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옛 도심, 이야기로 살아난다] ⑤대구의 대표 요정 춘앵각(하)

입력 2011-01-29 08:20:00

외로운 밤에도 '마음 속 달'이 비치니 고독에도 격조가…

춘앵각은 지금은 한식집이지만 오랜 세월 대구의 대표 요정으로 이름을 떨쳤고, 이곳 출신의 아가씨들이 요릿집이나 요정을 차려 독립하면서
춘앵각은 지금은 한식집이지만 오랜 세월 대구의 대표 요정으로 이름을 떨쳤고, 이곳 출신의 아가씨들이 요릿집이나 요정을 차려 독립하면서 '기생사관학교'라고 불리기도 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 왜 대구 도심 옛 이야기인가

2011 매일신문 신년기획 '대구 옛도심 이야기로 살아난다' 시리즈는 근대기 대구의 역사·문화·예술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대구 옛도심(중구 향촌동, 포정동, 성내동, KT&G 부지, 북성로 일대, 계산동)을 생생한 이야기로 되살리자는 프로젝트다.

대구 옛 도심은 문화창조발전소(KT&G 부지)와 북성로를 중심으로 봉산문화거리~동성로~오페라하우스로 이어지는 문화 남북벨트와 달성공원~문화창조발전소~시민회관으로 이어지는 동서벨트를 축으로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피란기, 산업화기 등 한국 근대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번 호로 5호를 맞이한 이 시리즈는 팩션(Faction)으로 역사적 사실에 개연성 있는 상상력을 보태 흥미롭고 가치있는 이야기 발굴을 목표로 한다. 이는 지금까지 매일신문이 진행해온 도심재생 시리즈를 확대, 생산한 결과물로 지금까지 발굴한 팩트를 기초로 세세한 이야기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디자인을 입혀 나가는 작업이다. 따라서 '대구 옛 도심, 이야기로 살아난다' 시리즈는 단순한 자료 정리나 정보 전달이 아니라,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만듦으로써, 그 자체로 영화, 드라마, 오페라, 뮤지컬 등 다양한 2차 장르로 발전할 수 있는 소스 제공을 목표로 한다. 이 같은 이야기 생산 작업을 통해 침체 상태에 있는 대구 옛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고 생활과 문화 예술이 상생하는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편집자 주-

◆춘앵각/하

향진은 가슴에 차오르는 연정을 가눌 수가 없었다. 기생의 몸을 가지고 태어나, 완전히 세속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아니면 이토록 천상을 꿈꿀 거였다면 고뇌없이 세속을 등질 수 있는 몸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향진은 몸은 가장 세속에 있으나 정신은 가장 천상을 좇았다. 그 아비가 그랬듯, 향진은 지상이 아닌 것을 연모하였다. 그 어미가 그랬듯, 천상을 꿈꾸는 이를 연모하였다. 하지만 제 아무리 천상을 바란다 해도 천상의 것을 세속의 욕망으로밖에 적실 수 없는 것은 기생된 몸을 타고난 자신의 업이고 운명이었다.

향진이 불공을 드리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고, 경내의 불두화를 꺾어 춘앵각 마당에 심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꽃은, 향기를 뿜지 않고도 스스로 고고할 수 있는 정암이었고, 꽃을 피워도 수분할 수 없는 향진 그 자신이었다.

"물에 비친 달의 실체를 찾기 위해 지상에 내려온 보살이 현실로는 만족할 수 없는 체념 속에서 기이한 환상을 만들어 냅니다. 그 환상을 실제로 만들려 애쓰다가 그 생각이 실제인양 착각하게 됩니다. 허나 허상일지언정 외로운 밤에도 마음 안에 그 달이 비추니 이 고독에도 격조가 있습니다."

향진이 보낸 편지에 정암은 답하지 않았다.

"둥근 달에 아무리 광몀의 물을 퍼부어도 차오르기가 무섭게 암흑의 마귀들이 빨아들입니다. 채워도 자꾸만 비워지는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한 애를 써도, 울타리 없는 곳에 마귀의 침입을 막기가 힘이 듭니다. 달이 기울어 강산이 캄캄합니다."

정암은 답하지 않았다.

"새는 깊은 숲에 머무르지만 나뭇가지 하나에 지나지 않고, 쥐는 강물을 마시지만 배부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낱 천한 몸으로 스님을 연모하는 일이 이리 허기지듯, 스님께서 부처를 사모하는 일 또한 무어 다를 게 있겠습니까. 죽어 썩어지는 몸, 그 몸이 어찌 숲에 든다고 숲이 될 것이며 그 뱃속이 강물을 들이마신다고 어찌 강물로 차오르겠습니까?"

향진의 원망된 편지에 정암은 답하지 않았다. 불두화가 네 번의 헛꽃을 피우는 동안 스물 두 번의 눈이 내렸고, 마흔 다섯 번의 달이 찼다가 기울었다. 정암은 한 번도 향진을 찾지 않았다.

가을 서리가 내린 어느 새벽, 춘앵각을 떠나는 향진을 주인은 잡지 않았다. 가슴 속에 쏘아댈 수 없는 동경의 화살을 품은 댓가로 향진의 마음이 겨울 국화처럼 시들고 있음을 주인은 알고 있었다.

향진이 춘앵각을 떠난지 두 해째, 가을장마가 끝을 향하는 시월 초입의 늦은 밤이었다. 정암은 잠결에 들리는 어렴풋한 소리에 잠을 깼다. 토굴로 들이치는 비바람에 섞여 여인의 가파른 목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깊은 산중에 여인의 목소리라니, 괴이히 여긴 정암이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비에 흠뻑 젖은 비구니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향진이었다. 어떤 간절함이 이 빗속을 헤매어 걸어오게 한 것인지, 한줌이나 될까한 향진의 마르고 가선진 얼굴이 죽은 자의 얼굴처럼 하얘, 순간 정암은 가슴이 내려앉는 먹먹함을 느꼈다.

"스님, 나무라지 마십시오. 내치지 마십시오. 저는 그저 알고 싶을 뿐입니다. 제 삶에 스님이 오신 목적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절에 머무는 이년 동안에도 스님을 향한 이 마음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옷깃으로만 스쳐갈 인연이라면 무엇이 저를 출가의 길로 들어서게 하였고, 그럼에도 저를 또 이곳까지 오도록 이끌었겠습니까? 스님입니다. 스님이 제 삶에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저의 내부에서는 그게 무엇인지 알고자 원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천 배를 올리고 만 배를 올리는 동안에도 그 소리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스님, 이 방황이 오래전에도 있었던 방황이었음을 저는 압니다. 이런 몸뚱이, 이런 운명을 이번 생에서 그만 끝내고자 했던 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 운명을 벗고 새로운 삶으로 서는 일에 결국 실패하였음도 압니다.

스님, 몸이 아닙니다. 마음도 아닙니다. 스님이 계신 곳 저 아래 소리없이 머물며 살겠습니다. 그저 스님 계신 곳 위로 해가 뜨고 날이 저무는 모습만 바라보며 있겠습니다. 스님이 드나드는 길로는 발길도 하지 않겠습니다. 하루에 한번, 보이지 않게 밥만 지어 올리겠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일 년에 한번이라도 좋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기 위해서 이 삶에 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스님 곁에서 그것이 무엇인지, 제가 어디로 이르러야 하는지를 찾고 싶습니다. 간절한 원이옵니다. 부디 저를 내치지 마십시오."

정암은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내가 너를 찾지 않았어야 했구나. 하지만 들려오는 너의 소식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네가 나를 알아보리라 생각했었다. 나를 통해 너를 기억해 내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찌 너는 나를 알아만 보고 그때의 다짐은 기억하지 못하였느냐. 이것이 이번 한 번뿐인 줄 알았더냐. 수 십번, 수 백번 되풀이 되었던 인연이고 방황이었음을 알지 못하였더냐. 너의 세상에 대한 타는 갈망이 애처롭고 안타까웠다. 내 너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쳐 그걸 두고 보지를 못하였다. 너의 곁에서 그 갈망을 채울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내 길이 아니었다. 서로의 채워지지 않은 잔을 서로가 채워줄 수 있기를 바랐지만 너와 나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섞일 수 없는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생을 함께 하였더냐. 그 생애 동안 얼마나 서로의 길을 가로막았더냐. 그 마지막들은 또 얼마나 후회되고 고통스러웠더냐.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더냐. 그런데도 아직도 이 마주침이 네게 주는 의미를 모르겠느냐. 그 기억을 모두 잊고 다시 예까지 찾아와 그 고단한 생을 반복하려 하느냐. 어리석은 자에게는 윤회가 긴 법이라 했거늘, 너와 내 어리석음으로 인해 다시 그 시간들을 마주하게 되었으니 또 한번 나의 잘못이다. 너를 찾아간 나의 잘못이다."

정암의 마르고 고요한 음성 위로, 향진의 꼭 감은 두 눈 위로, 지나온 길고 긴 시간들이 급류처럼 밀려들었다. 세상에 대한 갈망으로 눈이 빛나던 자와 천상에 대한 갈망으로 눈이 빛나던 자, 거기에서 향진은 언제나 떠나려는 자였고, 미친듯이 세상을 알고 싶어 하는 자였고, 그 허기를 끝내 메울 수 없던 자였다. 그 심장은 평온하지 못했고, 그럴 때마다 매달린 줄의 끝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평화로운 심장으로 머물던 자, 사랑하는 이의 갈망에 결국 따라나선 자, 그래서 후회하는 자, 괴로워하는 자, 바로 자신 앞에 앉아 있는 정암이었다. 향진은 터져 나오는 눈물에 얼굴을 감싸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저앉은 몸과 마음위로 후회와 고통이 세찬 빗줄기처럼 흘러 내렸다.

"너를 속되다 비난치 마라. 그것이 없었다면 너는 오늘 여기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의 목적이 내가 되어서는 안된다. 너에게는 분명 오로지 너만을 위한 목적이 있다. 너는 나를 통해 네가 이 생에 온 목적을 기억해내야 하고, 너와 내가 다시 만난 이유는 그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임을 알아야 한다. 너와 나 사이의 할 일은 그것이 다다. 그 억겹의 시간 속에 우리의 혼돈된 인연은 오늘로써 마쳐야 한다. 내가 이것을 깨닫게 되기까지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의 몸은 이제 곧 나를 떠난다. 너도 네 몸이 너를 떠나기 전, 이 생에 다시 오기로 선택한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네 깊은 갈망의 뿌리가 어디서 시작되었으며 또 어디서 맺어져야 하는지 너는 이미 앎을 가지고 세상에 왔다, 네가 해야 할 것은 그 앎을 기억해 내는 것 뿐이다. 그 앎을 깨닫고 다 마친 후에, 그때는 너와 내가 더 큰 길이 되어 다음 생을 함께 걸을 수 있을 것이다. "

장맛비처럼 길고 긴 향진의 눈물 뒤로, 밤새 계곡을 넘치던 물소리가 아득히 잠기어 가고 있었다.

그날 밤, 향진은 비구니 절로 돌아가지 않았다. 향진은 그 길로 마을로 내려가 탁발을 하며 세상을 떠돌아 다녔다. 그리고 다시 정암을 찾지 않았다. 향진이 진주 어디서 객사하기 두 해전 춘앵각을 찾은 적이 있다고 했다.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얼굴로, 그 골상이 변하여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정암이 입적하던 날, 그의 서랍에는 염주 한 줄과 붉은 옷고름이 들어 있었다.

따뜻한 바람이 구름을 타고 넘실넘실 넘어오던 봄날, 천진하고 맑은 얼굴로 산길을 걷는 두 동자승이 있었다.

"형님, 형님은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은가요?"

"나? 나는 크면 세상을 보러 떠날 것이야. 나는 이 세상이 무엇인지 정말 너무 궁금하거든."

"형님, 그럼 언젠가 세상을 다 돌아보시면 제게 돌아와 세상이 어떤 곳인지 이야기 해 주셔야 해요."

"무슨 소리냐. 너도 함께 떠나야지. 이 큰 세상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우리가 함께 찾아보아야지."

"전 이곳이 좋은 걸요. 전 세상이 궁금하지 않은걸요."

"이 지루하고 답답한 곳이 도대체 너는 뭐가 그리 좋다는 게야."

"큰스님도 좋고, 아침마다 공양드리는 것도 좋고, 불경소리도 좋은 걸요. 이곳에 처음 왔을 때 큰스님의 독경소리가 저는 그냥 좋고 마음이 평온했던 걸요."

"네가 마을 주막에서 파는 굴비젓 맛을 몰라서 하는 말인 게야. 네가 오늘 그것을 맛보게 되면 아마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을 게다. 장터는 또 어떻고, 눈이 돌아갈 만큼 달고 맛있는 것들에 혼이 쏙 달아날 것이다. "

"형님, 그런 큰일 날 소리 마세요, 굴비젓만 맛 본 후에 바로 돌아올 거예요. 지난번처럼 큰스님께 또 들키기라도 하면 이번엔 아주 호된 벌을 내릴 거예요. 이번엔 꼭 함께 돌아오겠다고 약속하세요. 예? 형님, 꼭 약속하셔야 해요."

"원…녀석도. 그래, 알겠다 이 녀석아. 내가 너를 두고 어디를 간다는 말이냐. 어디를 가더라도 꼭 너를 데리고 갈 것이다. 언제나 너와 함께 할 것이란 말이다. 태어난 배는 달라도 우리는 아마도 하나의 심장이었던 게야.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이리 한시도 떨어질 수가 없다는 말이냐."

산길을 내려가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하늘처럼 투명했다. 키가 훌쩍 큰 아이의 눈동자는 세상에 대한 맑은 호기심으로 반짝반짝 빛났고, 그 곁을 따라 걷는 아이의 얼굴은 신심으로 맑고 충만했다. 둘은 언제나 세상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음을, 어려운 일과 기쁜 일을 언제나 함께 할 수 있음을 믿었다. 꽃이 피어남을 저절로 아는 것 처럼, 나비가 그 향기를 저절로 찾아가는 것 처럼, 둘은 서로에게 길이 되어줄 수 있음을 믿었다.

김계희(그림책 화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