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행복지수 높여주는 학생 진로찾기

입력 2011-01-25 07:34:12

며칠 전 한 TV프로그램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 덴마크를 소개했다.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93%가 그렇다고 응답했다고 하니 덴마크인들은 과연 행복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나 보다.

그들이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큰 이유는 학벌과 직업에 대한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소득의 절반 또는 그 이상을 세금으로 내는 대신 자녀 교육비와 노후 생활비를 국가가 모두 책임진다. 그 나라라고 수입이 좋은 직업과 덜 좋은 직업이 없겠는가. 하지만 '돈을 많이 버는 건 그 사람들의 일이지, 내가 아니지 않으냐. 부러워할 일이 아니다'는 한 벽돌공의 말처럼 남과 비교하는 자체가 그들에게는 낯선 일이다.

이런 문화는 그들의 교육 제도에서 비롯된다. 덴마크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먼저 배우는 것이 재미있게 놀기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놀이 친구다. 교사는 지식을 주입시키고 규율을 강조하는 대신 아이들을 지켜봐 주고 선택을 존중한다. 덴마크에는 공립학교를 졸업하거나 재학 중인 8~10학년 학생들이 1년 동안 공부하면서 인생을 설계하는 '애프터 스쿨'이 있다. 기숙형 학교인 이곳에서 학생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진로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보낸다. 공부에 흥미가 없으면 목공을 배워도 좋다. 직업에 따른 차별이 거의 없기 때문에 기술을 배우는 아이들의 표정에선 자신감이 넘친다.

이쯤에서 대한민국을 돌이켜본다. 솔직히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게 죄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학벌과 직업 차별 지수가 있다면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아닐까. 더 걱정스런 것은 이런 낭패감이 기성세대만의 몫은 아니라는 점이다.

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본다. 열에 여덟 아홉은 공무원, 의사, 교사다. 하지만 이건 직업이지 꿈이 아니다. 너의 꿈, 네가 좋아하는 일이 뭐냐고 재차 물어보면 아이들은 할 말을 찾지 못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점수에 맞춰 대학과 전공을 선택한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와서는 전공을 불문하고 공무원 시험에 매달린다.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갖지 못하면 대열에서 낙오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삶에서 행복을 느끼기란 어렵다.

반면 정말 부러운 아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이들에게 진로를 물으면 공통적으로 꿈을 얘기한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말한다. 그 꿈은 또한 구체적이다. 그냥 박사가 아니라 어떤 분야를 연구하는 박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식이다. 그런 꿈을 얘기할 때 아이들의 눈망울은 빛난다. 세상은 재미있는 놀이터다. 이런 아이들의 인성은 대체로 올바르다. 괜한 열등감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꿈은 남과의 비교가 아니라 자신과의 경쟁을 거쳐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의 아버지가 한 인터뷰 내용이다. 그는 아이에게 늘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그 일로 인해 네 인생이 풍요로워지고,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점수 높은 대학, 돈 잘 버는 직장만 가르쳐서는 자식의 삶이 행복해지기 어렵다. 편협해지기 십상이다.

올해부터 학교 현장에 새 포맷의 진로 교육이 실시된다. 2009 교육과정 개편에 따른 '창의적 체험활동'이 도입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동아리'봉사 활동을 통해 다양한 체험을 하고 이를 통해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설계해본다. 이 과정은 고스란히 생활기록부에 남게 되고 대학 입시에까지 활용되게 된다. 현 교육당국은 이 창의적 체험활동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교육 당국에 당부를 하나 하고 싶다. 우리의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교사나 학부모나 한결같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들을 한발 뒤에서 지켜봐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아이들 스스로 꿈을 찾고 설계하도록 여유를 둬야 한다. 그래야 10년 후에라도 대한민국 행복 지수가 조금은 올라갈 것이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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