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륜 어긴 잔혹 범죄 증가… 존속살인 비율 2년새50%나 늘어
요즘은 신문을 펼쳐들기 무서운 세상이다. 남편이 아내를, 아들이 부모를 살해하는 '존속살인'이 잇따르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존속살인은 평균 5.5일에 한 번 꼴로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천륜을 져버리는 잔혹 범죄가 끊이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가족애(愛)'가 점점 옅어져 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핏줄'보다는 '내'가 우선시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가족 간의 사소한 갈등마저도 종국에는 있어서는 안될 '범죄'로 표출되는 것이다.
◆가족범죄 만연한 우리 사회
요즘은 부모 자식 간의 '사소한 갈등'도 살인으로 연결된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존속살인은 2008년 44건, 2009년 58건, 2010년 66건으로 2년 사이에 50% 늘었다. 형법상 규정돼 있지 않는 비속살인까지 포함하면 패륜범죄는 2, 3일에 한 번 꼴로 발생하는 셈이다. 전체 살인에서 차지하는 존속살인 비율도 2008년 4.0%, 2009년 4.2%, 지난해 5.3%로 소폭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2009년 기준 미국 2%, 프랑스 2.8%, 영국 1%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다.
예전에는 부모의 재산이나 보험금을 노리고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연애'혼수'이사'취업 문제 등 사소한 갈등에서 비롯된 경우도 많다. 지난해 10월에는 중학생 아들이 아버지가 자신의 예술고 진학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집에 불을 질러 아버지, 어머니, 동생, 할머니 등 일가족 네 명을 숨지게 했으며, 지난 12월 충북 보은에서는 대학생 임모(19) 군이 여자친구와의 교제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조부모를 수십 차례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같은 해 9월 경기 성남에서는 술을 먹지 말라고 꾸짖는다는 이유로 70대 아버지를 흉기로 살해한 30대 아들도 있었다.
가족 내 범죄는 비단 살인사건 만이 아니다. 존속 폭행이나 상해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존속살인은 충동적인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저지르는 경우가 많지만, 폭행과 상해는 주로 상습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이다. 존속 폭행의 경우에는 2006년 453건이던 것이 2008년 538건, 2009년 533건 등으로 매년 증가추세에 있으며, 존속 상해는 2006년 507건에서 2008년 476건, 2009년 419건 등으로 소폭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매년 400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해체되는 가족
사실 우리 사회에서 가족해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1970~80년대 전통적인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분화했고, 2000년대 이후부터는 핵가족화가 더욱 심화되는데다 늦은 결혼과 저출산, 이혼율 증가가 겹치면서 '1인 가족'의 숫자도 급증하고 있는 것.
문제는 가족이 점점 쪼개짐에 따라 과거 가족공동체가 담당해왔던 윤리의식 등의 교육이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사회 병리현상이 표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빠르게 서구의 문화가 우리 전통 가치관과 갈등을 겪으면서 오히려 잘못된 방향으로 뒤틀리고 있는 현상도 보여진다. 박성주 한국문제해결상담연구소장은 "가족해체 현상을 가속화하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이기주의의 심화"라고 지적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엄연히 다르다. 개인주의는 나와 남을 동시에 인정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나'만을 극도로 강조하면서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민주적으로 조율해 나가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는 '이기주의'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
박 소장은 "엄마도, 아빠도, 아이마저도 자신의 삶만 중요할 뿐 함께 살아가는 가족공동체에 대한 의식이 희박해진 상태"라며 "그렇다보니 가정 안에서 문제가 발생해도 그것이 내 문제가 아니라 남의 문제로 손가락질하면서 남에게 미루고 해결을 피하기만 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무너지는 가정은 더 큰 문제다. 이혼율 증가로 한부모가정과 조손(祖孫)가정이 급증하고 있는 것. 안정된 둥지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은 일탈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부모의 양육 소홀이나 가정교육의 부재가 청소년 비행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2006년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한부모 가정은 137만 가구가 넘고, 가파른 증가 추세로 볼 때 2011년 현재 150만 가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또 조손가정은 1995년 3만5천194가구에서 매년 조금씩 증가해 2011년에는 거의 2배인 7만여 가구에 이른 것으로 예상된다.
◆가족해체는 모성'부성 정체감의 부재 때문
여인숙 선재아동가족상담연구소장(경운대 아동사회복지학부 교수)은 가족해체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범죄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갈등이 표출되는 지금의 현상에 대해 "모성'부성 정체성이 희박해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성인기에 접어들면서 '부모됨'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분위기와 교육과정 속에서는 직업세계에 대한 정체성만 확립되도록 할 뿐 부모가 되는데 대한 의식이 생길 여지가 없는 사회분위기라는 것. 여 소장은 "엄마들이 가장 쉽게 하는 말 중 하나가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등이 아니냐"며 "이런 말들을 듣고 자란 딸들은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자신만 그릴 뿐 엄마가 되는 자신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남성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가족에 대한 부양 책임만을 강하게 압박받았던 남성들이 "이제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며 자신의 인생을 즐기겠다는 쪽으로 의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 이로 인해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성 정체성' 역시 점점 약화되가고 있는 현실이다.
여 소장은 "이런 현상은 이미 1990년대 예견됐던 사실"이라고 했다. 1990년대 후반 언론을 뜨겁게 달궜던 뉴스 중 하나가 바로 '산후우울증'이었다. 당시 아이를 낳고 난 뒤의 우울증을 견디지 못해 아이를 살해하는 엄마들이 꽤 많아 사회적 이슈로 대두됐었다. 그는 "부모됨에 대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아이를 낳게 되면 극도의 우울감이 찾아올 수 밖에 없다"며 "특히 남성보다 여성이 이런 우울증을 앓는 경우가 많다.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성 본능은 남아있기 때문에 두 가지 감정이 갈등을 겪으며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런 엄마에게서 자란 아이들은 당연히 부모와 충분한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해 공격적이거나 과잉행동 양상을 보이면서 '키우기 어려운 아이'가 되고, 이는 부모의 양육 스트레스를 가중시켜 심각한 가정 문제로 비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여 소장의 진단이다.
◆그래도 가족이다
사회문제는 결국 가족 병리문제와 강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25년을 가족상담 현장에서 활동한 여 소장은 "가족 내 문제에는 사회변화가 저변에 깔려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외국의 경우에는 산업화가 수십년에 걸쳐 더디게 진전되며 충분히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단시간에 급격한 사회변화가 이뤄지면서 이런 갈등이 더욱 심각하게 드러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후반 대두됐던 산후우울증 문제가 2000년대 이후에는 아이들의 가족 부적응 현상으로 표출됐고, 이제는 사이코패스 범죄 등으로 이어지는 사회현상이 우연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직업을 갖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여성들에게 양육을 위해 가정에만 머무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남성에게 가족 부양의 책임을 강요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여 소장은 "이제 양육의 책임을 사회가 함께 져야 한다는 쪽으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부모의 양육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한편, 아이들 역시 편안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 부모와 아이 모두 심리적 여유를 갖게 되면 서로에게 느끼는 피로감이 줄어들면서 더욱 편안한 관계 조성이 이뤄질 수 있다고 한다. 여 소장은 "시대가 변화면 국가 정책도 변해야 한다"며 "더 이상 가족해체를 나몰라라 하고 있을 일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가정이 유지될 수 있는 다양한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들은 결국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일종의 투자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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