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대한민국 깡통 경제학 / 이경식 지음/ 휴먼앤 북스 펴냄

입력 2011-01-27 07:59:32

22개 키워드로 들추어 본 한국경제의 그늘

'사자가 초원에서 풀을 뜯는 소떼를 바라본다. 사자가 노리는 소는 건강하고 살찐 소가 아니라 어리거나 허약한 소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소매치기가 노리는 먹잇감 역시 돈이 무척 많아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허술해 보이는 사람이다.'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해야 한다. 강하지 않다면 강해보이기라도 해야 한다. 제대로 무장할 수 없다면 허세라도 부려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은 '모르면서 아는 척 하자'는 책이 아니라 '스스로 단련해서 강하고 아는 사람이 되자'는 책이다. 그러나 뼛속 깊이 체득할 수 없다면 돌아가는 꼴을 '이론'적으로 아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세세한 경제현상들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작은 이야기와 큰 그림을 통해 한눈에 보여준다.

하루 세끼 밥 먹기도 힘들다는데 명품시장은 어째서 날마다 번창하는 것일까. 아무리 갚아도 대출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까닭은 또 무엇인가. 국가경제(기업경제)는 살아나는데 가계(개인)의 민생경제는 어째서 파탄 나는 것일까.

김대중 정부는 이른바 IMF체제로 시작했다. 거덜난 경제를 살리려면 유효수효를 창출해야 했다. 그러려면 가처분소득이 넉넉해야 한다. 그러나 해고와 임금동결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국민소득이 넉넉할 리 없다. 그때 정부의 해결책이 미래 소득을 미리 끌어 쓰는 것, 즉 빚은 내는 것이었다. 전 국민적으로 빚을 내는 데 가장 유용한 수단은 신용카드였다. 정부는 신용카드 정책을 경기부양에 동원했다. 각종 카드 활성화 정책이 나왔고, 2001년 4월 드디어 '길거리 카드영업의 자유'가 보장됐다.

네모난 플라스틱 카드를 든 사람들의 주머니는 한 달치 혹은 석 달치 소득으로 두둑해졌다. 주머니가 찬 그들은 마구 썼다. 덕분에 한국은 2001년 8월 IMF체제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1997년 말 20조원이던 가계부채는 2002년 말 535조원으로 늘어났고, 신용불량자는 2003년 말 372만 명을, 2004년에는 400만 명을 훌쩍 넘었다. 카드로 빚을 당겨 쓴 덕분에 기업경제는 살아났지만 민생경제는 파탄 나버린 것이다.'

요즘은 아파트 가격이 바닥을 헤매는 형국이지만, 아파트 값이 계속 오르면 누가 이익을 얻을까? 아파트 실소유자는 이익을 얻지 못한다. 자신이 소유한 1억원짜리 아파트가 4억원이 됐다고 하더라도, 그가 이 아파트를 팔아 다른 아파트를 구입하자면 역시 비슷한 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장한 자식 역시 비싼 아파트를 마련해야 하니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다. 돈을 버는 사람은 투기꾼, 건설업자, 은행, 자본가들이다.

아파트는 자체가 생산도구가 아니다.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아파트 값 상승으로 손해를 보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바로 한계시점에서 아파트를 산 사람들이다. 그들은 '폭탄 돌리기 게임'에서 맨 마지막에 걸린 사람들이다. 아파트 값이 오를 만큼 오르고 대출 이자비용이 아파트 가격 상승에 따른 수익을 웃돌 때, 더 이상 '폭탄'을 받아줄 사람이 없고, 어정쩡하게 들고 있던 사람의 손에서 '꽝'하고 터지는 것이다. 집을 갖고 있기는 한데, 이 집 때문에 대출업자를 먹여 살리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 된다. 이른바 '하우스 푸어'(집 가진 거지)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펼치는 경제활동을 의(衣) 식(食) 주(住) 활(活) 금(金) 통(通) 등 6개 범주로 나누고, 명품의 경제학, 아파트 공화국, 비정규직과 워킹푸어, 제로리스크의 파라다이스, 자유무역협정과 촛불, 귀농과 슬로시티, 경제성장의 추억과 관치의 부활, 피 묻은 다이아몬드와 차이나프라이스, 의료보험 민영화가 불러올 상황, 초고속 고령화 사회 진입과 부익부 빈익빈의 관계, 아파트 공화국의 미래, 이명박 정부의 환경운동과 신자유주의 정책에 숨겨진 진실 등 22개 키워드를 이야기 형식으로 쉽게 설명하고 있다. 400쪽, 1만4천5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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