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서 논술 톺아보기] 논제 분석이 열쇠다②

입력 2011-02-15 07:11:25

프랑스 바칼로레아의 논제를 살펴보면 논술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알 수 있다. 바칼로레아 논제의 경우 주제 자체는 심오하지만 아주 평범한 단어와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중등교육과정의 범주를 벗어나지도 않는다. 나아가 바칼로레아 시험에서 출제와 채점은 교사들이 담당한다. 학생들의 교육과정에 대해서는 교사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고등학교 교사들이 바칼로레아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 논술고사에서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이부련 교수(경상대)에 따르면 프랑스 중등교육과정에서 논술은 국어와 철학, 문학, 과학 등 다양한 교과에 걸쳐 전반적으로 학습된다는 특징이 있다. 논술체계에 대한 구체적인 학습도 중등 국어교육과정의 일부로만 접근되며 논술 자체를 별도의 학습영역처럼 과도하게 인식하진 않는다. 개인적 견해와 사고를 중시하는 프랑스의 사회문화적 특성과 중등의 우수한 국어교육체계로 인하여 논술이란 것이 일상생활 및 일반교과학습에 자연스럽게 녹아있기 때문이다. 바칼로레아 시험의 논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인간 Human)

역사는 인간에게 오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에 의해 오는 것인가?(인문학 Humanities)

예술 없이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예술 Arts)

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과학 Sciences)

정의의 요구와 자유의 요구는 구별될 수 있는가?(정치와 권리 Politics & Rights)

무엇을 비인간적인 행위라고 하는가?(윤리 Ethics)

이처럼 바칼로레아의 논제들은 인간, 인문학, 예술, 과학, 정치와 권리, 윤리 등의 영역에서 가장 본질적인 삶에 대한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논제 자체는 단순하지만 논제에 대한 학생들의 사고의 깊이, 세상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각이 필요하기 때문에 답안을 작성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학생들은 철학에 대한 소양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사고를 가져야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 대학별 논술고사의 논제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을까? 바칼로레아 시험과 유사한 형태의 논술고사 유형이 존재하긴 했지만 제시문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하여 논술문을 작성하는 과정을 논제로 제시하는 방향으로 대체로 정리되었다. 그것은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함이거나 중등교육과정의 한계를 인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이미 그러한 성격이 드러난다. 다음 논제를 보자.

다음 글은 어느 소설의 한 장면을 옮겨 놓은 것이다. 이 글은 ①'복서'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를 통해 인간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암시하고 있다. ②어떤 문제들이 이 글에 암시되어 있는지 글의 내용에 근거하여 밝히고, ③'복서'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각자의 견해를 논술하라.(서울대 1998)

개인과 국가, 민주와 독재, 자유와 억압, 지배와 피지배, 무기력과 비판 등 현대사회가 지닌 다양한 문제들로 확장해서 해석할 수 있는 조지 오웰의 의 한 대목을 제시하여 동서고전 중의 한 대목을 제시문으로 활용하는 당시 논술고사의 대체적인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제시문이 '복서'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를 통해 인간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암시하고 있다고 전제했다. 전제는 부정될 수 없는 명제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더라도 '인간 사회의 문제'라는 전제에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①제시문에 드러난 인간 사회의 문제를 파악하고 ②그 문제를 글의 내용에 근거하여 밝히고 ③'복서'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기술하는 것이 논제를 분석하는 과정이다.

(한준희:대구통합교과논술지원단, 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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