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자금 입금 됐으니…" 신종 보이스피싱 '경고'

입력 2011-01-22 08:51:03

통장에 돈 넣고 "통장 잔약 모두 송금하세요"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가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최근 보이스피싱 사기단에 2천500여만원의 피해를 입은 박영두(가명·64·대구 동구 불로동) 씨는 "여러 명이 역할을 나눠 치밀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사기를 치기 때문에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려도 벗어날 수 없었다"고 했다.

박 씨가 남의 일로만 여겼던 보이스피싱의 피해자가 된 건 지난해 11월 28일 오후 농협 직원이라고 밝힌 한 여성의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농협 마이너스 통장 쓰고 계시죠. 어떤 사람이 선생님 돈을 인출하러 왔는데 의심스러워 돌려보냈습니다."

화들짝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그에게 10여분 후 또 다른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 너머의 남성은 서울의 모 경찰서 수사과장이라고 소개했다. "불법 자금이 당신 통장에 들어가 있습니다. 경찰서에 나와서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어리둥절한 차에 그의 휴대전화가 또 울렸다. 이번엔 서울 모 지검 검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불법자금이 당신 통장에 임금돼 조사를 해야해서 두 차례나 독촉장을 보냈는데 왜 가만히 있느냐?"라며 협박했다. 30여 분 새 세통의 전화를 받은 박 씨는 두려움에 떨었다고 했다.

"30분쯤 뒤 국가안전금융기관 소속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낯선 전화가 또 걸려왔어요. 계좌에 입금된 불법자금을 송금하지 않으면 모든 재산을 국가가 압수하겠다고 겁을 줬어요. 아무런 생각이 안 나더군요. 요구하는 대로 카드번호와 돈을 송금하는 방법밖에 없었어요."

박 씨는 자신의 계좌를 확인한 결과 출처가 불분명한 550만원이 입금돼 있어 완전히 믿게 됐다고 했다. "550만원은 물론 남은 잔액 980만원을 몽땅 송금했어요." 하지만 그들의 전화는 끝나지 않았다. 이어 또다시 전화가 와서 협박에 시달린 박 씨는 또다시 980만원의 현금을 보내주면서 악몽은 끝나게 됐다.

하지만 이상하다고 느낀 그가 경찰에 신고하고서야 자신이 보이스피싱에 속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너무 급박하게 진행해 그 순간에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어요. 너무 억울해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잘 지경입니다."

이 사건을 접수한 대구 동부경찰서 관계자는 "박 씨 사건처럼 돈을 통장에 넣어주며 피해자를 안심시킨 뒤 사기를 치는 사례는 처음이다. 보이스피싱이 점점 교묘하게 바뀌고 있다"며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검찰청 검사. 금융감독원 직원, 신용카드 번호, 택배 반송 등의 용어가 들어가면 100% 보이스피싱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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