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로 떠나는 여행에 통대구 칼국수 맛은 '명품'
강호동의 '1박 2일'이란 연예 프로그램을 본다. 참 재미있다. 이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나는 왜 저런 곳에 갈 수 없을까'라고 생각한다.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 여행도반들을 만났다. 그들은 하나 같이 "우리가 시간이 없나, 신발이 없나, 가면 되지 왜 못 가"라고 부추긴다.
우린 PD가 없고 촬영감독이 없고 ENG카메라가 따라 붙지 않는 여행 프로그램을 짜기 시작했다. 우리는 강호동 팀보다 하루가 더 많은 2박 3일로 일정을 잡았다. 행선지는 거가대교를 지나 거제, 통영, 고성, 삼천포, 광양, 순천, 여수, 벌교, 승주 방면의 남해안 일원으로 정했다.
우린 음식 끝에 마음이 상하거나 잠자리 문제로 시비를 하는 일이 없도록 '복불복 게임'은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래서 공동체 조직원들은 모든 것을 동등하게, 먹을 때 같이 먹고 한방에서 같이 뒹굴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호동이 팀의 구호인 '1박 2일!'을 모방하자는 의논은 한 적이 없는데 하나의 행위가 단락이 질 때마다 '2박 3일!'이란 구호를 소리 높여 외치기 시작했다. 늙은 아이들의 장난치곤 조금은 과했다. 2박 3일!
거가대교를 지나 거제도 장목의 외포항으로 들어갔다. 남해안 포구의 섣달은 온통 통대구 판이다. 어자원의 고갈로 어판장의 좌판들이 비어 있는 곳도 있지만 어선들이 몰려드는 이름난 어시장은 영하 10도 전후의 강추위 속에서도 파시를 이룬다. 새벽 찬바람을 헤치고 달려 나가는 어선들이 모두 대구 잡이 배들뿐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시장바닥에서 발에 차이는 것은 통대구와 물메기뿐이다.
우린 출발에 앞서 외포항 어시장에서 근사한 통대구 한 마리를 사서 남들이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요리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장터 바닥에는 통대구들이 좌판 위에 몸집의 크기대로 반 편성을 하여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반 피데기'라 불리는 놈들은 내장을 비워내고 공중에 걸려 있는 대나무 장대에 목을 매단 채 햇볕과 해풍에 몸을 말리고 있었다.
알이나 곤을 뱃속에 품고 있는 대구는 임신부처럼 배가 부르다. 대구를 보고 있으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대구는 푸짐하고 푸근한 생선이다. 우린 유선호 선장 가게(010-7187-2994)에서 부르는 가격 그대로를 주고 대구 한 마리를 토막 쳐 차에 실었다. 그리고 반 피데기 한 마리도 집으로 가지고 가 술안주하려고 함께 얹었다. 말은 바른 말이지만 대구 반 피데기를 벌건 참숯불에 구워 '화랑'과 같은 향기로운 청주를 마실 때 안주로 하면 함께 마시던 옆자리 친구 여럿이 죽어 나가도 모를 만큼 맛있는 생선이다.
우리는 콧노래를 부르며 왼편 어깨에 바다를 걸고 계속 달렸다. 통대구 한 마리 실었는데 이렇게 배포가 커지다니. 어느 도반은 정자나무 밑에서 소피를 보다 말고 암놈 꽁무니를 따라가는 수캐에게 "통대구 한 마리 샀다. 왜. 한 번 붙어 볼래"라며 괜히 시비를 건다. 서해 쪽에는 눈이 온다는데 이쪽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다. 루이 암스트롱이 부른 쉰 목소리의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란 재즈곡이 절로 흥얼거려진다. 오! 내가 살아 있는 이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가.
뱃속이 출출하길래 시계를 보니 오후 2시에 가깝다. 밥을 해 먹을 장소를 찾는데 10분 넘게 걸렸다. 오늘 같은 영하의 날씨에는 등 뒤의 바람을 막아 주고 눈앞에는 햇살이 드는 잔디밭을 찾아야 하는데 마침 딱 걸렸다. 하동에서 광양대교를 넘어가기 직전의 산자락이 삼박자를 갖춘 곳이었다. 버너 두 대에 불을 붙이고 하나에는 대구탕, 또 하나에는 칼국수를 삶았다.
통대구 살이 적당하게 익었을 때 삶아 둔 칼국수를 넣었다. 아침에 서둘러 나오느라 양념 준비가 시원찮아 굵은 소금만 조금 친 것이 오히려 담백하다. 다섯 명의 여행 도반들은 맥주에 위스키를 끼얹은 폭탄주를 네댓 잔씩 마시고는 하늘을 보고도 반말, 땅을 보고도 하대 말로 지껄인다. 이렇게 맛있는 칼국수는 난생 처음 먹어 본 명품 중의 명품이다. "2박 3일!"
''''''''''''''''''''''''''''''''''''''''''''''''
■알립니다
2월 17일자에 실린 '남창 장의 감성 돔'은 제작 과정의 실수로 지난해 12월 30일자 '남창 장의 어물전' 원고를 중복 게재한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댓글 많은 뉴스
구미 '탄반 집회' 뜨거운 열기…전한길 "민주당, 삼족 멸할 범죄 저질러"
尹 대통령 탄핵재판 핵심축 무너져…탄핵 각하 주장 설득력 얻어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
이낙연 "'줄탄핵·줄기각' 이재명 책임…민주당 사과없이 뭉개는 것 문화돼"
尹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임박…여의도 가득 메운 '탄핵 반대'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