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한 아침, 눈 소식 가득한 강원도로 나섰다. 백설의 들판 위 햇살이 눈부시다. 저 태양빛처럼 졸업하는 이들의 앞날이 밝고 환했으면 좋겠다.
학교까지는 신기하게도 길이 말갛다. 입구에 따끈한 차와 김이 오르는 찐빵을 마련해 둔 졸업식장, 관복에 사모를 쓰고 어사화를 꽂은 남학생과 당의에 아얌을 얹은 여학생들이 지미짚 아래 앉아 있다. 커다란 북을 울리며 고축삼성을 하자 국민의례가 이어진다. 태극기 양옆에는 조국(祖國)이란 글자가 선명하다. 애국가 제창이 4절까지 이어지자 가슴이 뭉클해온다.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아쉬웠던 일도 기쁨에 들떴던 일도 모두 아이들의 앞날에 비옥한 거름이 되리라.
무대 위에서 한 사람씩 졸업장을 주며 악수를 하던 교장 선생님도 감회에 젖는 듯하다. 떠나는 학생들을 위한 격려사가 이어진다. 전통 복식을 갖춰 입은 학생들이 모두 엎드려 넙죽 감사의 큰절을 올린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던 어린 막내가 급히 고모 옆으로 간다. 몇 마디 주고받던 시누이가 못 참겠다는 듯 '언니! 막내아들 기발함은 금메달감이다'고 한다. 식순의 한 곳을 짚으며 이 식사했느냐고 자꾸 묻더란다. 조금 전에 지나갔다 하니 '나는 왜 빼고 밥 안 주는데?' 한단다. '졸업에 대한 말씀'이라는 의미의 졸업'식사'를 초교 2학년 아이는 밥이라도 주는 줄 안 것이다.
생수와 빵이 차려져 있었고 또 식당에 점심을 준비해 놓았으니 꼭 식사하고 귀가하라는 안내방송도 들었던 터였다. 게다가 아이는 식순을 식수로 읽었다며 잔에 물을 채워 들고서 축하하는 건배 순서가 있는 줄 알았단다. 멋진 잔칫상을 기대했다가 실망한 아이에게 '교장 선생님의 졸업식사는 지나갔지만, 우리 윤재를 위한 진짜 졸업 식사는 이 고모가 쏠 게'라고 한다.
건배와 식사를 할 것이라 상상한 아이에게 '진짜 기발한 아이디어'라며 칭찬을 잔뜩 해주었다. 그제야 기분이 좀 풀리는 모양이다. 둘의 대화를 듣던 어머님도 한마디 거드신다. 교장을 지냈던 외삼촌이 초등학교 입학 때 '남선생님이라고 해서 보니 여자 선생님이 왔데' 했단다. 성이 남 씨인 것을 '남녀' 할 때의 그 남으로 안 것이다.
졸업이라는 문을 열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한 출발점에 선 아이들이다. 늘 긍정의 자세와 따뜻한 가슴으로 새로운 경험을 설렘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간혹 젖은 날을 만나더라도 아침이 되면 나팔꽃처럼 금세 활짝 피어나길 바란다. 심장을 뛰게 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의 삶에 최선을 다할 수 있으면 더없이 좋으리라. 힘들 때에도 자신을 믿고 '우보만리'(牛步萬里)로 뚜벅뚜벅 걸어가길 소망한다. 희망의 꽃눈을 틔우는 2월, 행복했던 내 글쓰기 졸업식사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날마다 마음 가득 흐뭇한 일만 있기를….
정명희 <대구의료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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