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지금까지 가장 큰 곤욕을 치른 정책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과 세종시 문제를 꼽을 수 있다. 국민의 믿음을 얻지 못했고, 합의 정신과 법 정신을 제대로 존중하지 않아 비롯됐다. 정부의 독선적 정책 추진은 공정한 사회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았다. 정부의 독선을 제대로 견제하지 않고 오히려 편승한 일부 여당 인사들의 행태도 마찬가지였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부와 정치권이 또다시 '불공정한 정략'의 유혹에 빠져들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동남권신공항 건설과 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을 두고 하는 말이다.
동남권신공항은 대통령이 공약한 사안이다. 그런데도 '지역 간 대결'을 빌미로 신공항 무용론까지 정치권 일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제 와서 입지 선정이 아니라 신공항 건설의 필요성 여부를 운운한다면 세종시 못지않은 국민적 저항에 부닥칠 수 있다.
역시 대통령이 공약한 과학비즈니스벨트도 마찬가지다. 1년 전 국무총리실이 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지역으로 세종시를 지목했다는 점을 지금 다시 언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세종시에 중앙부처가 이전하지 않을 경우를 전제로 한 '공정하지도, 투명하지도 않은 거래'였기에 아무런 당위성을 가질 수 없다. 세종시가 원상 복구된 만큼 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선정도 공정하게 진행돼야 한다.
하지만 최근 정부와 정치권은 공정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신공항 입지 선정 발표를 세 차례나 미뤘다. 총선과 대선이 임박해질 때쯤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는지, 아니면 표 득실 계산 끝에 아예 차기 정권으로 넘기려는 의도인지 모를 일이다. 정부는 지금 정략적인 고민이 아니라 입지 선정과 함께 신공항 건설 이후 최대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운용 방안을 두고 고민해야 할 때이다.
정치권은 과학비즈니스벨트와 관련해서도 공정한 유치 경쟁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여당은 물론 야당 핵심 인사들까지 다른 지역 민심은 외면한 채 충청권 입지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마치 '국책 사업을 떠안겨 줄 테니 총선과 대선에서 우리에게 표를 달라'고 앞다퉈 구애하는 모양새다. 지역과 국가의 미래를 표를 담보로 바꿔치기하거나 밀거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구경북도 이 추한 밀거래 장단에 춤추는 방식으로 대응해서는 결코 바람직한 결과를 얻기 힘들다. '어떤 것을 양보할 테니 이것을 달라' '표를 더 몰아줄 테니 저것을 달라'는 식은 곤란하다. 두 국책 사업은 거래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라, 상호 작용을 통해 지역의 미래를 담보할 필수 사업이다.
대구경북의 미래는 낙동강과 동해안을 축으로 하는 성장 동력에 달렸다. 낙동강 축의 경우 낙동강사업 이후 강 연안을 관광'역사'문화 향유의 공간으로 꾸미는 '포스트 낙동강 사업'이 핵심 성장 동력 사업이다. 원자력과학산업벨트를 포괄하는 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사업은 동해안 축의 핵심이다. 또 이 두 축을 아우르는 인프라가 바로 동남권신공항인 것이다.
포스트 낙동강사업은 정치적 휘둘림 없이 진척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과학비즈니스벨트와 신공항 건설 사업은 비뚤어진 방향으로 흘러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대구경북이 힘을 모아 당당하고 합리적인 논리로 입지 당위성을 내세워야 하겠다.
신공항의 경우 안전성, 접근성, 환경성, 효율성, 비용 등 거의 모든 입지 조건에서 밀양이 부산 가덕도보다 앞서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심지어 부산에서 조사한 여론조사에서조차 경남, 울산 주민들까지 밀양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비즈니스벨트도 공정한 기준을 잣대로 할 때 대구경북과 울산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높다. 포항과 경주에서 각각 방사광가속기와 양성자가속기가 건설되고 있어 과학비즈니스벨트의 핵심 인프라인 중이온가속기 가동에 따른 부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아태이론물리센터와 막스플랑크연구소 등 기초과학 연구 거점이 형성되고 있고, 포스텍과 UN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등 과학기술 분야 인프라도 경쟁력이 높다는 것.
대구경북은 이 같은 합당한 논리를 내세우되 각오는 비장하게 미래 전략 산업 유치에 힘을 쏟아야 한다. 대신, 정부와 정치권은 눈앞의 유혹에 지역과 국가의 미래를 내던지지 않기를 바란다.
김병구(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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