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유치를 원하는 지역들끼리 감정적 대립이 나타나고, 중앙정치무대에서는 정치적 운명을 건 치열한 공방전이 가열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제2의 세종시 논란이 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의 예산규모는 3조5천억원으로, 경제파급 효과는 무려 360조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대규모 사업인데다가 이명박 정부의 3대 핵심공약이었기 때문에 욕심을 내는 것은 사뭇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 과학비즈니스벨트 논란을 지켜보면서 정부는 매우 중요한 가치를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절차적 정당성과 기회균등의 가치이다.
국가과학발전의 최적 입지라고 주장하는 자치단체들의 자발적인 유치 노력의 기회마저 빼앗는 것은 민주적 정당성의 요체인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현 정부가 주창하는 공정사회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식의 정책 결정에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에서는 충청권 표를 의식해 과학비즈니스벨트의 충청 유치를 주장하고 있으며, 충청지역에서는 대덕·오창·오송 등 인근 도시의 과학 인프라 구축 역량과 정부가 2010년 1월 세종시를 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로 지정했다는 근거를 들어 유치의 당위성을 적극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분명히해야 할 몇 가지 사실들이 있다.
충청권이 과학비즈니스벨트의 최적지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이 사업은 어느 한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자는 것이 아니라 허브가 된 중심도시가 주변의 여러 기능도시를 아우르는 광역모델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기술의 상업화가 용이한 대규모 산업단지가 위치한 대구·경북·구미·울산·포항 지역이 더욱 유리하다.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을 겨냥해 충청권 표를 의식해 특정지역에 이런 사업들이 유치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그동안 한나라당이 그토록 경계해온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표만 얻을 수 있다면 절차는 무시해도 좋다'는 식의 정치적 논리에 대해 필자는 확실히 반대한다.
아울러 2010년 1월 국무총리실에서 세종시를 과학비즈니스벨트의 유치지역으로 선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종시에 중앙부처가 이전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정부가 충청권에 빅딜식으로 제안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일각에서 세종시 논란과 과학비즈니스벨트 문제를 동일시하려고 하지만 이 두 문제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세종시는 관련 법령에 따라 부지선정위원회에 의해 중앙부처가 이전할 최적지로 선정되었고, 계획에 따라 추진되고 있던 사업을 백지화하려고 했던 것에 반해 과학비즈니스벨트는 입주지역 선정조차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이 두 사업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따라서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된 지금 과학비즈니스벨트 입주지역 선정은 당초 계획대로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공정하면서도 객관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야말로 원칙과 절차적 정당성에 부합하는 것이다.
TK지역 이외에도 광주·전남지역에서도 나름의 논리로 비교우위를 주장하고 있고, 또 과학은 국가미래전략의 핵심 분야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과학적인 정책결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김성조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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