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멋…대구경북 '별난 식당'] 단골끼리 입소문 통하는 숨겨 놓은 맛집

입력 2011-03-03 14:15:55

아스라이 봄이 달려오고 있다. 대지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 매년 오는 봄이지만 올봄은 또 다른 희망을 아로새긴다. 새록새록 움트는 봄은 새로운 미각의 세계로 이끈다. 새봄과 어우러지는 맛과 멋을 찾아보자. 미각을 돋우는 맛에 별난 멋까지 곁들여진다면 비단 위에 꽃을 놓는 것이 아닐까. 대구경북에서 소문난 별난 맛집을 찾아갔다.

◆가야금 선율에 녹아든 홍어-잔치집 홍어(053-768-6114)

대구시 수성구 들안길 네거리에서 KT 방향 첫 번째 횡단보도에서 우회전하면 좁은 골목 안에 위치해 있다. 이 식당은 홍어는 물론 병어조림'홍주 등 전라도 음식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주인장 이경숙 씨는 대구에서 태어나 순천에서 전라도 음식을 배운 뒤 다시 고향인 대구로 와 새로운 맛의 세계를 펼치고 있다.

목포에서 들여온 코를 찌르는 홍어를 돼지고기 한 점과 푹 삭은 묵은지에 감아 먹는 '홍어 삼합'은 입속에 녹아든다. '여름 보약'으로 불리는 병어조림은 감칠맛으로 미각을 돋운다. 크게 썬 무, 대파, 송이, 미나리, 팽이버섯 등 갖은 야채와 버무린 싱싱한 병어조림은 고소하면서도 풍성한 식감을 일깨운다.

또 다른 별미는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매생이국이다. 전라도 신안에서 첫물로 나온 매생이로 만든 국은 입안에서 흐물흐물 퍼지며 마음까지 평온하게 만든다. 조물조물 씹히는 맛이 일품인 벌교 꼬막은 굵은 알을 그냥 까서 먹으면 된다. 여기에 전라남도 진도의 전통 명주인 홍주를 곁들이면 흥이 절로 일어난다.

홍주는 소줏고리에서 내린 술을 지초(芝草) 뿌리를 통과시켜 새빨간 빛과 독특한 향기를 낸다. 홍주는 50도의 센 술이지만 목넘김이 부드러워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취흥이 도도해지면 주인장 이 씨는 가야금을 뜯으며 남도의 정감어린 노랫가락을 펼친다. "사랑 사랑 내 사랑~." "새가 날아든다~." "노새 노새 젊어서 노새~." 선율의 멋에 맛이 녹아든다. 단지 이 씨는 찾아온 손님이 마음에 들어야 가야금을 뜯는다. 아름다운 가야금 소리를 들으려면 주인장에게 잘보여야(?) 할 따름이다. 홍어삼합(국내산) 6만~9만원, 홍어회(국내산) 5만~7만원, 병어조림 3만원, 진도 홍주(1병) 2만원.

◆문패도 전화번호도 없는 닭국수집

대구시 달성초등학교 네거리에서 원대지하도 방향으로 30m쯤 오른쪽 골목 안에 있다. 이 집은 얼큰하고 매콤한 닭국수로 유명하다. 문패도 전화번호도 없기 때문에 단골만 찾아갈 따름이다. 영업은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한다. 아무리 춥거나 더워도 오전 11시 59분에는 절대로 입장을 할 수 없다.

혼자서는 갈 수 없다. 2명 이상이 기본이다. 혼자라면 다른 사람과 조를 맞춰야 식사를 할 수 있다. 예약은 선택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친절과 서비스는 잊어야 한다. 맛이 엄청 매운 편이기 때문에 위장이 좋지 않은 사람은 주의가 요망된다.

식당에 들어서면 반드시 주인장이 배정한 자리에 앉아야 한다. 음식 예절도 까다롭다. 한 소쿠리 가득 담아 내 놓은 국수에 전용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으면 걸쭉한 욕(?)을 얻어먹기 일쑤다.

지긋한 나이의 두 '이모'가 운영하는데 큰 이모는 욕쟁이(?), 작은 이모는 군기반장(?) 역할을 한다. 음식을 먹으러 왔는지 군기 잡히러 왔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그래도 멀리서 찾아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날 푹 고아 기름을 확 뺀 닭고기와 콩나물을 버무린 국물은 맵싸하면서도 칼칼해 먹으면 먹을수록 중독성을 띤다. 소쿠리에 가득 담아 내놓는 국수와 밥은 무한 리필이다. 곁들여 내놓는 오이소박이, 무생채, 마늘, 청양고추, 시금치는 싱싱하면서도 정갈하다. 닭국수 한 그릇 6천원.

◆잔치국수와 달콤한 찐빵의 만남-철규분식(054-276-3215)

"찐빵 좀 싸 주이소!" "찐빵 없어요!"

포항시 구룡포에 가면 별 희한한 분식집이 있다. 잔치국수와 찐빵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다. 이 집은 잔치국수를 주문해야 찐빵을 먹을 수 있다. 분명 찐빵을 메뉴로 내건 분식집인데 찐빵이 없단다. 게다가 가게 안을 슬쩍 둘러보니 먼저 온 손님 여럿이 이미 찐빵을 먹고 있다. 찐빵을 익혀놓은 게 없으면 조금 기다리겠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찐빵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가게 안에 있던 손님이 추가로 시키니 얼른 갖다 내놓는다. 황당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해서 따져 물으면, "그럼 잔치국수를 먹고 찐빵을 시키라"고 한다.

주인장 박상연 씨의 말을 들으면 이해가 된다. 매일 정해진 양의 찐빵만 만들어 파는데, 찐빵만 팔다 보면 나중에 잔치국수를 먹으러 와서 찐빵을 함께 시키는 손님에게 내놓을 게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집 찐빵은 울룩불룩 작고 볼품없지만 단팥죽에 찍어 먹으면 독특한 맛이 난다. 오래된 노란 냄비에 시원한 멸치 맛국물로 끓여 내놓는 잔치국수는 별미다. 국수(1인분) 2천원, 찐빵(3개) 1천원, 단팥죽(1인분) 2천원.

◆모녀 손맛 어린 명품 왕순대-일경식당(053-753-4778)

대구시 동구 효목동 동구시장에 가면 명품 왕순대를 맛볼 수 있다. 두툼한 막창에 깻잎, 숙주, 양파, 우거지, 생강, 당근 등 각종 채소와 돼지고기로 속을 가득 채워 내놓는 순대는 감칠맛과 씹는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깻잎에 싸서 먹으면 잘근잘근 씹히는 맛과 입 안 가득 퍼지는 향긋한 향이 코러스를 연출한다.

올해로 순대 경력 40년의 조정자(77) 씨와 '순대는 내 운명'이라 생각하며, 대를 잇고 있는 딸 전순옥(52) 씨가 한마음으로 만들고 있다.

이 집 순대 맛의 비결은 싱싱한 재료를 손으로 직접 빚어내는 데 있다. 아직도 식당에 그 흔한 믹서기 하나 두지 않고 작은 재료 하나도 직접 다져넣어야 순대의 '씹는 맛'이 살아나고 손으로 조물조물 정성껏 만들어야 '제맛'이 난다는 것이 주인장의 철학이다.

이 덕분에(?) 경력 20년의 딸이 추운 겨울에 장갑이라도 한번 낄라치면 어머니에게 혼쭐나기 일쑤다. 음식 앞에서는 엄격한 주인장 조 씨지만 손님들에겐 한없이 다정한 동네 할머니다. 손님이 먹고 싶다면 메뉴에 없어도 무엇이든 만들어주는 인심은 촉촉하고 구수한 순대에 따라오는 덤이다.

딸 전 씨는 순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적 만남이라고 한다. 몇 해 전 전 씨는 좁은 주방 출입문에서 순대를 찌다가 찜솥에 데어 3도 화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후유증으로 등 부위에 남은 흉터 때문에 목욕탕에도 갈 수 없는 상처를 갖고 있다. 그래도 전 씨는 손님이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좋아 대를 이어 순대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순대와 맺어진 작은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내가 이제는 퇴직해야 되나?" "그냥 계속 하시오." 모녀의 정감 어린 대화 속에 순대의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다. 왕순대 1만5천~2만원, 명품 순대국밥 7천원.

◆시골집 정취 물씬 나는 식당-향촌칼국수(053-811-0984)

이 집에 가면 옛 고향집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오래된 한옥을 일부 수리해 고풍스런 느낌을 살렸다. 대나무로 만든 대문에 들어서자 마당 오른쪽에는 수십 개의 된장 독이 즐비하며 왼쪽에는 나무로 만든 사랑채가 눈길을 끈다. 식당 곳곳에는 쌀독, 농기구, 대문고리, 풍로, 짚 짜는 기구 등 빛바랜 물건들이 놓여 있다. 식당 안에는 고서화, 궤짝, 떡판 등이 있어 옛날로의 시간여행을 하며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주메뉴는 조미료를 쓰지 않아 깔끔하고 시원한 칼국수다. 시골 메주로 직접 담근 간장으로 입맛에 맞게 간을 넣어도 되지만 있는 그대로의 맛을 즐기는 게 좋다.

30년 손맛의 조광문(64) 씨가 가마솥에 쪄 내놓는 보리밥은 그야말로 시골 맛의 진수를 느끼게 한다. 뜨끈뜨끈한 칼국수 한 그릇에 된장고추와 김장김치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국산콩과 땅콩, 검은깨를 직접 갈아 육수와 김치를 넣어 만든 콩비지는 새로운 미각의 세계로 이끈다. 식후에 시원한 동치미 한사발을 들이켜면 전날의 숙취는 저만치 날아간다. 경산시장에서 남천 방면으로 가다 경산초등학교 못 미쳐 오른쪽 골목 안에 위치해 있어 찾기가 다소 까다롭다. 주로 단골들이 많으며 대부분 대구 손님들이다. 칼국수'수제비 5천원, 보리밥'콩비지'콩국수 6천원.

전수영기자 poi2@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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