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 세계전파 첨병역 자신…민화 전문가 권정순 계명대 교수

입력 2011-01-29 08:20:00

민화를 사랑하고 널리 전파하고픈 권정순 교수가 대백프라자 10층 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10폭 병풍인
민화를 사랑하고 널리 전파하고픈 권정순 교수가 대백프라자 10층 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10폭 병풍인 '십장생도' 앞에서 민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화(民畵), 한번 빠져 보세요.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26일 대백프라자 10층 갤러리에서 민화에 홀딱 반해 이 밤을 잊은 그대가 된 계명대 권정순(62) 미술대학 특임교수를 만났다. 한국민화작가회 대구경북지부장을 맡고 있으며, 아무리 피곤해도 매일 2, 3시간 이상 밤에 민화를 그리고 있는 민화 사랑의 초절정 고수다. 앞으로의 꿈과 계획은 민화를 세계로 알리는 전도사이자 문화 첨병이 되는 것.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갤러리에는 '민화-시간을 넘어선 시대공감전'이 열리고 있었다. 다음달 6일까지 이곳에 가면 권 교수와 그의 제자들이 그린 아름다운 민화들을 감상할 수 있다. 갤러리에 들어서는 순간 8첩·10첩 병풍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자신의 해를 맞은 토끼들은 방아를 찧거나, 별주부전에 나오는 것처럼 거북이 등을 타고 용왕을 만나러 가고 있었다. 적게는 1주일, 많게는 4~5개월 동안 매일 서너 시간씩 온 정신을 쏟아부어야 탄생한다는 민화들은 권 교수의 혼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들이었다. 일단 민화 작품들을 봤으니, 그녀의 정신세계와 뒷얘기를 들어봤다.

◆민화에 눈뜨게 해 준 푸른 눈

"푸른 눈의 영국인들이 민화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줬습니다."

단순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던 한 소녀가 민화의 대가가 된 스토리는 이랬다. 권 교수가 한국외국어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영국대사관에서 일한 것이 민화에 눈을 뜨게 한 계기가 된 것. 가끔 점심식사 후 서울 인사동을 방문했는데 영국대사관 직원들이 우리 민화나 농, 자개 등에 관심을 갖고 하나씩 사서 집안에 전시해 놓는 것을 보고 우리 것에 대한 매력에 눈을 뜨게 돼 오늘에 이르렀다.

역설적이지만 직장 동료이기도 한 이 외국인들이 권 교수가 잊고 있던 한국 민화의 아름다움에 빠져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셈이다. '인생이란 그런 것인가?' 제자에게 배우고, 수입한 사람이 수출한 사람보다 더 좋은 물건을 만들 듯이.

이렇게 권 교수는 민화에 빠져들었고, 그의 인생에는 축복이 연이어 찾아왔다. 민화의 아름다움에 젖어 산 것이 삶의 풍요로움으로 이어진 것일까? 3자녀 모두 출가를 해서 벌써 손자·손녀만도 7명이나 된다. 남편의 사업도 잘 풀려서, 경북 구미 선산에 옛 한옥 고택을 짓고, 그 속에 영남유교문화진흥원도 열 정도가 됐다. 남편은 고문서·고서를, 부인은 민화 전문가로 벌써 많은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미술협회 이사이기도 한 그녀는 3년 전 경북미술대전에 민화 부문을 포함시켰으며, 지난해에는 대한민국 미술대전에도 민화 부문을 집어넣었다. 또한 제자들을 양성하고, 민화를 좋아하는 인구가 늘어나게 하는 데도 크게 일조하고 있다.

현재 계명대 특임교수이자 계명대 부속 한국전통민화연구소장, 그리고 (사)한국민화작가회 대구경북지사장 자리까지 맡고 있는 권 교수는 "푸른 눈이 눈뜨게 해 준 민화를 이제는 시대에 맞게끔 더 계승 발전시켜 세계에 더 알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모두 잠든 후에, 붓을 들다

권 교수의 남편은 아내의 민화 그리기에 안방을 내줬다. 부부의 침대가 있어야 하는 33㎡(10평) 남짓한 큰 방이 민화 작업실로 변신했다. 권 교수는 매일 새벽 1, 2시까지는 민화를 그리는 데 온 힘을 쏟아붓는다. 집중이 잘 되고, 체력이 허락할 때는 새벽 3, 4시를 훌쩍 넘길 때도 있다. 그만큼 민화가 좋은 것이다.

"인터넷 고스톱이 좋아서 매일 밤 하루 몇 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고스톱을 치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전 민화가 좋아서 집에 오면 민화를 하나하나 완성시키는 재미에 푹 빠져있는 것이지요."

고스톱에 비유한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권 교수가 민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역력하게 읽을 수 있었다. 항상 민화를 그리고 작품들을 만들다 보니 이젠 손자·손녀들도 붓을 들고 미술적인 재능을 뽐낼 정도라고 한다. 그는 "만약 손자·손녀 중에 누가 미술을 하겠다고 하면 적극 밀어주겠다"고 했다.

이런 열정은 그를 대한민국 최고의 민화 전문가로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되고 있다. 권 교수는 7년 전 명지대 대학원 공예화과에 입학해 민화를 다시 한번 공부했으며, 이곳에서 민화의 최고 권위자인 송규태 화백에게 가르침(개인 레슨)을 받는 기회도 얻었다.

대구에서 유명한 사업가이기도 한 남편(노진환 영남유교문화진흥원장 겸 북부정류장 회장)은 밤마다 붓을 들고 민화를 그리러 가는 아내를 절대 탓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든든한 후원자다. 구미호(?)도 아닌데 밤이 되면 침실에서 사라져 새벽 2, 3시가 되어서 돌아오는 아내를 방해할 생각은 추호도 없기 때문이다.

◆축복받은 멀티 플레이어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은 꿈을 갖고 있는 권 교수는 사실 만능 스포츠맨이자 취미생활도 다양한 멀티 플레이어였다. 당시 한국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면 상당한 재원인데 운동까지 잘하는 활동파 여성이었던 것. 요가, 스키(고급자), 골프(싱글 수준), 테니스 등 한번 즐기기 시작하면 상당한 수준에까지 오르는 재능을 보여줬다.

이런 권 교수에게 기자가 이런 말을 하니 좋아했다. "언뜻 보니 1959년생 같습니다."

실제 권 교수는 1949년생이다. 하지만 권 교수는 아직은 이팔청춘이며, 민화를 세계로 전파하는 첨병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자신이 있다. 권 교수의 94세 어머니도 노안 수술 덕분에 양쪽 시력이 1.2로 회복될 정도로 건강하다.

권 교수는 "자신의 능력을 일깨우다 보면 인생은 아름답고 풍요로워진다"며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일과 취미에 빠져들면 더 젊게 살고 또 다른 일도 잘 풀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다재다능하다 보니 민화에서도 누구에게도 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 가정을 꾸리고, 아내 역할에 충실하다 보니 다소 늦게 본격적이 작품활동을 시작했지만 그 수준은 대한민국에서 세컨 투 넌(Second-to-none·둘째 가라면 서럽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매년 두 차례씩 작품전시회를 하는 권 교수는 오는 5월에는 대구학생문화예술회관에서 1개월 동안 초대전을 열 예정이며, 오는 9월에는 일본 동경 민예관 50주년 행사로 일본에서 열리는 한국민화전시회에도 30여 점의 작품을 갖고 참가할 계획이다. 권 교수의 축복받은 재능과 뜨거운 열정이 민화를 통해 세계로 뻗어가길 기대해본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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