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행복편지] 안동새댁이 부르는'내나이 육십하고 하나일때'

입력 2011-02-15 07:29:20

지난 설에는 구제역에 감염된 돼지를 모조리 살처분하고 실의에 빠져있는 친척을 위로하러 영주에 다녀왔습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언어적인 위로가 무슨 힘이 될까 싶어 가만히 있기만 했는데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처음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안동 곳곳을 다니며, 남안동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소독약을 얼마나 맞았는지 기억도 못합니다. 구제역 초소를 지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잘잘못을 따지는 이야기,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이런 재앙이 생겼다는 말 같은 것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추운 데서 고생하는 그들이 안쓰러워 따뜻한 물이라도 갖다주고 싶었습니다. 이번 일로 아픔을 겪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은 누가 어루만져주나? 심리상담사로서의 사명감이 고개를 들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상황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것밖에 없더군요.

하지만 제가 살고 있는 정신문화의 수도는 지금 'Again 안동'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네! 저는 안동 시민입니다. 안동 이야기라면 좋은 얘기든, 안 좋은 얘기든 귀부터 솔깃해집니다. 이제 안동에 산 지 1년이 조금 지났네요. 제 일터는 대구에 있지만 저는 안동에서 장을 보면서 살림을 사는 주부입니다.

주말부부를 하지 왜 힘들게 출퇴근을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권정생 선생님이 살던 곳이니까요" 라고 답하면 '무슨 소리야?' 는 표정으로 의아해들 합니다. 평범한 직장인이던 저를 문학치료사의 길로 이끈, 한마디로 삶의 터닝포인트가 되어준 '강아지똥'의 작가 권정생 선생님, 안동 남자와의 만남, 결혼과 동시에 안동시민이 되었다는. 압축하면 대충 이런 스토리입니다.

안동 와서 처음 몇달 간은 밤잠 못 자고 아파트 놀이터를 배회했습니다. 저만 외계에서 온 사람처럼 느껴졌거든요. 외로운 섬에 혼자 있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타지인에 대한 배타성이 강하다는 주변사람들의 말에 친구 사귈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어리석은 외로움에서 벗어났습니다. 제 스스로가 만든 외로움임을 잘 아니까요.

대신 틈만 나면 안동 곳곳을 둘러보며 저만의 재미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직업 본능을 숨기지 못하고 안동에도 심리상담센터가 있는지 살펴보게 되고, 안동을 테마로 하는 책 몇 권을 구상해 놓았습니다. 출판으로 이어질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지만, 안 되면 뭐 어떻습니까? 제게는 즐거운 놀이터가 있는 걸요.

안동시 일직면 조탑 마을에 있는 권정생 선생님 집 말입니다. 저는 발걸음이 향할 때마다 그곳을 찾아갑니다. 봄엔 꽃이 피고 여름이면 졸졸졸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예쁘고 가을이면 소복 쌓인 낙엽들이 발바닥에 밟혀 소리를 냅니다. 처마끝에 달린 고드름과 잔설이 햇빛에 보석처럼 반짝입니다. 계절마다 주변 풍경은 달라지지만 선생님이 손수 지었다는 흙벽집은 그 모습 그대로이지요.

아이들이 단체로 놀러 온 날에는 틈바구니에 끼어 재미나는 이야기를 엿듣습니다. 가족 단위 방문자들에게 말도 걸어보고 예술가 '포스' 풍기는 사람들이 오면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며 혼자 놉니다. 그렇게 사계절을 드나들며 찍은 수천 장의 사진은 저의 보물입니다. 딱히 목적을 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정경을 새겨놓고 싶은 마음에 절로 카메라 셔터를 누릅니다.

전국에 있는 지인들을 안동으로 초대하는 것도 낙입니다. 작년에는 서울서 어린이책을 만드는 편집자 가족이 여름휴가를 다녀갔는데 지금도 고맙다며 메일을 보내옵니다. 대구에 사는 지인들도 마찬가지고요. 부산에서 온 사촌동생들을 데리고 올라간 부용대에서 64m 절벽 아래 펼쳐진 절경에 말을 잊고 '아! 아~' 하다가 내려온 기억도 있답니다.

1970년대를 풍미한 가수 이장희 씨가 얼마 전'강호동의 무릎팍 도사'에 출연 오랜만에 노래를 부르더군요. 그가 통기타를 치며 부른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라는 노래를 들으며 가슴 뭉클했습니다. 지난 학기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꿈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안동에 '행복이 가득한 집'을 지어 동네사람 고민 상담을 해주고 시를 들려주면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불러 모아 그림책을 읽어주는 문학치료사로, 동화작가로 살고싶다고 했더니 모두들 멋있다며 꼭 초대해 달라고 하더군요.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지고 꿈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봅니다.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 일 때, 그 때도 울 수 있고 가슴 한구석엔 아직 꿈이 남아 있을까?'

김은아(영남대학교 겸임교수·마음문학치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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