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음악 계보를 잇는 사람들
'세시봉 열풍'이 대단하다. 수십 년 전 케케묵은 음악인줄만 알았던 곡들이 다시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다. 고작해야 40, 50대가 옛 추억을 곱씹으면서 반가워해 주리라 생각했는데 20, 30대 젊은이들도 "정말 감동"이라며 박수를 쳐댄다. 생각지도 못한 뜨거운 반응이다. 요즘 너무나도 '자극적이고 적나라한' 음악과 가사들에 마음마저도 지쳐있었던 것일까?
여세를 몰아 포크음악이 인기를 얻으면서 언론에서는 '통기타 매출이 증가했다'는 뉴스까지 터져나온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지난해 방송됐던 Mnet의 슈퍼스타K에 출연했던 장재인 등과 세시봉으로 인해 불어닥친 통기타 음악의 인기에 힘입은 것이라는 풀이다.
하지만 세시봉만 포크 음악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뒤를 이어 김광석, 장필순, 박학기, 한동준 등이 포크의 계보를 이어 자신만의 색채를 펼쳐보였다. 그리고 지금도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가슴 속에 음악이 흐르는 것은 비단 그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나는 가수다!
박창근(40) 씨는 포크 음악계에서 기반을 잡은 사람이다. "돈을 받고 노래를 한 것이 1993년부터이니 그때가 가수생활의 시작아니겠냐"고 하는 그는 이미 2장의 앨범을 내놨고, 현재 3집 앨범 녹음 작업을 진행 중이다. 방송 출연도 몇 차례 해봤고, 언론사 인터뷰도 좀 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박창근을 검색하면 많지는 않지만 꽤 많은 정보들이 나온다. 실력 있는 노래꾼이라는 찬사도 곳곳에 보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녹록잖은 삶을 살아가는 가수일 뿐이다. 불러주는 곳이 있고, 열린 마음으로 그의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간다. 대구에 주소를 두고 있으니 대구사람이지만, 사실 활동의 상당부분은 서울에서 이뤄지고 있고 무대만 있다면 전국 어디든 달려간다. 그는 "누군가는 그나마 너는 설 곳이라도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여전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가고, 작은 무대라도 한번 더 만들기 위해 발품을 팔아 고군분투하는 힘겨운 음악인일 뿐"이라고 했다.
김동식(41) 씨는 대구 앞산 앞에서 '스폰서'라는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노래할 곳이 없으니 아예 연습실 삼아 가게를 낸 것이다. 길거리 공연도 하고, 돈이 되는 무대를 위해 대학교 오리엔테이션 행사 등을 다니면서 가끔은 포크와 무관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그는 20살 시절 노래를 시작해 서울 미사리와 홍대, 대구 등 음악판에서 20년을 보냈다. '설 수 있는 무대가 너무 없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그이지만 늘 가슴 속에는 음악이 숨쉰다. 나만의 음악을 표현해 내고 싶은 욕구가 용솟음 치는 것이다. 그는 "예전 한 장의 앨범을 내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꿈꾸기 어렵다"며 "그래도 아직 부지런히 곡을 쓰고 노래를 연습한다"고 했다.
◆가슴 속에 노래가 흐른다
포크송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꽤 있지만 이들은 과거의 노래만을 들을 뿐이다. 더 이상 새로운 노래에 귀 기울여 주질 않는다. 그래서 지금 노래하고 있는 포크가수들은 안타깝다.
동식 씨는 늘 '나만의 노래'를 하고 싶은 욕구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그는 가끔 어떤 공연장보다 오히려 홍대 앞 클럽에서 기타를 퉁길 때가 더 편안하다. 그는 "출연료는 없지만 대신 내 앨범을 가지고 가서 판매를 하는 조건으로 공연을 하기도 한다"며 "그럴 때는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내 노래를 부를 수 있어 시원하다"고 했다.
창근 씨는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부르고 싶은 노래가 많다"면서 "제약 없이 노래하고 싶다"고 했다. '제약이 없다'는 표현은 어떤 틀에 그 자신을 가둬놓지 않겠다는 말이다. 어느날은 일상, 사랑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다른 날에는 정치, 생명을 노래하기도 할 수 있는 것이 가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언론이 붙여준 '민중가수', '생명·환경 가수', '채식주의 가수' 등의 모든 수식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냥 가슴 속에 부르고 싶은 노래가 흘러 넘치고, 누군가는 이런 내 음악에 귀를 기울여줬으면 하는 마음에 창작을 하는 음악가일 뿐이다.
포크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해금 등의 전통악기나 일렉사운드를 입히는 등 자신만의 색채가 분명한 음악을 하고 있는 창근 씨. 그 역시 자신의 노래보다는 소위 '명곡'으로 인정받는 남의 노래를 불러야 할 경우도 꽤 되지만 그는 그런 것에 더 이상 가슴아파하지 않는다. 창근 씨는 "누군가가 나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익숙한 노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며 "그래서 일단 '저 사람 누굴까?'라는 관심이 생길 수 있도록 남의 노래지만 최선을 다해 나만의 색깔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노래를 하면 분명 사람들은 그 다음에 나올 내 노래에도 조금 더 귀를 기울여주더라"고 했다. 그래도 가슴 속 한쪽에서는 늘 누군가가 내 노래에 더 귀를 기울여주고, 좋아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대중적인 명성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들어주는 사람 없는 음악은 너무 외롭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포크음악을 한다는 것?
한국 사회는 모든 것이 획일화된 사회다. 교육도, 정치도, 그리고 음악마저도 획일적이다. 지금 우리가 대중매체에서 접할 수 있는 것은 아이돌 가수들의 댄스 음악이 주류를 이룬다. 포크와 컨트리, 재즈, 록 등의 장르는 일부에서나 향유되는 장르일 뿐 외면받기 일쑤다. 그래서 분명 좋아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어렵고, 음악을 하는 이들은 설 무대를 찾지 못해 좌절한다.
동식 씨는 "음악산업 측면에서 봐서 돈되는 일부 장르에 대한 편중이 너무 심하다"며 "그렇다보니 분명 수요는 있는데 오히려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 된 것 아닌가"라고 했다. 지역의 상황만 봐도 음악판은 여전히 '주류' 중심이다. 대형 가수 위주로 수천 석 규모의 공연만 있고, 한때 100여 개에 달했던 7080카페는 2004, 2005년 우후죽순 들어섰다가 물거품처럼 사라져 이제는 고작 몇 곳만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나마 소극장 공연을 할 수 있는 토양이 잘 조성돼 있다는 것이 대구의 장점이지만 워낙 대중문화 자체가 획일적으로 흘러가다 보니 이것도 쉽잖은 일이다.
젊은 한때는 '억울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창근 씨. 이제는 담담히 현실을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초탈'의 자세에 들어섰지만 그래도 아직 "비교라도 당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측면에서는 아쉽다"고 했다. 음악을 잘하든 못하든 냉철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도 그는 이 생각에 머물러 있지 않고 한발 더 박차고 나가 사람들 속으로 파고드는 방법을 택했다. 창근 씨는 "나 역시 한 때는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서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지만, 결국 그것은 내 창작물에 부족함이나 서투름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됐고 지금은 좀 더 완성된 음악을 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쪽을 택했다"며 "동대구역 광장 거리무대에서 9년을 노래한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다고 본다"고 했다.
◆세시봉 인기, 기회인가 위기인가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된 송창식, 조영남, 윤형주, 김세환 등 네 명의 가수들이 다시 뭉쳐 방송에 등장하면서 불어닥친 세시봉 열풍은 아이돌 가수 일변도였던 방송가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시선은 엇갈린다.
동식 씨는 "다른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확인할 수 있었고, 특히 젊은층이 '좋다'고 말해주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것이 계기가 돼 포크 음악의 토양이 넓어지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 역시 긍정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는 "조금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다"고 했다. 1998년 팔공산에 전원카페가 붐을 이뤘던 시절이 그랬고, 2004년 7080카페가 들불처럼 번져나갔던 시절도 그랬다. 제대로 된 저변이 마련되지 않은 채 너무 갑작스럽게 유행하다보니 오히려 이것이 일시에 무너져 내리면서 그나마 근근히 음악을 키워왔던 사람들마저도 함께 풍랑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위기상황을 초래했던 것이다. 동식 씨는 "지금의 세시봉 열풍 역시도 반짝 인기로 끝나버리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녹음 작업에 집중하느라 사실 세시봉이 출연한 방송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언론에서 매일같이 쏟아내고 있는 세시봉 이야기도 미처 접하지 못했다는 창근 씨. 그는 "젊은층이 여기에 대해 '좋다'고 공감해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이라며 "폭발하는 음악에서 이제는 가슴에 울림이 있는 음악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있는 어떤 이들이 있다는 이야기 아니겠냐"고 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의 현상에 대해 별다른 기대도, 할 말도 없다고 했다. 그는 다만"내면의 뿌리가 깊으면 어떤 비바람에도 무너지지 않고 견딜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의 세시봉 열풍은 한때 사람들이 열광했던,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을 만큼 노래에만 끈덕지게 천착해왔던 세시봉 멤버 그들의 몫일 뿐, 그는 그냥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지금껏 묵묵히 자신만의 음악을 해 왔던, 그 길을 계속 걸어가겠다는 의지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탄핵안 줄기각'에 민주 "예상 못했다…인용 가능성 높게 봐"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