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버러 시장을 아는가/ 파슬리, 세이지, 로즈메리, 타임/ 내 사랑이 살고 있는 아름다운 나의 고향'으로 시작되는 영화 '졸업'의 삽입곡 스카버러 페어(scarborough fair)는 전통시장의 향수를 흠뻑 담은 노래다. 영국 북부 해안 작은 도시 스카버러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열려온 전통의 장터가 있었는데 1780년대 이후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가사에서처럼 각종 허브(herb) 식물이 넘쳐나는 시장으로 항상 젊은이들이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의 안식처였다.
어릴 적, 어머니가 시장을 같이 가자고 하면 군말 없이 따라나설 때가 많았다. 분명 무거운 장바구니 하나쯤은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선뜻 따라나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반대급부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여름철이면 시장 바닥에서 오이냉국에 콩국수, 아이스케이크를 먹을 수 있어 좋았다. 겨울이면 뜨끈한 콩국이나 단팥죽 한 그릇이 기가 막히게 맛이 있었다. 이뿐만 아니다. 운이 좋으면 각설이 타령까지 공짜로 볼 수 있었으니 마다할 리가 없었다. 이렇게 시장은 어릴 적 나의 배고픔과 문화적 허기를 동시에 해결해 주는 장소였다. 그런데 불과 몇십 년 만에 기업형 슈퍼마켓(SSM)과 대형 마트들이 도시 곳곳을 장악하면서 종래의 시장은 본의 아니게 '재래시장'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값싸고 좋은 물건이 많은데도 이용의 불편함에 밀린 것이다.
그렇다고 시장의 이미지가 흐려진 것은 아니다. 재래시장이 '전통시장'으로 거듭나면서 과거로의 명예 회복에 노력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조형물과 간판을 바꾸고 장날마다 상설 공연을 한다고 한다. 사랑방과 놀이방을 설치하고 수유실을 만들어 이용객의 발길을 붙잡기로 했다는 것이다. 대봉동 방천시장의 경우, 이름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로 쇠퇴했는데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려 넣고, 가수 고 김광석 추모 행사를 벌이면서 이제는 제법 명맥을 되찾고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시장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이다. 바야흐로 스토리 텔링(story telling) 시대가 아닌가. 없는 얘기도 만들어 내는 세상인데 삶의 애환이 지천으로 깔린 시장을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아니다.
역시 시장에는 사랑이 있고 낭만이 있고 인정이 있다. 이렇게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곳을 그냥 둘 수야 없지 않겠는가.
윤주태(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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