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낙동강 시대] (34)구미 강정마을<2>

입력 2011-03-09 07:25:11

"옛날엔 해평장이 컸거든 여기서 다 배타고 갔지 사람도, 소도, 곡식도

눈덮인 강정을 하늘에서 내려다봤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눈덮인 강정을 하늘에서 내려다봤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강정나루가 있던 낙동강 주변은 현재 낙동강사업이 한창이다.
강정나루가 있던 낙동강 주변은 현재 낙동강사업이 한창이다.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온 장진훈 씨의 배와 어구. 낙동강 사업으로 지금은 손을 놓고 있다.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온 장진훈 씨의 배와 어구. 낙동강 사업으로 지금은 손을 놓고 있다.

강은 엄마의 품처럼 넉넉한 젖줄이 된다. 때론 화를 내며 악마처럼 상처를 주기도 한다. 강정마을에서 강은 생명의 젖줄로도, 마을을 할퀴고 간 수마의 원천이기도 했다.

구미시 고아읍 예강2리 강정. 물이 귀한 강정마을에서 낙동강은 식수·생활용수·농업용수였다. 그 강줄기를 타고 소금과 곡식, 사람이 드나들었고, 근대까지 주막이 흥청댔다. 강정나루는 사람과 물자, 정보의 집약지였고, 뱃사공은 물류와 교통, 정보를 소통시키는 매개체였다. 강정은 물류와 교통의 중심지에서 1965년 큰 물난리 이후 경지정리와 배수로 건설로 풍부한 농산물 생산지로 탈바꿈했다. 강정은 물의 애환과 더불어 450년을 이어온 마을이다.

◆강정나루, 사람과 물자가 몰리다

매학정(梅鶴亭) 남쪽 숭선교 인근 강정나루터. 이 나루는 옛날 과거길, 소금배의 경유지부터 농사용 뱃길, 장보러 가는 길까지 물류와 교통의 주요 길목이었다. 구미 고아읍과 해평면을 잇는 강정나루는 선산읍 원리 강창나루, 비산동 비산나루와 함께 구미지역 3대 나루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한양으로 향하는 소금과 곡식, 과거보러 가는 이들이 이 나루터와 배를 이용했기에 나루터 주변은 사람과 물자의 왕래가 빈번했다. 주민들은 일제 강점기까지 부산 소금배가 강정나루까지 올라왔다고 했다.

배경돌(88) 씨는 "옛날 그때는 철로도 없고, 차도 없으니까 소금배가 들락날락했다니까. 소금배가 여기서 오면 쉬어가고 그렇게 했지. 일제시대까지"라고 말했다.

해방 이후에도 나루터와 배는 강 건너 해평면을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교통로이자, 수단이었다. 해평 들판에 채소 등 농사를 짓기 위해서, 해평장에 물건을 사거나 농산물을 팔기 위해서 강을 건너야만 했던 것이다. 특히 해평 장날이 되면 이 나루는 항상 북적거렸다. 장날에는 강정 사람들은 물론 남서쪽 항곡리, 봉한리 사람들까지 이 나루를 이용했다. 이 때문에 강정나루 옆에는 1970년대 초반까지 해평장을 향하는 장사꾼들을 위한 주막이 8곳이나 있었다고 한다.

황만순(83) 씨는 1960년대와 70년대 술도가에서 막걸리를 떼다 파전 등 안줏거리를 마련해 해평장 장사꾼, 강 낚시꾼, 해평에 볼일 보러 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다고 말했다.

강정나루에는 소와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는 큰 배와 사람들만 주로 탈 수 있는 배 등 2척이 있었다. 당시 일당을 받고 종종 배를 몰았던 이장수(80) 씨는 강정나루 배와 해평장에 대해 회고했다.

"해평장이 컸거든. 소가 짐 이고 마이(많이) 건너요. 나도 소 많이 건네 줬거든. 옷 보따리 장사, 오만 장사 다 있었지. 한 배에 소가 여섯 마리씩 실려."

◆배 고사, 안전운항을 빌다

강정나루에 사람과 물자가 많이 몰리던 시기 안전한 배 운항을 바라는 '배 고사(告祀)'까지 지냈다고 한다. 배 고사는 마을 제사와 함께 1970년대 후반까지 계속됐다. 매년 음력 1월 14일 밤 강가에 배를 정박해 놓은 뒤 나루터에 뱃사공을 비롯한 주민들이 몰렸다. 밤 12시 이전에 깨끗한 자리를 깔고 촛불을 켠 뒤 새로 산 그릇에 새로 만든 음식을 올려놓는다. 나룻배를 운영할 사람이 초헌관(신위에 처음 술잔을 올리는 사람)이 돼 잔을 올리고, 아헌관(두 번째 술잔 올리는 이), 종헌관(마지막 술잔을 올리는 이) 등 다른 뱃사공들이 뒤를 이었다. 또 소지(燒紙; 흰 종이를 불사르며 신에게 소원을 빔)를 올리며 한 해 동안 나루에서 사고가 없도록 천지신명과 용왕에게 빌었다고 한다.

배 고사가 끝난 뒤에는 제사에 참여한 사람과 구경꾼들이 함께 제사음식을 나눠 먹고, 용왕과 객신이 먹을 수 있도록 강물에 던져놓기도 했다.

양상학(72) 씨는 "나루터 옆에 박아 놓은 말뚝에 배를 매 놓은 뒤 거기서 고사를 지냈지. 제관은 깨끗한 사람, 일년에 궂은 일도 안 보고 부모가 아프지 않은 집에서 정했잖아. 올해 혹시나 사람이 다칠까 용왕님한테 잘 해가지고 사고 없이 해 돌라고 지냈지"라고 말했다.

강정 사람들은 1982년 나루터가 없어진 뒤 1997년 숭선교가 건설되기까지 15년 동안 해평으로 가는 길이 크게 불편했다. 해평장에 가거나 강 건너 농사를 짓기 위해 멀리 일선교까지 둘러가야 했고, 급할 때에는 마을에서 유일했던 장진훈(71) 씨의 고기잡이배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낙동강, 넉넉한 품으로 안다

강정의 낙동강은 주민과 마을 아이들의 제2의 생활공간이었다. 주민들의 놀이터였고, 주요 식수원이자 농업·생활용수로도 활용됐다.

봄에는 아낙네들이 희초(마을 여인네들이 1년에 한 차례 집안일을 하지 않고 갖는 봄놀이)를 즐기는 장으로, 여름에는 아이들의 물놀이장이 됐다. 특히 무더운 여름밤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기를 피해 강변 모래사장에서 하룻밤을 지새우는 피서지가 되기도 했다.

아이들은 드넓은 모래사장에서 '장치기'(아이스하키처럼 나무막대기로 나무공을 치며 노는 게임) 등 놀이를 즐기면서 마음껏 뛰놀았다. 매학정 바로 밑 깊은 물은 다이빙과 잠수, 수영을 하는 물놀이장이었다.

강은 일부 주민들에게 생계터전이 되기도 했다. 장진훈(71) 씨는 한동안 고기잡이배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아 선산읍 북산리에 내다팔기도 하고, 매운탕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물난리, 강정을 변모시키다

강정은 1965년 큰 물난리를 겪었다.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길 정도로 피해가 컸지만, 마을의 변화와 발전을 가져오는 획기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해 장마철 큰물이 낙동강 제방을 뚫고 흘러넘치자, 외지에서 강정으로 들어오기 위해 아랫동네인 항곡리에서 배를 타야만 했다. 당시 마을 전체 50, 60가구 중 세 집 빼고 모두 굴뚝까지 물이 차올랐다고 한다.

딸을 시집보낸 뒤 그 날 처음 시댁을 찾은 권정순(68) 씨의 친정어머니는 마을 뒷산인 옥산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딸이 평생 살아야만 하는 동네에 대한 서글픔'에 눈물을 훔쳤다고 했다.

배근호(60) 씨는 "마을이 강이 돼 뿌렸지. 저 항곡 동네에서 우리 동네까지 배 타고 들어왔어"라고 말했다.

임춘근(73) 씨는 "그해 물이 들어서 그놈의 흙이 다 떠내려가고 나니깐 제방 위가 1m50cm에서 2m 정도 날아간 거라. 완전히 상단부가 없어"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물난리는 1963년 쌓은 낙동강 제방이 일부 허물어져 주민들이 군에 신고를 했는데도 제대로 보수공사를 하지 않은 바람에 장마철을 맞아 제방이 터지면서 발생했다는 것.

임춘근 씨는 "둑 쌓는 건 1963년도에 완료했는데. 1965년도에 호안공사 해놓은 게 수문 옆에 구멍이 생긴 거라, 공사를 잘못해 가지고. 물 좀 샌다고 신고를 했는데, (보수공사를) 안 한 거라. 그게 내려앉아서 터졌어 "라고 말했다.

1965년 물난리 이후 강정은 변화의 바람을 탔다. 이전까지만 해도 일제 강점기 세웠던 양수장이 강정을 비롯한 주변 넓은 들에 물을 대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던 터였다. 그 해 가을 제방공사, 농경지 정리, 배수로 공사 등을 통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셈이다.

논에 물 대기가 쉬워져 이모작을 시작했다. 초봄에 감자를 심으면 6월 초순에 수확할 수 있는데, 이 때부터 논에 심은 감자를 캐내고 다시 모를 심어 벼를 수확할 수 있었던 것이다.

논밭에 물대기가 수월해지고 경지정리를 통해 재배면적을 넓히면서 단무지, 감자, 당근 등 특용작물 수확을 늘리고, 이모작을 통해 다른 마을에 비해 많은 수확과 수입을 올리게 됐다. 상당수 소작농이었던 강정 사람들은 이를 기점으로 일부는 부농의 꿈을 이루기도 했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공동기획:매일신문·(사)인문사회연구소

◇마을조사팀 ▷작가 이가영·김수정 ▷사진 박민우 ▷지도일러스트 권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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