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대구 공간 혁명, '동대구역'부터

입력 2011-02-18 10:51:06

대한민국에서 공간 혁명이 가장 큰 규모로 일어나고 있는 도시는 어디일까. 누구나 인천이라는 데 동의한다. 영종도에 국제공항이 들어설 때 이미 예견했지만, 송도가 18세기 일본의 나가사키처럼 국제화를 위한 경제자유구역으로 바뀌고 인천대교가 만들어지는 등 인천의 공간 혁명은 진행형이다. 부산과 경남을 잇는 거가대교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러면, 대구는 어떤가? '동대구역'은 대구의 정체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기차역은 한 도시의 상징적인 브랜드이며, 도시의 거울과도 같다. 그런데 대구의 중심 역은 '대구역'이 아닌, '동대구역'이라고 불린다. 대구의 옹골찬 고집 탓일까. '동대구역'이 개통되고 30여 년이 지났지만, 대구는 어디를 가도 공간적으로 변한 게 별로 없다. 그냥 지하철이 그 사이에 생겨났을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0여 년간 꿋꿋하게 변하지 않고 있는 '동대구역'의 모습은 대구의 총체적인 문화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여실히 말해준다.

교토역을 가본 적이 있는가. 나는 교토역이 새로 만들어지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1997년에 오사카 간사이공항을 통해 교토역에 내렸다. "아니, 이 건축물이 진정으로 기차역이란 말인가!" 이미 그 당시에도, 뉴욕, 워싱턴,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의 기차역 등을 보아왔건만, 눈앞에 나타난 교토역은 기차역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1천200년 된 도시를 상징하기 위해 새로 설립된 교토역은 단순히 기차역이라고 할 수 없었다. 교토의 역사적 전통과 어우러진 일상적 삶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미래로의 웅비(雄飛)를 위한 열린 공간임에 분명했다. 수식어 하나 보태지 않고, 도저히 교토역에서 그냥 빠져나올 수 없었다. 누가 교토역을 디자인했는지 궁금했었고, 구태의연한 건축 양식의 '동대구역'을 떠올렸다. 교토는 기차역 하나만으로도 세계적인 도시의 반열에 우뚝 섰다.

교토역 내에 일본을 대표하는 백화점인 이세탄백화점이 들어선 것을 본떠서 한국에도 몇몇 기차역 내에 백화점들이 들어와 있다. 들리는 말로는 '동대구역'도 개선의 일환으로 백화점을 받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얼치기 흉내로는 국제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국내에서도 주목을 전혀 받지 못한다. 기껏해야 백화점에 개발을 의뢰하는 방식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것은 이미 백화점이 들어선 '수원역'보다도 못한 아류에 불과하다.

대구가 진정으로 한국 사회, 아니 전 세계에 자신의 공간혁명을 보여주려면, 두 가지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하나는 '동대구역' 이름 바꾸기이다. 기차역 이름은 한 도시가 타인에 대해 어느 정도로 깊이 배려하고 타인과 소통하고 있는지에 대한 척도이다. '동대구역'은 대구 바깥의 세계를 배려하지 않으려는, 세상과 소통하지 않으려는 대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동대구역'은 '대구역'으로, '대구역'은 '달구벌역'으로 이름부터 바꾸자. '동대구역'만큼이나 오래된 시인 이시영의 '이름'처럼, 대구 시민들은 "이름을 불러야 한다/ 부르다가 쓰러져 그의 돌이 되기 위해/ 가다가 멈춰 서서 그의 장승이 되기 위해." '그'는 물론 '동대구역'의 새로운 이름, '대구역'이다.

다른 하나는, '동대구역'을 완전히 새롭게 건축해야 한다. 현재의 '동대구역'은 건축의 역사를 들먹일 것도 없이 어떤 미학도 발견할 수 없다. 10여 년 전 교토역을 디자인했던 건축가 히로시 하라의 상상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디자인을 통하여 '동대구역'을 대구 공간혁명의 준거점으로 삼아야 한다.

뒤뚱거리고 있는 '밀라노 프로젝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그리고 어렵게 따낸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아울러 과학기술의 포항과 천년 고도 경주와의 상승적인 공간 혁명을 가속화하려면, '동대구역'부터 공간적으로 혁명하라!

이종찬 (아주대 교수·문화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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