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근대미술의 향기] 독특한 붓질, 감각의 흥취 맘껏 구사

입력 2011-02-01 07:3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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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조, 배(船), 91×72㎝, 1939. 제18회 조선미전 출품작.
김용조, 배(船), 91×72㎝, 1939. 제18회 조선미전 출품작.

김용조, 배(船)

이 작품은 상하 이등분된 화면에 무게 중심을 각각 좌우로 나누어 배치한 구도로 앞으로 나아가는 배와 뒤로 멀어지는 풍경이 서로 미끄러지며 역동적으로 연결되는 구성이 괄목할 만하다. 멈춰선 배들을 그린 장면이나 바다와 선박들의 움직임을 느끼게 해 흥미롭다. 후방의 경치에 중심이 되는 독특한 모양의 왼편 산이 화면 상반을 지배하고 아래쪽은 어선의 묘사가 눈길을 끌며 상하 좌우로 비대칭의 절묘한 균형을 이룬다.

제작 기법을 보면 붉은 노을이 진 하늘을 나이프나 넓고 평평한 붓으로 물감을 가로로 길게 펴 바르고 산은 윤곽선 내부를 메워나간 방식으로 지그재그로 움직인 동작의 흔적을 뚜렷하게 남기고 있다. 이는 화면을 평면적으로 인식하고 자발성이 느껴지는 붓놀림이 적용된 것으로서 수채화의 기법으로부터 발전한 취향과 무관하지 않다. 유화의 기법으로서는 새롭고 참신해 보일 수밖에 없고 기량 면에서 대상을 정확하게 재현하려는 수준을 벗어나 순수한 채색의 조형미를 구사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사실적인 묘사에서는 형상을 따라 붓질의 방향도 결정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와 별도로 어둑한 모습의 산들을 음영의 묘사보다도 붓 자국을 따라 난 물감의 두터운 발림 흔적들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독특한 무늬를 형성한 붓질에서 조형적인 감각의 흥취를 즐기고 있다. 시각적으로 푸른 물빛과 대조되어 노을이 붉게 타는 저녁나절 바다 풍경의 감흥을 한층 자극한다.

이렇게 자신감 있는 표현을 성취한 뒤 김용조는 일본 유학의 꿈을 결심한 듯하다. 이후 3년간의 일본 활동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돌아오나 결국 거기서 얻은 병으로 일찍 요절하고 만다. 이 작품은 제18회 조선미전 출품작으로 정확한 기록을 가진 것이어서 미술사적으로도 매우 귀중하다. 조선미전은 나중에는 중등학생의 입선도 빈번해지고 작품의 질적인 수준 면에서 그리 대단한 평가나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되기에 이르지만 그래도 일제 식민지 내내 모든 작품 활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작품성에 대한 평가가 관전의 기준과 당락 여부에 종속되는 것은 물론 사실상 민족예술의 창의적 발전을 저해한 폐단이 컸던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보관상태가 양호하지 못해 먼지에 심하게 오염된데다 채색 당시의 발색이 크게 바래있고 물감의 박리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큰 화면이 그의 작품 세계의 분위기와 구성 등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우측 하단에는 영문으로 쓴 서명이 들어있고 연도로 보이는 숫자가 병기돼 있다. 아마도 쇼와 14년(1939)을 쓴 것 같은데 뒤에 일부가 지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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