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님께 빌어 낳은 딸, 올해는 취업 좀 시켜주세요"
♥소 여물 짚단 태워 혼나
정월대보름날 아침 엄마는 호두와 밤 그리고 술 주전자를 들고 오시더니 모두 한자리에 모이라고 하셨다. '이것을 먹어야 머리에 부스럼이 안 생기니 눈 딱 감고 한 잔만 마시거라. 그래야 귀도 밝단다'라고 하셨다. 그 누가 사양할 수 있을까?
그 당시 머리에 부스럼이 많이 생겨서 머리카락이 엉켜 붙어 빗질하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게다가 머리에 '이'가 생기면 간지러워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래서 엄마의 말씀대로 부스럼 깨기 호두를 먹고, 귀가 밝다니까 귀밝이술을 꼭 마셔야 했다.
문제는 아침에 한 잔 들이킨 귀밝이술, 일명 '이명주'라 하는데, 이걸 마시고 하루 종일 비틀거리며 명절 만큼이나 중요시 여기는 정월대보름을 보내게 되었다. 친구도 청주 한 잔을 마시고 나니 어리벙벙하다며 우리 집에 놀러왔다.
저녁이 되자 취기가 어느 정도 사라질 즈음, 그날의 절정인 '달집태우기'를 하게 되었다. 달집이 훨훨 타야만 풍년이 온다 하여 긴 막대기 끝에 기름 바른 솜뭉치에 불을 붙여 달집 주위를 빙빙 돌면서 태우는데, 이것을 남자 아이가 해야지 재수가 좋다나? 여자 아이들의 부러운 시선에 더 신이 나서 빙빙 돌리며 달집을 태우다 유별난 개구쟁이 친구가 짚단에 불을 붙이며 장난을 쳤다. 그때 누군가 호되게 고함을 치자 놀란 나머지 이 짚단을 휙 집어던졌는데 그만 겨우내 소여물로 쓰려고 쌓아 둔 짚단 더미에 불이 붙고 말았다. 그날 밤은 어른들의 호위 속에 허가된 불놀이였는데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나 큰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짚 무더기에 불꽃이 훨훨 타올라 마을 전체가 환해졌고 도랑에는 얼음이 꽁꽁 얼어 물을 길어 불을 끌 수가 없었던 몹시 차가운 밤이었다. 짚 무더기를 다 태우고도 모자라 감나무 가지까지 불이 옮겨졌는데, 어른들의 신속한 대응이 아니었다면 마을 전체가 불바다가 될뻔했던 대사건이었다.
그날 이후 마을 이장님 명령 하에 다시는 정월대보름 행사는 하지 못했고, 특히 그 친구는 두고두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입에 오르내린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아찔했던 정월대보름 사건이 세월이 지나니 점점 추억이 되어 간다.
피재우(대구 수성구 만촌3동)
♥오곡밥 지어 시어머님께 칭찬 받아
1986년 1월에 결혼을 하고 처음 맞았던 정월대보름, 직장생활로 서툴게 신혼살림을 꾸려가고 있었는데 친정엄마에게 오곡밥과 아주까리 나물, 고사리나물 무치는 방법을 물어 찹쌀, 차, 수수, 콩, 팥, 차조에다 대추와 밤까지 넣어 오곡밥을 만들고 조물조물 나물도 무치고, 시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땅콩까지 챙겨 시댁에 갔다. 시어머님께서는 놀라시면서 "직장 다니기도 힘든데 참 맛있게도 했구나"하시며 칭찬해 주셨다. 그날 오곡밥과 나물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에 둥실 떠 있던 달님에게 "예쁜 딸 낳도록 해주시고, 대학원 공부도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라고 소원을 빌었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지금 그때 정월 대보름날 달님에게 빌어 낳은 예쁜 딸은 대학 졸업반이 되었고, 나는 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학교에서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2011년 정월대보름에는 "달님, 1986년에 빌어 낳은 예쁜 딸, 이제 다 자라 취업 공부하고 있어요. 부디 올해는 원하는 직장에 꼭 취업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라고 빌며 달님께 하트 표시라도 날려야겠다.
노현미(대구 달서구 송현2동)
♥집집마다 밥·나물 얻으러 다녀
내가 초등학교 시절 정월대보름이면 오곡밥 먹고, 나무 아홉 짐 하고, 더위 팔고, 부럼 깨물고, 깡통 돌리기도 하고 연도 날리고, 동네 사람은 큰 마당에서 종일 윷놀이를 하며 막걸리에 찰밥 먹고 놀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정월대보름이면 집집마다 해 넘어가기 전에 일찍 오곡밥을 해 먹고 솥 안에 밥을 넣어 놓았다. 밥과 나물을 이웃과 나누어 먹었는데 우리들은 밥을 얻으러 다녔다. 어떤 집은 대문을 두드리면 주인이 나와 밥과 나물을 주기도 하고 어떤 집은 대문을 열어놓고 밥과 나물을 가져가도록 부엌문도 열어 놓았다. 집집마다 같은 밥과 나물이지만 여러 집 밥을 얻어먹으면 건강하다는 말이 있어 정월대보름만은 어른들도 다 이해를 해 주었던 것 같다. 그렇게 얻은 밥을 모아 화롯불에 철판을 올려놓고 볶아 친구들과 숟가락을 부딪쳐 가며 먹으면 꿀맛이었다. 푸르스름한 달밤에 취나물, 고사리, 호박고사리, 무나물, 콩나물 등 갖가지 나물과 밥을 들고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면 몸은 추워도 참 재미있었다. 한 번은 친구 엄마가 가져가라고 가마솥에 밥과 나물을 넣어놓았다고 해서 가는 길인데, 키가 작은 사람이 검은 롱 코트에 삿갓을 쓰고 앞장서 가더니 친구네 부엌에 들어가 우리가 가져가려고 했던 밥과 나물을 옆구리에 끼고 가는 것이었다. 뒤따라가며 "누구세요?"해도 아무 말이 없어 개구쟁이들이 돌을 던지고 놀려도 뒤도 안 돌아보고 가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가 친구들과 윷놀이하다 벌칙으로 밥을 가져갔다고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나는 친구들과 킥킥거리며 놀렸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나중에 얼마나 죄송했는지 모른다. 지금도 정월대보름 하면 그때 그 일을 잊을 수가 없다.
함종순(김천시 개령면)
♥ "정월대보름달은 대단한 달"
결혼 전 정월대보름은 큰 명절이었다. 큰집에 모여 친척들과 나물밥을 먹고 맨 먼저 달을 보겠다고 까치발을 하고 동쪽 하늘이 달이 뜨기를 기다렸다. 나이가 꽉 찬 사촌언니는 "올해는 시집가게 해주이소~"하고 웃었고, 큰 아버지는 "올해 농사 풍년들게 해주이소~"하고 빌었다. 난 어린 맘에 달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었던 것 같다. 해마다 정월대보름날 달님이 노랗게 떠 줘서 고맙다고 내년에도 또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때부터 난 정월대보름달은 대단한 달이라고 생각했다.
달님에게 빌었던 대로 사촌언니들은 하나 둘 시집갔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난 후, 첫 해 시아버님 생신이 정월대보름 다음 날이어서 다시금 정월대보름 행사가 이어지게 되었다. 시아버님 생신 준비를 위해 형님들과 음식을 장만하는데 생신 음식과 함께 빠뜨리지 않는 것이 오곡밥과 나물, 그리고 약식이었다. 그렇게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시아버님 생신 케이크 촛불을 끄고 누가 먼저 랄 것 없이 마당으로 나간다. 달구경을 하기 위해서다. 아버님도, 어머님도, 형님들도, 아주버님도, 아이들도, 그 속에 나도 달구경을 한다.
비록 정월대보름에서 하루 지난 달이지만 여전히 크고 동그랗고 밝다. 난 또 속으로 빈다. "달님 고마워요! 올해도 변함없이 떠 줘서 그리고 올 한 해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웃음 가득할 수 있게 지켜주세요."
정은숙(대구 수성구 시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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