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추웠던 올겨울이 끝나고 있다. 찬찬히 살펴보면 벌써 차가운 나뭇가지에도 새싹이 움트고 있다. 이때 아무 생각 없이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멋진 그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그것을 찾아 떠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 어렵다. 졸업과 입학이 겹친 지금, 사람들은 만남과 이별의 간절함을 경험한다. 그리고 인생의 새로운 길을 떠난다.
일상생활이나 인간관계에 지쳤을 때, 나는 지하철을 타고 훌쩍 목적지 없는 여행을 한다. 그것만으로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고 자유를 느낀다. 이전에 한국인 친구에게 "나 홀로 여행을 좋아한다"고 하자, "외롭지 않아?" "같이 갈 사람이 없어?"라고 걱정을 해주었다. 한국에는 자유롭게 혼자 차나 식사를 하기가 어려운 분위기가 있다. 대학교의 구내 식당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있으면, 학생들은 "밥 같이 먹을 친구도 없어?"라는 야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종업원도 괜스레 말을 걸면서 신경을 써주었다. 그러나 일본인은 "누군가와 함께여야 한다"는 데 그다지 구애받지 않는다. 누구도 타인의 행동에 일일이 간섭하거나 신경을 쓰지 않는다. 혼자서 인생을 즐기는 여자를 '독신님'이라고 야유하는 사람도 있지만 상관 않는다. 혼자 고깃집에서 식사를 하고 노래방에 가는 여성도 많다. 인간은 본래 태어날 때나 죽을 때도 모두 혼자다. 혼자라는 것을 굳이 강조하고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혼자 있으면 평소 느끼지 못한 것을 느끼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일상에서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와 사회생활 속에 매몰되어 버린 자신의 진정한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항상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복잡한 타인과의 관계 속에 묶여 사는 현대의 우리에게는, 이러한 자기만의 생각을 소중히 하기가 어렵다.
수년 전 혼자 하와이를 열흘 정도 여행했다. 근무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감과 희망을 잃고 있던 나를 보다 못한 부모님이 "넓은 세상을 네 눈으로 보고 와라"고 등을 떠밀었다. 나 스스로도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를 시험하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처음은 순조로웠다. 한 손에 지도를 펴들고 유명한 관광 명소를 돌고, 벤치에 앉아 바다에 가라앉는 석양을 바라보며 하와이를 만끽했다. 하지만 조금 익숙해질 무렵에 버스를 잘못 타버렸다. 도시를 떠나 점점 산 속으로 들어가는 버스에서 바깥 경치를 보면서 어쩔 줄 몰라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던 하와이의 할머니가 다음 정거장에서 함께 내려 주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그녀는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는 그녀처럼 하와이에 살고 있는 필리피노(필리핀 사람)들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였다. 버스가 와서 "당신을 만나서 좋았다"며 뺨에 가벼운 키스를 하며 안아주었다. 버스가 출발한 후에도 계속 손을 흔들어 주었다. 버스 안에서 나도 그녀를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었다. 30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만약 내가 혼자 하와이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평생 듣지 못할 이야기였다. '나 홀로' 여행은 자기 혼자의 힘으로 보고 먹고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그 여행을 받쳐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의 유명한 하이쿠(俳句'17음절의 일본 옛시) 작가 마쓰오 바쇼는 그 옛날 여행을 하면서 많은 시를 읊었다. 바쇼의 기행문 은 "날마다 여행을 하고, (나는) 여행을 처소로 삼는다"로 시작한다. 그에게 여행은 인생이었다. 인생은 홀로 하는 시간 여행이지만, 혼자가 아니다. 길을 잃거나 방황할 때, 반드시 누군가 손을 내밀어 준다. 그러니 안심하고 나 홀로 여행을 즐겨 보자. 가지 않은 길을 걷고, 보지 못한 사람을 만나자. 한국에서는 '귀한 자식은 매로 키워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귀여운 자식은 여행을 보내라'고 하는 격언이 있다.
요코야마(유카·일본 도호쿠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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