름이 밝혀진 왕은 47호 고분의 주인인 '금림왕' 1명뿐이다.
첫 시작인 30호부터 47호까지는 '선택의 능선'이다. 이용호 문화관광해설사가 붙인 이름이다. "이곳까지 올라오는 것은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이제부터는 대왕릉의 행진이다. 장대한 고분군이 어깨선을 나란히 하며 산상으로 오를 듯한 기세로 뻗어 있다. 51호 고분까지의 길은 '운명의 능선'이다. 이 해설사는 "이곳에 오를 때까지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라"고 한다. 51호 고분까지 올라야 비로소 고분군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왕릉의 능선 오른쪽으로 고령읍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해설사는 고령읍 시가지를 보면서 "해질녘에 가장 멋진 장면이 펼쳐진다"고 설명한다.
본격적인 등산을 원하면 51호 고분 앞에서 서쪽 능선 오솔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미숭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다. 지산리 고분군은 대가야 통문을 건너 또 다른 고분군이 있다. 길 옆 참나무와 소나무는 모두 베어냈다. 그 사이로 희미한 흔적이 남아있는 흙더미가 수십 개다. 고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다. 한결같이 윗부분이 푹 꺼져 있다. 도굴의 흔적들이다. 이 같은 모습들은 고분군이 끝나는 지점까지 계속 이어진다. 고분군이 끝나는 지점에서 산길을 돌아 왼편으로 내려서면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다.
다음 달 7일부터 10일까지 이곳에서 '대가야 체험축제'가 열린다. 이곳을 나서면 곧 대가야박물관 주차장과 맞닿는다. 대가야 고분관광로 구간은 약 4㎞.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이홍섭기자 hslee@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가는 길=경부고속도로~88고속도로~동고령 IC에서 내린다. 고령읍 시가지에서 고령군청을 지나면 곧 대가야박물관과 왕릉전시관, 지산리 고분군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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