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한 표현밖에 못하는 한 경상도 사나이가 내 환자가 됐다. 김종호(가명·60) 씨는 2년 전 간까지 전이된 대장암 수술을 했다. 워낙 건강해서 항암치료도 잘 견뎠지만 암은 재발했다. 두 딸이 있지만 멀리 살기 때문에 부인과 단둘이서 평온관에 입원했다. 부인은 의료진과 간단한 상담을 한 뒤, 평온관 간병인에게 환자를 부탁해두고 어디론가 바삐 가버렸다.
오후 회진 때 보니, 환자는 안절부절못하며 무척 힘들어했다. 말기 암 환자에게서 병원이 새로 바뀌는 것은 부담이 많은 큰 일이다. 대부분의 환자가 대학병원에서 옮겨 오기 때문에 병원이 바뀐다는 불안감을 덜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어른이지만 마치 어린아이가 낯가림을 하는 것 같다. 친근한 보호자가 꼭 필요한 시기이다. 입원 첫날밤을 잘 지내야만 쭉 편해지기 때문이다. 간병인이 있지만 당분간 그 전처럼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인에게 부탁을 했는데 약속을 어긴 것이다.
하지만 그녀도 오랜 간병으로 많이 지쳐보였다. 어쨌든 부인이 곧 오기로 했다. 다음날 수간호사가 환자를 정신과에 의뢰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아침부터 "경옥아!"라고 부르는 소리가 평온관을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경옥이 뒤에는 조금 험한 말소리도 들려왔다. 부인 이름이 경옥인가 보다. 오전 회진을 미루고 진료실에서 부인과 마주 앉았다. 정신과로 의뢰하려면 기존의 병력을 알아야 했다. 그는 아프기 전에도 직설적이고 딱딱한 사람이었지만, 가정밖에는 모르는 성실한 가장이었다.
경상도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나는 경상도 남자와 결혼을 했다. "니는 내가 말로 해야 아나?" 이런 식의 남자에 익숙한 나는 그를 정신과에 의뢰하지 않았다. 부인에게 '미안하다는 말하기' 처방을 제안했다. 말기 암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서러운데, 처음 입원한 병원에 알고 있는 사람 한 명 없이 혼자 있게 되면 환자는 버려진다는 느낌까지 받는다.
그래서 경상도 사나이가 화가 난 것으로 진단했다. 물론 약간의 항 불안제와 진통제도 처방했다. 그의 섬세한 감정을 돌보지 못했으므로 주치의 또한 미안하다고 여러 번 말했다. 점심때 그가 부인과 함께 휠체어를 타고 산책했다. 오늘이 부인 생일인데, 병원 1층에 있는 꽃집에 가서 꽃을 사주었다. 경상도의 거친 따뜻함을 이해하는 경상도 여자가 경상도에서 호스피스의사로 근무하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호스피스의사는 의학적인 지식도 중요하지만, 환자의 문화적인 측면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하다. 죽음은 그 지역 사회의 문화와 관습에 맞추어져야 편안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떠나는 사람과 남아 있는 사람 사이에서 슬픔을 위로해줄 수 있는 문화적 다리 구실을 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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