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진탕 40대 딸 거동 불편…70대 아버지 딸 부축 5년째 산책 도와
"아무리 추워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오전 9시가 넘으면 어김없이 나타나요. 걸음이 부자연스러운 젊은 여성을 머리가 거의 다 빠진 노신사가 부축해서 걷더군요. 몇 년째 계속되고 있는데 도대체 어떤 사연인지 모르겠어요."
대구 중구 대봉동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한 업주는 두 사람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25일 오전 9시 20분쯤 대구 중구 대봉1동 주민센터 앞. 두 사람이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젊은 여성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자 노인이 한쪽 팔을 잡고 부축하며 걸었다. 열 발자국도 되지 않는 거리를 걷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노인은 묵묵히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계단을 만나자 노인은 여성이 넘어질까 깡마른 두 손으로 뒤에서 부축했다.
노인(70)과 여성(40)은 부녀 사이다. 5년째 매일 산책을 하고 있다. 부녀가 도심 산책에 나선 이유는 10여 년 전으로 올라간다. 아기에게 젖을 먹이던 딸이 머리를 다치면서 거동이 점점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가벼운 뇌진탕으로 여겼던 것이 간질환으로까지 이어지면서 딸은 자리에 눕고 말았다.
이후 아버지는 딸의 쾌유를 위해 남은 인생을 보내기로 작정했다. 5년 전 딸의 건강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걷는 것이 좋다는 얘기를 듣고 집 인근을 함께 걷기 시작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안 빠지고 딸을 데리고 나가서 산책을 시켜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애지중지 키운 딸이 불의의 사고로 누웠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어야지요."
하지만 아버지는 딸이 언젠가는 예전처럼 똑바로 걸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딸아이가 완쾌되는 모습을 봐야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딸의 어머니도 일흔을 넘긴 나이에 기력도 쇠한 남편이 딸을 부축하는 뒷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무너진다. 그는 "남편이 노안이 심해져서 이젠 앞도 잘 안 보이는데 행여 교통사고가 날까봐 항상 걱정"이라고 한숨지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안 해본 치료가 없지만 부모는 큰 병원에 데려가지 못한 것이 항상 안타깝다.
"서울에서 큰 수술이라도 한번 받으면 괜찮아질 것 같은데 마음처럼 쉽지가 않네요. 하지만 딸은 반드시 우뚝 일어설 겁니다." 딸을 부축해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아버지의 반짝이는 눈에 희망이 송글송글 맺혔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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