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근육병으로 온 몸이 마비된 박명호 씨

입력 2011-03-02 09:19:05

박명호(가명·56) 씨는 온몸의 근육이 굳어가는 병을 앓고 있다. 몸은 침대에 묶여 있지만 같은 병을 앓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담사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다.
박명호(가명·56) 씨는 온몸의 근육이 굳어가는 병을 앓고 있다. 몸은 침대에 묶여 있지만 같은 병을 앓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담사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다.

박명호(가명·56) 씨의 삶은 리모컨에 묶여 있다. 그의 몸에서 유일하게 감각이 살아있는 것은 양손 가운데 손가락 뿐이다. 그는 손 끝에 미약하게 남아있는 감각으로 리모컨 버튼을 누른다. 전동 침대 높이를 조절하고, TV 채널을 돌리는 것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박 씨는 온 몸의 근육이 서서히 굳어가는 근육병을 앓고 있다. 그는 두발로 걸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하지 못한 채 고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온 몸이 마비되다

1일 오후 자택에서 만난 박 씨의 몸은 앙상한 나무가지 같았다. 옷속에 감춰진 드러난 팔다리는 더 안쓰러워 보였다. 그의 몸에 연결돼 있는 지름 1㎝짜리 소변관이 현재 상태를 짐작케 했다. 박 씨는 "평생 살이 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어릴 때 중심을 잡지 못해 자주 넘어졌고 근육이 마비되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것이 병인지 알지 못했다. 근육이 굳는 병이 세상에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병은 서서히 그를 짓눌렀다. 24살 때 찾은 병원에서 처음으로 온몸이 마비되는 '근위축증' 진단을 받았다. 불편한 몸으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기는 힘들었다. 지난 2005년 중국인 부인을 만나 결혼했지만 6개월 만에 이혼하고 말았다. 그때만 해도 박 씨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혼자서 생활할 수 있을 만큼 몸이 괜찮았다. 하지만 2008년 5월 당했던 교통사고는 그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박 씨가 오랜만에 외출을 한 어느 날이었다. 활동 보조 도우미와 함께 전동 휠체어를 타고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덤프 트럭이 그를 덮쳤다. 트럭과 정면 충돌을 면해 목숨을 건졌지만 박 씨는 그 사고로 7개월간 병원 신세를 졌다.

운전 기사의 명백한 과실로 인한 사고였지만 박 씨는 기사를 용서했다. "트럭 기사는 부모님과 어린 자식 2명을 데리고 사는 30대 가장이었어요. 가장이 무너지면 한 가정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형사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경찰측에 말했고 합의금도 받지 않았어요."

7개월간 병원 입원비와 치료비를 받은 것이 보상의 전부였다. 박 씨는 세상에 따뜻함을 베풀었지만 그 배려는 오히려 큰 짐이 돼 돌아왔다. 사고 이후 부분 기억 상실증으로 과거의 기억 일부를 잃어 버렸고, 온몸에 감각이 사라졌다. 사고 이후 간병인 고용을 위해 이곳 저곳에서 돈을 빌렸고 2천만원이 넘는 빚까지 얻어 박 씨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인생의 첫 꿈

사고 이후 박 씨는 모든 것을 남에게 의지해야만 했다. 장애인 활동 보조인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삶은 의존적으로 바뀌었다. 석 달 전부터 박 씨를 돌보고 있는 최정임(48·여) 씨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그의 곁을 지킨다. 최 씨의 도움이 없다면 밥을 먹을 수도, 대소변을 볼 수도 없다.

그의 왼손에는 전동 침대 높이를 조절하는 리모컨이 놓여 있다. 최 씨는 "아저씨는 혼자서 리모컨을 잡을 수 없기 때문에 가운데 손가락을 움직여 버튼을 누를 수 있게 항상 리모콘을 왼손에 놓아 둔다"고 말했다.

활동 보조인이 퇴근하면 박 씨는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전동 침대를 잘못 조작해 머리가 앞으로 쏠리는 바람에 질식할 뻔한 위험도 여러 차례 겼었다. 혹시라도 리모컨이 손에서 떨어지면 꼼짝없이 같은 자세로 16시간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맘 놓고 편히 잠을 잘 수도 없다.

박 씨는 한 때 자신의 삶을 더 이상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남동생 박명지(가명·52) 씨 마저도 근육병으로 몸이 굳어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세상이 죽도록 미워했다. 항상 타인에게 도움을 구걸해야만 하는 자신의 삶이 싫었고 또 지긋지긋했다. 하지만 최근 대구 근육장애인협회에 방문하면서 조금씩 희망을 되찾았다. 같은 병을 앓는 환자들을 만나면서 아픔을 공유할 수 있었고 근육병을 앓으면서 30년의 세월을 버텨온 그를 보고 위로를 얻는 이들도 있었다. "근육병을 인정하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환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세상을 좀 더 산 사람으로서 근육병 환자들을 전화로 상담해주며 고민을 들어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박 씨는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꿈을 꾸고 있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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