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내리던 이달 23일,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지도부와의 안가(安家) 회동에서 개헌의 필요성과 당 중심의 논의를 주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의도가 다시 개헌 이슈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우선 개헌의 전위대를 자임해온 이재오 특임장관과 한나라당 내 친이 주류 측은 "국회에서 금년 내 개헌 논의를 매듭지어 달라는 주문"이라고 해석하면서 개헌 드라이버를 본격화할 태세다. 임기를 1년 남겨뒀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1월에 제안했던 개헌론이 안개처럼 떠오른다.
그동안 개헌은 우리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던 문제다. 이른바 '1987년 체제'라고 일컬어지는 현행 헌법이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획기적인 공헌을 해 왔지만 지금은 5년 단임 대통령제에 따른 권력 집중과 대통령을 쟁취하기 위한 무한 정쟁 등으로 우리 민주주의가 한 단계 도약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 개헌의 명분이었다. 여기에 5년 단위의 대선과 4년 단위의 총선 및 지방선거 때문에 생기는 국력의 낭비도 그 명분으로 덧붙여 거론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개헌 논의가 번번이 좌초되었던 것이 우리의 헌정사다. 정치권의 이해와 맞물려 정략적으로 이용되어왔다는 것이다. 이번 한나라당의 개헌 논의에 대한 시중의 평가도 종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당사자들은 이번 개헌 논의의 진정성을 연일 설파하고 있지만 고도의 정략적 제안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도 개헌 논의를 위해 의원 총회를 준비하는 당내 친이계와 이를 달가워하지 않는 친박계의 태도가 대비되고 있지 않는가?
더구나 실현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우선 한나라당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가 개헌에 부정적이고, 야권에서도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차기 주자들이 대부분 개헌에 냉담하다. 개헌 논의가 국회는 물론이고 한나라당 문턱도 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집권 여당은 개헌 놀음으로 줄세우기와 계파 관리를 하고 있다"는 민주당 전병헌 정책위의장의 주장에서 개헌 논의를 강력하게 추동하고 있는 한나라당 내 친이계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최근 개헌 논의가 여론의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개헌 지지가 50%를 넘었지만 최근에는 30%대로 떨어졌다. 일부 정치인들이 국가 대사인 개헌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않느냐는 우려 때문이다. 동시에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돌아 4년차에 접어든 현시점에 개헌을 추진하는 이유에 대한 추궁이기도 하다. 크게 양보한다고 해도 대통령 임기 말에 찾아오는 돌림병 정도로 보인다는 것이다. 민생문제에 지친 국민은 국정혼선에 인내할 여유가 더 이상 없다.
윤순갑 교수(경북대 정치외교학과)
댓글 많은 뉴스
민주, '尹 40%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에 "고발 추진"
尹 탄핵 집회 참석한 이원종 "그만 내려와라, 징그럽다"
"尹 영장재집행 막자" 與 의원들 새벽부터 관저 앞 집결
尹 탄핵 정국 속 여야 정당 지지율 '접전'…민주 37% vs 국힘 36.3%
공수처장 "尹 체포영장 집행 무산, 국민들께 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