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 발달에도 결정적 시기가 있다. 산모가 임신을 알아채기도 전인 임신 4~5주 무렵부터 뇌와 심장 형성이 시작되고, 임신 6주 무렵 팔, 다리, 귀, 눈 부분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태내 성장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출생 이후 평생 동안 건강 상태를 결정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뇌 발달 역시 태아기와 영유아기에 어느 정도 완성된다. 태아 뇌 발달의 중요성은 최근에 와서야 의학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특히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출산 환경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태아 뇌 발달의 중요성
태아는 자궁 내에서 적극적으로 외부 환경에 적응할 뿐 아니라 이해하고 느끼며 기억하는 존재다. 이런 사실은 오래 전부터 임산부들이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의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최근 일이다.
오랜 기간 태아 초음파 검사를 해 보면 겨우 1~2㎝가량인 태아가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얼굴이 확인될 정도인 4~5개월 쯤이면 마치 젖을 빠는 것 같은 입술의 움직임이나 심지어 손가락 빠는 듯한 움직임도 관찰된다. 7~8개월 쯤에는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다른 움직임은 거의 보이지 않으면서도 얼굴을 찡그리거나 미소를 짓기도 한다.
정확한 시기를 정할 수 없지만 28~32주 무렵이면 생각하고 느끼고 기억하기 위해 사용하는 대뇌피질이 충분히 발달한다. 이러한 뇌 발달은 태아가 비교적 정교한 감정적 메시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엄마와의 유대감 형성은 건강뿐 아니라 생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 임신부는 밤에 잠 들 무렵 태아의 발차기가 늘어나는 것을 느낀다. 엄마의 생리적 상태나 수면패턴이 태아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의미한다.
보다 규칙적인 수면패턴을 가진 엄마에게서 태어나는 아기들은 보다 건강한 수면패턴을 보인다. 엄마가 갑자기 놀라거나 외부의 충격을 받은 경우에 갑자기 발차기 횟수가 증가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조용해지기도 한다. 정확한 데이터는 아직 없지만 행복하고 불만이 없는 산모가 머리 좋고 외향적인 아기를 출산하는 경향이 크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출산 경험이 아기 인생 결정
출산의 경험은 아기의 성격과 기질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출생이란 아기에게 가장 중대한 사건이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정신적'육체적 쇼크이며 아기의 입장에선 절대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따뜻하며 안정감을 주는 양수 속에 떠있다가 어느 순간 좁은 산도를 통과한다. 몇 시간 동안 엄마의 자궁 수축이 태아를 조이고 주무른다. 출산이 끝날 무렵이면 태아는 기진맥진한다. 금방 산도를 통과한 아기들은 마치 갑작스런 고통이나 자극에 놀라 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엄마의 가슴 위에 올려주면 울음을 그치거나 잦아들고, 양수와 비슷한 온도의 욕조에 담가 주면 놀라울 정도로 안정을 되찾는다. 아울러 쉽게 엄마의 목소리나 젖냄새에 반응을 보인다. 이처럼 자연스레 엄마와의 유대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시간은 출산 후 몇 시간 내로 제한된다. 특히 한두 시간 사이가 매우 중요한 결정적 시기다. 출산시 분비된 여러 호르몬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호르몬을 최대한 많이 분비하게 하려면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출산 환경이 꼭 필요하다.
현재 분만 환경은 마치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는 듯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출산이 임박한 산모는 조용하고 집중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산모가 오직 진통과 호흡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힘들고 지친 산모에게 애정 어린 말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조력자도 중요하다. 가족뿐 아니라 분만에 관해서 충분히 의견을 나눈 출산도우미(둘라'Doula)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조용하고 어두운 출산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아기는 다시 자궁 속으로 돌아간 것처럼 안심하며, 처음 접하는 세상에 호기심을 갖게 된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도움말=효성병원 산부인과 구남식 진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