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로 짬뽕 전쟁'…대구는 원래 매운걸 좋아해

입력 2011-01-28 09:49:11

소자본 창업+적은 위험부담…자고나면 새 전문점 보글보글

대구 동성로 일대에만 30개 짬뽕 전문점이 성업중이다. 27일 찾은 한 짬뽕집에서도 손님들이 일렬로 식사중이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대구 동성로 일대에만 30개 짬뽕 전문점이 성업중이다. 27일 찾은 한 짬뽕집에서도 손님들이 일렬로 식사중이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27일 낮 동성로 마차이 짬뽕집. 언 손을 녹이며 출입문을 넘는 손님들이 하나둘씩 늘더니 다닥다닥 붙은 12개의 탁자는 금세 가득찼다. 여기저기서 '00짬뽕'을 외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여 종업원 두 명은 거의 뛰는 수준. 33㎡ 남짓한 홀을 바쁘게 오갔다. 카운터 앞에는 주린 배를 움켜진 손님들로 콩나물 시루를 이뤘다. 문 앞에는 손님들이 늘어섰고 줄은 점점 길어졌다.

대구 짬뽕집들이 밀려드는 손님들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맵고 짠 음식을 좋아하는 대구 시민들의 짬뽕 사랑이 각별한 데다 연일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면서 얼큰한 짬뽕 국물의 인기가 치솟고 있는 것. 짬뽕 특수를 노린 프랜차이즈점들이 대구 시내 곳곳에 속속 들어서면서 손님 유치 경쟁도 치열하다.

27일 찾은 동성로 주변은 이미 짬뽕집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했다. 2008년부터 개업하기 시작한 짬뽕전문점은 1월 현재 신신반점, 진흥반점, 마차이 등 동성로 주변에만 약 30개 업소가 성업 중이다. 이는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대구에서만 나타나는 특별한 현상. 대구 시민들이 유독 짬뽕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얼큰하고 개운한 맛을 선호하는 지역민들의 입맛이 짬뽕점의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갈비찜 등 지역민들이 즐기는 먹을거리들은 다소 자극적인 음식들이 많은 것과 일맥상통. 지난해 9월부터 동성로에서 짬뽕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권혁진(39) 씨는 "손님들 대부분이 뜨끈한 국물의 '시원한' 맛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며 "약간 매운 짬뽕국물 맛 역시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두 번째 이유는 보다 품격 있는 중화요리를 맛보고 싶은 지역민들의 요구다. 그동안 짬뽕은 중화요리집에서 판매되는 여러 메뉴 중 하나였다. 자장면과 양대산맥을 이루긴 했지만 여전히 중화요리의 꽃은 자장면이 차지해 왔다. 더욱이 최근 중화요리집들이 배달서비스를 보편화하면서 중국요리의 진미가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에 짬뽕 고유의 맛을 찾는 손님들이 많아졌다는 것. 이와 함께 좀 더 깔끔하고 고급스런 분위기에서 짬뽕을 즐기려는 욕구도 짬뽕집 개업을 부추겼다.

이영희(48) 씨는 "바쁜 업무 때문에 점심식사를 놓쳤을 때 짬뽕집을 찾는다"며 "칼칼하고 시원한 맛도 일품이지만 가게의 깔끔한 내부장식에 끌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짬뽕집이 여느 사업보다 위험부담이 적은 창업아이템인 점도 매력으로 작용한다. 적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으며 배달인력을 보유하지 않아 고정경비가 적게 드는 이점이 있다. 게다가 짬뽕요리는 아이디어만 풍부하면 다양한 메뉴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서구에서 짬뽕전문점 프랜차이즈사업을 하고 있는 권모(41) 씨는 "중화요리가 한국에서 100년 넘게 건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좀처럼 망하지 않는 자영업이었기 때문"이라며 "짬뽕전문점은 중화요리집의 오랜 숙제였던 배달인력문제를 해결한 사업아이템이어서 창업준비생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몇 년간 도심을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짬뽕집 시장은 이제 거의 포화상태라는 게 업계의 분석. 경쟁력이 떨어지는 업체를 중심으로 구조조정까지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 짬뽕집 업주는 "최근 동성로 인근의 짬뽕전문점 사이에서는 출혈경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손님들에게 아낌 없이 고급식재료를 얹어 주는 '반가운' 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

대구 짬뽕전문점업계는 현재도 블루오션을 찾아 나서고 있다. 송이, 해물, 버섯 짬뽕 등 비법이 녹아 든 수백 가지의 짬뽕을 선보이는 등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짬뽕은 이미 전문 요리의 경지까지 올랐다. 특히 업계에선 대구 주변 중소도시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시장으로 개척하겠다는 포부로 무장하고 있다. 찜갈비와 막창에 이어 또 다시 대구발 히트상품을 만들어내겠다는 각오다. 지금도 매서운 한파 속에 여러 가지 이유로 뒤틀린 속을 풀어보려는 이들이 짬뽕전문점을 찾고 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유광준기자 jun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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