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일본의 작가 시바 료타이로는 그의 기행 시리즈물 '길을 가다' 제2권에서 부산, 경주를 지나 부여로 가는 길에 왜관에 들러 느낀 '이 작은 마을 역사의 놀라움'을 다음과 같이 썼다. "역사의 놀라움이라는 것은 2개의 전쟁이다. 하나는 16세기 말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한 임진왜란. 왜관에는 일본 군인의 기지가 있었다. 또 하나는 1950년 6월에 일어난 조선전쟁(6'25전쟁). 한국군은 북한에 져 같은 해 8월 낙동강을 최후의 방어선으로 했고 왜관은 최전선이었다."
30년이 지난 2001년 12월. 일본 요미우리 신문사는 왜관을 방문, 시바의 길을 더듬어 취재, '한국 기행 무대, 한국 왜관'을 특집으로 보도했다. '조선반도의 비애 응축'이란 제목의 특집에는 왜관과 일본과의 사연이 소개됐다. "'왜관'(倭館)은 과거 무로마치(室町'1336~1573), 에도(江戶'1603~1867) 시대 무역 사절이 체류했던 건물이다. 왜관에는 지역 자료에 의하면 무로마치 시대 사절이 서울로 가던 도중 머물던 소왜관(小倭館)이 있었다. 그것이 지명이 되었다고 한다."
이 신문은 시바가 밝힌 '조선 민족이 외적의 침입을 받은 횟수는 유사 이래 5백수십 회였다'는 기록의 인용과 함께 중국의 침략, 임진왜란, 일본의 식민 지배, 1905년 부설된 경부선 왜관철교, 6'25전쟁을 언급하며 "낙동강이 한가로이 유유히 흐르는 것을 보면서 조선반도가 걸어온 고난의 역사를 생각했다"며 글을 마쳤다. 이 글이 나간 뒤 많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몰렸다고 한다.
옛날 낙동강은 문화의 전파로였지만 왜구(倭寇)의 침탈의 길이기도 했다. 그 길목에 왜관이 생겼다. "왜적이 우왕 9년(1383년) 대구, 선주(선산), 안동 등지를 침입했다"거나, "고려 말 선산부사 이득신이 왜구 침입을 막기 위해 낙동강에 울타리를 세웠다"는 기록, 조선조 학자 김종직의 "인동에는 보배를 받들고 통역을 거쳐 들어오는 일본, 류큐(琉球), 규슈(九州) 등 세 섬의 오랑캐들을 아침에 보내고 저녁에 맞는 일들이 사철 끊이지 않는다"는 글 등이 이를 방증하리라.
고대부터 있었다는 낙동강 왜관철교 부근 옛 왜관나루터는 이런 숱한 역사를 알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연을 간직한 옛 왜관나루터가 최근 발표된 정부(경북 4곳)는 물론 경북도(6개 시'군 9곳)의 나루터 복원 사업에서도 제외됐다. 스토리 넘치는 왜관이 빠진 것은 아쉽기만 하다.
정인열 중부지역본부장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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