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굶주림, 평양공화국, 인민의 杖殺(장살)

입력 2011-02-10 10:51:24

독소전(獨蘇戰1941~1945) 내내 소련은 식량부족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시달렸다. 독일군의 질풍 같은 진격으로 '유럽의 빵 광주리'로 불렸던 곡창지대 우크라이나를 점령당한데다 농업집단화가 빚은 생산성 저하와 징집으로 인한 농촌 인력 부족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소련의 대처방법은 철저한 배급제였다. 그것은 가혹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먹고 그럴 능력이 없는 자는 가족에 얹혀 살든지 아니면 굶어죽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체제가 버틸 수 없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해준 것이 노동자의 사경(私耕) 허용이었다. 전쟁이 한창일 때 공원, 유원지 등 도시의 빈땅은 가리지 않고 채마밭이 들어찼다. 이런 채마밭은 1942년 500만 곳, 1945년 무렵에는 무려 1천600만 곳을 넘었다. 여기서 생산된 식량은 감자의 경우 1944년 무렵 소련 전체 산출량의 4분1에 달했다. 암시장도 주요 식량공급원이었다. 농민은 국가 지정 할당량을 제외한 농산물을 비싼 값에 내다 팔았다. 그 값은 1944년의 경우 빵 1㎏이 일주일치 임금과 맞먹었다. 식량과 바꿀 돈이나 귀중품이 없는 여자들은 몸을 팔았다. 한 미국인 방문객은 그 풍경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다 큰 소녀들이…입술 연지를 바르고, 빨간 신발을 신고, 모자에 붉은 리본을 달고, 난로 검댕으로 속눈썹을 칠해 단장을 했다."('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리처드 오버리) 하지만 소련 정부는 이 모든 걸 모른 체 했다. 자본주의 종식을 내건 체제가 자본주의 방식으로 살아남고자 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소련은 잠시 연명했지만 이후 반세기가 못돼 무너졌다.

독소전 기간중 소련 후방의 풍경이 북한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북한 인구 2천400만 명중 북한군 140만 명과 평양주민 260만 명 등 400만 명이 배급으로 살 뿐 나머지 2천만 명은 대부분 지하경제에 의존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지하경제가 번성(?)하고 있지만 북한 당국이 단속하지 않는 이유는 독소전 당시 소련과 다르지 않다. 배급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암시장마저 폐쇄할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북한 당국이 암시장의 확산을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대로 뒀다간 지하경제가 체제를 포위하면서 인민공화국이 '평양공화국'으로 쪼그라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북한이 바로 그 형국이다. 현재 김정일 체제는 지하경제를 그대로 둘 수도, 폐쇄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갇힌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이다.

그 거친 숨소리는 김정일의 최대 권력기반인 군에서도 새나오고 있다. 북한군 전체 부대의 70%가 군인들에게 된장국 대신 소금국을 끓여 먹일 만큼 식량사정이 악화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우라늄 광석을 비밀리에 캐는 부대의 군인들이 집단적으로 작업을 거부하는 '반란'을 일으켰고 이를 보위부가 진압했다는 얘기도 있다. 또 부모가 굶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장교가 김정일 정권을 저주하며 자살했고, 강원도에 주둔한 부대에서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 사이 군인 7명이 아사(餓死)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 정도면 '볼 장 다 봤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반란과 혁명 뒤에는 반드시 배고픔이 있었다. 프랑스 혁명이 그랬고 소비에트 혁명이 그랬다. 특히 소비에트 혁명은 인민의 배고픔 때문에 성공했지만 그것을 해결 못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감시망이 아무리 조밀해도, 공안기관과 정치범 수용소가 아무리 공포를 자아내도 주린 배가 토해내는 분노를 영원히 억누를 수 없음은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3천만명을 굶겨죽인 대약진운동이 한창일 때 총리였던 저우언라이(周恩來)는 한 인민공사 공공식당에서 굶주린 농민으로부터 이런 소리를 들었다. "사무장(물자공급 책임자)이나 취사원은 조금 많이 먹습니다. 그 가족이 또 조금 많이 먹을 겁니다. 우리 입에 들어오는 것은 고작 200g입니다. 그것으로는 배가 부를 리 없지요. 총리, 이대로 가다가는 앞으로 2년 뒤에는 총리도 굶어 죽을 겁니다." 김정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사가 아니라 인민들에 의한 장살(杖殺)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鄭敬勳(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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