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발이 왕이 즐기던 고급요리?…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입력 2011-02-05 07:30:30

세상에 '그냥' 만들어진 것은 없다? 우리가 무심코 먹는 길거리 음식 하나에도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가 담겨 있다. 고급 요리도 아니고 어찌보면 하찮은 음식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그 속에는 그런 음식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과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 그래서 음식문화 연구가 윤덕노 씨는 주장한다.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찐빵

찐빵은 대구 사람들이 사랑하는 겨울철 먹을거리 중 하나다. 가창의 명물인 찐빵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인근 도로변은 늘 주차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룰 정도이다. 찐빵은 '빵'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통상적인 빵의 생김새와는 사뭇 다르다. 모양도 그렇지만 수증기로 쪄 내는 방식까지 사실은 만두에 더 가깝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고기와 채소를 다져넣은 만두와 달리 단팥을 넣은 정도랄까.

이는 찐빵이 중국 만두가 일본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1341년 원나라에 유학을 갔던 일본 승려 류잔 선사가 귀국하면서 함께 일본에 건너간 임정인이라는 중국 사람이 찐방을 만들었는데, 절에서 생활했던 그가 고기 대신 단팥을 넣은 새로운 만두를 만든 것. 더구나 당시 일본은 7세기 덴무 일왕이 가축 도살을 금지했을 뿐 아니라 고기도 먹지 말라는 육식금지령을 선포한 이후 1천200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던 시절이었다. 섬나라인 일본의 지리적, 환경적 특성상 가축의 외부 조달이 쉽지 않았던데다 살생을 피하는 불교의 영향도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임정인이 만들었던 팥 넣은 만두가 지금 일본에서는 '나라 만주'의 원조가 됐고, 한국에서는 찐빵으로 정착됐다.

◆순대

돼지창자에 당면과 채소, 선지를 채워넣은 다소 엽기적인 음식 순대. 하지만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즐겨먹는 국민 간식거리로 사랑받는 음식이다. 흔히 사람들은 순대를 한국만의 고유한 전통 음식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순대는 아시아 사람 대부분이 즐겨 먹는 음식 형태 중 하나라고 한다. 게다가 다소 그 생김이 흉하게 생겨 시장통에서나 사 먹는 싸구려 음식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기원전 11~8세기 무렵의 시경(時經)에는 손님이 왔을 때 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와 같이 특별한 행사가 있었던 날에 순대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니 꽤 귀한 음식이었다는 이야기다. 조선왕조실록 중 연산군 일기와 제사에 필요한 물품과 제물 배열하는 법 등을 기록한 '제물등록'과 '함흥본궁의식' 등의 문헌에서도 "소의 창자와 양의 창자 등을 반드시 준비했다"고 적혀 있어 순대의 기원이 제사 음식에서 출발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호떡

호떡은 '오랑캐'라는 뜻의 한자 '호'(胡)와 우리말 '떡'이 합쳐진 이름으로 '오랑캐들이 먹는 떡'이라는 의미다. 중국에서도 호떡은 '후빙'(胡餠)이라고 해서 오랑캐 땅에서 전해진 음식으로 취급한다. 이는 호떡의 기원이 옛날 '서역'이라고 불리던 지금의 중앙 아시아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흉노족, 돌궐족, 선비족으로 불리던 중앙아시아와 인도 지역 사람들이 즐겨 먹던 빵인 '난'이 바로 호떡의 기원인 것. 그렇다 보니 호떡은 원래 밀가루로만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며, 설탕이 들어간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된 것이다.

호떡은 한나라 때 중국에 전해졌다고 하는데 이것이 다시 한국으로 전해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중국 상인들이 대거 한반도로 들어오면서 인천 제물포와 서울 중국 대사관 주변인 명동과 종로로 퍼지면서 인기를 끌게 됐다.

◆김밥

흔히 김밥은 일본의 김초밥에서 유래됐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의 영향을 받아 조금 변형됐을 가능성은 있지만, 김밥은 우리나라에서 훨씬 오래 전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음식이다. 지금처럼 김밥에 단무지와 계란, 시금치, 당근 등의 고명이 들어가게 된 것은 근세 이후의 일이지만 김에다 밥을 싸먹은 것은 훨씬 이전의 일이다. 김에다 밥을 놓고 채소를 얹어 원통형으로 말아먹은 일본의 김초밥인 노리마끼는 1829년에 등장하지만, 당시 조선 순조 무렵에는 우리나라에 이미 다양한 김밥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현재의 김밥과는 모습이 다르고, 전혀 다른 고명을 얹었거나 아예 고명을 넣지 않고 밥을 김으로 싼 주먹밥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주먹밥 안에 고명을 넣거나 맨밥을 김에다 싸서 먹는 것은 정월 대보름날 오곡밥을 김으로 싸먹는 복쌈이 그 예로 동국세시기에 나온다.

◆돼지족발

요즘 대입 수능날 수험생들은 엿을 먹으며 합격을 기도한다. 옛날 과거 시험 보는 선비들도 간절하기는 지금 수험생 못지 않았는데, 그 중 재미있는 음식 하나가 바로 돼지족발이다. 시험보기 전 족발을 먹는 것은 중국 당나라 때의 고사에서 비롯된 풍습이다. 과거 시험을 앞두고 친한 선비들끼리 모여 이 중 한 명이라도 장원급제를 하면 수도인 장안에 있는 대안탑에다 붉은 먹으로 합격자 이름과 시 제목을 새겨넣어 영원토록 기념하자고 서약한 것.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기원이 생겨났다. 붉은 글씨로 시와 이름을 남긴다는 '주제'(朱題)와 돼지족발이라는 '저제'(猪蹄)가 중국어로는 발음이 똑같다 보니 과거 시험을 보기 전 수험생에게 족발을 먹이면서 장원급제의 소원을 담게 된 것이다.

◆붕어빵

겨울철 대표 간식인 붕어빵. 붕어빵의 기원은 모계(母系)의 경우 서양의 와플, 부계(父系)는 동양의 만두에서 찾을 수 있다. 붕어빵의 모체인 풀빵은 대략 1930년대 국내에서 처음 선보였지만 일본의 '도미빵'이 원조다. 이 빵은 1909년 도쿄의 한 제과점에서 처음 만들어졌는데, 그 기원은 18세기 일본에서 서양의 와플을 변형해 만든 오방떡이다. 18세기 후반 일본 에도시대 때 밀가루에 계란, 설탕을 넣어 반죽한 후 하얀 팥을 채워 구운 '이마가와야끼'라는 일본 오방떡이 그 원조인 것. 다시 오방떡의 기원인 와플의 뿌리는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특정 무늬를 새겨넣은 두 개의 금속판을 경첩으로 연결해 여닫을 수 있게 한 후 그 사이에 반죽을 넣고 양면으로 구워서 만든 것이 바로 와플이기 때문이다. 붕어빵의 겉모습은 서양의 와플에서, 내용물은 동양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닭발요리

닭발은 언제부터, 누가 주로 먹었을까? 포장마차에서 주로 파는 음식이나 버리는 부위를 모아 만든 허드레 음식이라는 편견을 갖기 쉽다. 하지만 닭발의 역사를 보면 일반 백성들이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려고 먹었던 싸구려 음식이 아니라 제왕들이 먹던 요리였다.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이덕무가 쓴 청장관전서에는 산해진미로 곰 발바닥, 닭 발바닥, 제비 넓적다리, 성성이(오랑우탕) 입술 등이 있다고 적혀있다. 이덕무가 닭발이 천하 진미라고 한 것은 3세기 말엽 중국 서진 때 사람인 장협의 문장을 인용한 것으로 적어도 3세기 이전 중국에서는 닭발을 고급 음식으로 여겼던 것 만큼은 분명하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임금은 닭발을 한 번 먹었다 하면 수천 개를 넘게 먹어야 만족했다는 기록도 있다.

◆단무지

무를 소금에 절인 우리나라의 짠지처럼 단무지는 무를 소금과 쌀겨 등에 절여 먹는 반찬이다. 일본말로는 '다쿠앙'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다쿠앙이 절인 채소'라는 뜻의 '다쿠앙츠케'를 줄여 부르는 말로 '다쿠앙'이라는 승려가 절인 채소라는 뜻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이런 일본 음식인 단무지가 왜 중국요리에 따라나오게 됐을까? 이것은 '경양식'을 생각해보면 쉽다. 돈가스, 비프가스, 함박 스테이크 등이 모두 일본에서 서양 요리를 변형시켜 개발한 것인데다 '경양식'이라는 레스토랑 자체도 일본에서 유행한 음식점 형태이다 보니 반찬으로 일본 단무지가 나오게 된 것. 우리나라 중국 음식점이 일본식 단무지를 제공했던 이유도 비슷하다. 화교들이 한국에 중국음식점을 열었던 것은 일제 강점기로 고객의 상당수는 돈 있는 일본인이었던 것. 게다가 메뉴 역시 짬뽕의 경우에는 중국 음식이 일본에서 변형돼 만들어진 것으로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매운 짬뽕으로 한국화한 것이다. 당연히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는 단무지가 반찬으로 애용될 수밖에 없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참고도서 :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