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육상 강국을 가다] (9.끝) 케냐 꿈나무 조련 시스템

입력 2011-01-31 08:59:57

돈되는 '육상 아이돌' 伊 사설회사서 직접 키운다

로사 아소치아티 소속 케냐 선수들이 코치 지도, 의료 서비스, 대회 출전 등 회사의 전적인 지원을 받으며 훈련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 브레시아에서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로사 아소치아티 소속 케냐 선수들이 코치 지도, 의료 서비스, 대회 출전 등 회사의 전적인 지원을 받으며 훈련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 브레시아에서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케냐 육상 꿈나무를 발굴하기 위해 아이들을 대상으로 자체 대회를 열기도 한다. 이채근기자
케냐 육상 꿈나무를 발굴하기 위해 아이들을 대상으로 자체 대회를 열기도 한다. 이채근기자

육상 중장거리 '세계 최강국'은 케냐다. 케냐는 2009년 베를린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중장거리 종목을 앞세워 금메달 4개 등 11개의 메달을 쓸어 담아 미국, 자메이카에 이어 종합 순위 3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이런 케냐 선수들을 발굴해 중점 육성하는 곳이 있다. 케냐 정부도, 육상연맹도 아니다. 이탈리아 브레시아에서 이탈리아인이 운영하는 '로사 아소치아티'(ROSA ASSOCIATI·로사 스포츠마케팅 및 매니지먼트협회)라는 사설 에이전트 회사다. 이곳은 케냐의 육상 꿈나무들을 발굴해 체계적인 합숙 훈련 등 장기 투자로 '최고의 선수'를 육성하고 있다.

◆제3국 유망주 육성 시스템

이는 우리나라 '아이돌 스타'를 키우는 연예기획사와 비슷하다. '끼'가 있는 어린 학생들을 발굴해 연습생 기간을 거쳐 가요계나 연예계에 데뷔 시켜 스타로 만드는 것과 비슷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계약, 국제대회 출전 등 매니저 업무를 담당하는 본사는 이탈리아 브레시아에 있지만 스카우트와 매니저, 훈련캠프 등은 케냐 현지에 있다. 이들이 케냐에서 대회를 직접 보거나 네트워크를 활용해 '가능성 있는' 어린 선수를 발굴해 내 육성한다. 각종 업무가 세분화돼 체계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선수들은 현지에서 전문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이곳의 또 다른 장점은 의료 지원이다. 공동 대표 가브리엘 로사와 페데리코 로사는 부자지간으로 각각 40년, 15년 동안 스포츠 전문의로 선수들을 관리하고 있다. 이들은 의학적인 부분을 최대한 접목시켜 선수들의 신체적인 문제 등을 파악한 후 선수 각각에 맞는 방식으로 훈련시키고 관리한다.

페데리코 로사는 "이 시스템은 효과가 좋아 선수와 회사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며 "우리 회사는 선수들이 들어오고 싶어 하는 세계 3대 회사 중 하나로 이곳에 소속돼 훈련하면 좋은 성적을 얻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곳의 수익 분배 시스템도 돈을 먼저 투자해 선수를 키운 뒤 대회 상금이나 스폰서 등으로 수익이 생기면 계약한 비율대로 회사와 선수가 나눠 가지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성공한 유명 선수

이곳에는 마라톤, 하프 마라톤, 1만m, 크로스컨트리 등 중장거리 세계기록 보유자, 각종 국제대회 우승자들이 수두룩하다. 뉴욕·보스턴·런던·베를린·시카고 등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마라톤대회에서도 36차례나 이곳 소속 선수들이 우승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열린 춘천·서울·영광 등 3개 국제마라톤대회 우승자도 모두 이곳 소속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사무엘 완지루와 2003년 세계 기록(2시간4분55초)을 세웠던 폴 터갓, 모세스 타누이, 자펫 코스게이 등이 이곳 출신이다. 사무엘 완지루는 17세 때 이곳에 들어온 뒤 21세 때 베이징올림픽에서 2시간6분30초로 우승했고, 22세 때 로사의 눈에 띈 폴 터갓은 계약 4개월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케냐에서도 무명 선수였던 자펫 코스게이는 이곳에 들어와 훈련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부터 두각을 나타낸 경우다. 코스게이는 1998년 30세 때 계약한 뒤 토리노·베니스·로테르담 등 국제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하고 뉴욕국제마라톤대회에서 2등을 차지한 뒤 다시 2000년 도쿄국제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저력을 과시했다.

로사 대표는 "15세 등 어릴 때 만난 선수는 국제대회에 출전하고 기량을 꽃 피우기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릴 수 있고, 선수 생활을 하고 있던 선수는 계약하자마자 바로 국제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며 "각 선수들의 나이나 재능, 기량, 상황, 몸 상태, 선수 생활 여부 등에 따라 그에 맞게 관리하고 훈련시키는데 어린 유망주는 교육기간이 더 길다"고 설명했다.

◆로사 아소치아티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 스포츠 마케팅 및 매니지먼트 회사로, 1997년 공식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실제 시작한 건 1992년이다. 가브리엘 로사가 10,000m 선수였던 모세스 타누이의 코치를 맡아 마라톤으로 전향, 성공시킨 뒤 케냐의 젊은 선수를 발굴하면서 본격적으로 이 사업에 발을 들였다. 타누이는 1991년 도쿄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00m에서 우승한 뒤 종목을 마라톤으로 바꿔 1996년·1998년 보스턴마라톤대회, 1997년 춘천마라톤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곳은 스포츠 전반에 걸쳐 마케팅 및 매니저 업무를 하지만 주 대상은 육상이다. 특히 케냐 선수를 중심으로 한 중장거리에 중점을 두고 케냐에 전문 육상 훈련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 소속돼 훈련받고 있는 육상 선수는 250명 정도로,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영국, 브라질, 세르비아, 알제리, 모로코, 중국, 에티오피아 등 국적이 다양하지만 케냐가 200명 정도로 대부분이다. 케냐 선수의 경우 선수 발굴부터 훈련지도, 스폰서 연결, 대회 출전까지 모두 관리해주는 반면 다른 국적의 소속 선수들에겐 대회 출전 등 매니저 역할만 해 준다. 마라톤, 5천m, 1만m 등 중장거리는 물론 100m, 200m, 400m, 허들, 장대높이뛰기 등 육상의 트랙과 필드 전 종목을 대상으로 하지만 마라톤이 주요 종목이다.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도 이곳 소속 선수들이 중장거리 종목에 대거 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로사는 "올 대구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가 20명 정도 될 것으로 보이지만 각각 자국의 대표 선발전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정확히 몇 명이나 되고 누가 출전할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고 했다.

이탈리아 브레시아에서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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