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희의 즐거운 책읽기] 좁쌀 한 알/최성현/도솔

입력 2011-02-10 14:53:59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숨은 지도자 장일순의 그림과 일화 소개

시인 김지하의 스승이고, '녹색평론' 발행인인 김종철이 단 한번 보고 홀딱 반했다는 사람. 목사 이현주가 부모 없는 집안의 맏형 같은 사람이라 했고, 판화가 이철수가 진정한 뜻에서 이 시대 단 한 분의 선생님이라 꼽는 사람.

'한겨레 21' 정재숙 기자가 장일순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어째서 '조 한 알'이라는, 그처럼 가벼운 호를 쓰십니까?" 장일순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나도 인간이라 누가 뭐라 추어주면 어깨가 으쓱할 때가 있잖아. 그럴 때 내 마음을 지그시 눌러주는 화두 같은 거야. 세상에 제일 하잘것없는 게 좁쌀 아닌가. '내가 조 한 알이다' 하면서 마음을 추스르는 거지."

눈을 내리감고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에 잠긴 사람의 얼굴이 꽃으로, 그것도 단 한 송이로 그려져 있는 난초 그림을 본 적이 있는가? 예술로서, 문인화로서 까다로운 격식 따위는 차리지 않는, 슬픔을 머금은 듯 웃고 있는 장일순의 글씨와 그림. 장일순의 글씨와 그림을 일화와 함께 소개하는 최성현의 '좁쌀 한 알'을 읽으며, 현자(賢者)란 바로 이런 분을 말하는구나 싶었다.

장일순은 20대 초반 아인슈타인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세계를 하나의 연립정부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던 '원 월드 운동'에 참여했고, 20대 중반에는 원주에 대성중'고등학교를 세웠다. 30대 초반에는 참여해서 나라를 바로 세우자는 생각 아래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30대 중반에는 미국이나 소련의 간섭을 받지 않고 통일을 해야 한다는 '중립화 평화통일론'을 내세웠다가 정치범으로 3년간 옥살이를 하였다. 3년간의 옥살이는 장일순에게 큰 영향을 미쳐, 그 후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잘살 수 있도록 밑바탕에서 돕는 일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 아래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숨은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출옥한 뒤에도 장일순은 오랫동안 사회안전법과 정치정화법에 묶여 모든 활동에서 철저한 감시를 받아야 했는데, 그때부터 잠시 쉬었던 붓글씨를 다시 시작하였다. 장일순에게 붓글씨는 감시의 눈길을 피하면서, 마음을 닦는 참선의 한 방법이었다.

그 속에서도 장일순은 1960년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인 신용협동조합의 설립과 정착을 도왔고, 70년대에는 천주교 원주교구의 주교였던 지학순과 손을 잡고 원주가 부패한 정치권을 일깨우며 저항하는 도시가 되는 데 주춧돌 노릇을 했다. 83년에는 농산물의 도농직거래 조직인 '한살림'을 창립했다. 생명의 원점인 밥상에서부터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자는 취지였다.

원주 장일순의 집에는 그에게 방향을 묻고, 지혜를 얻고자 온갖 사람이 다 모여들었다. 젊은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하려고 하면 이야기를 들어보고 바른 일이다 싶으면 후원을 아끼지 않는 어른이기도 했다.

장일순은 동학의 2대 교주였던 해월 최시형의 사상을 세상에 알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해월 선생님의 말씀 중에 밥 한 그릇이 만들어지려면 거기에 우주 일체가 참여해야 한다는 말씀이 있어. 우주만물 가운데 어느 것 하나가 빠져도 밥 한 그릇이 만들어질 수 없다 이거야. 밥 한 그릇이 곧 우주라는 얘기도 되지." "길가로 풀이 나서 자라는 걸 보는데, 그 풀들이 절 일깨우지요. 풀은 땅에 뿌리를 박고 밤낮으로 해와 달을 의연히 맞고 있단 말이야. 거기에 못 미치지요. 부끄럽지요. 이렇게 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마음을 씻는 거지요."

목사 이현주의 대담과 정리로 펴낸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에서 노자 사상을 이해하기 쉽게 들려주는가 하면, 기독교, 불교, 유교에 대한 이해도 깊었던 장일순.

치악산으로 가로막힌 원주에

서 한평생 살았지만, 드넓은 세계를 내다보는 혜안을 지녔던 사람. 사람들이 누구나 그리는 시대의 스승 노릇을 해내었던 장일순 같은 이를 책에서라도 만날 수 있으니 참 반갑다.

신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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