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공짜는 없다

입력 2011-02-28 07:44:15

K의 아들이 그 어렵다는 입사시험에 덜컥 붙었다. 혹 좋지 못한 소식이라도 듣게 될까 염려스러워 물어보지도 못하고 궁금하던 차에 한 다리 건너서 듣고는, 바쁘게 하던 일 멈추고 축하 전화를 넣었다. 얼마나 오랜만에 듣는 진정으로 기쁜 소식인가. 나이 들면서 용심이 느는 건지, 남의 좋은 일을 들으면 왜 살짝 배가 먼저 아파 오는 걸까. 요즘 들어 자주 반성하곤 했는데 이렇게 기뻐서 함께 아는 누구에게라도 빨리 전해주고 싶다니, 오랜만에 믿어도 될 만한 내 인간성에 감탄까지 하고 있다.

K는 평생 시부모님을 모셨다. 특히 시어머니는 기골이 장대하고, 자기 주장도 강했다. 말년에는 치매까지 온 기운 센 어른이 다리 골절을 입고, 몇 년은 거동을 못하고 누워만 계시면서도 큰 소리로 며느리에게 욕하고 야단치셨단다. 시아버지는 끔찍이 위하던 아내를 앞세우고 귀가 안 들리는 채로 몇 년 더 농사를 지으셨다. 지난가을 고구마 다 캐다 담아놓고, 아껴 주고 싶은 며느리가 제사상이라도 한 번 덜 차리도록 시어머니와 같은 날 돌아가셨다. 어려운 어른 묵묵히 모셔준 공을 며느리에게 그렇게 하고 가시는구나 하고 감동했었다.

남편까지 실직과 이직을 거듭하면서, 그도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이른바 취업재수까지 아들 뒷바라지를 했다. 큰 손으로 담근 김치도 나누고, 밑반찬이며 부침개 등등의 별식을 잊을 만하면 챙겨주는 부지런하고 솜씨 좋은 K. 운전을 하지 않으니 바쁜 날은 하루에도 몇 번씩 택시를 타면서도 봉사활동에 빠지지 않는 그를 보면서 게으르고 이기적인 나를 추스르곤 했다.

그가 이제 다리 좀 뻗고 지내도 되겠구나 생각하니 내 마음이 다 넉넉해지는 듯하다. 아들의 취직이 부모의 인생 목표도 아닐 테고, 모든 문제의 해결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더구나 요즘 같은 세상에 아들 덕 보려 할까마는, 그나마 한걱정 덜었다 싶지는 않겠는가. 남에게 폐 안 끼치고 제 앞가림 해내도록 키웠으니 그만 해도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공헌이 아닐까.

나이가 주는 수용 능력인지, 좀 억울하고 부당해도 그것은 내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섭섭함은 분명 어떻게든 보상받게 되리라는 소망으로 바꿔 가질 줄도 알게 되었다. 모든 일에는 공짜가 없어, 세상 그 어디라도 언젠가는 진심이 가 닿게 되어 있다. K를 축하하며 이런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갖는다. 그간 알고 지낸 10여 년의 세월 동안 많이 힘들어 보였던 그를 아낌없이 축하하며 오늘 내 마음이 하루 종일 설렌다. 봄이 왔음에 틀림없다. 찬란하다.

윤 은 현 경일대 외래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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