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닝복? 댁들이 생각하는 그런 옷이 아니야"

입력 2011-01-22 07:03:11

트레이닝복의 진화

SBS드라마
SBS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이 입고 나와 새로운 패션 아이콘으로 떠오른 트레이닝복. 한 벌 가격이 120만~138만원으로 트레이닝복의 고급화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트레이닝복에 패션화 바람이 불면서 일상복과 트레이닝복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여성 트레이닝복 전문업체 우드리에서 판매하는 트레이닝복은 운동복보다는 외출복으로 더 어울릴 정도로 화려한 스타일을 자랑한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트레이닝복에 패션화 바람이 불면서 일상복과 트레이닝복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여성 트레이닝복 전문업체 우드리에서 판매하는 트레이닝복은 운동복보다는 외출복으로 더 어울릴 정도로 화려한 스타일을 자랑한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이 옷은 댁들이 생각하는 그런 옷이 아니야. 이태리에서 40년 동안 트레이닝복만 만든 장인이 한땀 한땀 수놓은 작품이야."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남자 주인공 김주원(현빈)이 여자 주인공 길라임(하지원)에게 재력을 과시하며 던진 대사다. '시크릿 가든'은 이달 16일 종영되었지만 후폭풍은 거세다.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자)인 현빈 패러디가 유행하고 있으며 그가 남긴 대사들은 어록이 되어 유행어로 떠돌고 있다. 특히 현빈이 입고 나온 트레이닝복은 새로운 패션 아이콘으로 떠오를 만큼 인기다. 드라마를 계기로 새삼 주목 받고 있는 트레이닝복의 패션화 바람을 취재했다.

◆고급화

트레이닝복 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는 백수다. 무릎 부위가 뚝 튀어 나올 만큼 낡고 헐렁한 '추리닝'은 백수 패션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최근 트레이닝복이 과시의 수단으로 바뀌고 있다. 고급화 바람이 불면서 고가의 트레이닝복이 속속 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출시된 대표적인 명품 트레이닝복은 현빈이 드라마에서 입고 나온 블루 스팽글(반짝이)·레오파드·블랙 플라워·골드 스터드(금장 트레이닝복) 등 네 종류다. 국내에서는 판매되지 않았으나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많이 찾으면서 한 업체가 수입계약을 맺고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가격은 블루 스팽글과 레오파드·블랙 플라워의 경우 한벌에 120만원, 골드 스터드는 138만원이다. 100% 울로 만든 이 트레이닝복들은 대량 생산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주문을 한 뒤에도 한참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상의에만 250개의 금 도금 스터드가 달린 금장 트레이닝복은 스터드 한 개 한 개를 손으로 직접 장식할 만큼 정성이 가득 담긴 제품이라는 것. 이 업체 관계자는 "앞으로 직영 오프라인 매장을 내고 4가지 제품뿐 아니라 다양한 럭셔리 트레이닝복도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가의 트레이닝복은 주변에서도 흔히 찾을 수 있다. 대백프라자 아디다스 퍼포먼스 매장에 걸린 한 트레이닝복의 경우 상의만 49만원이다. 유명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가 디자인한 스텔라 라인의 제품으로 '시크릿 가든'에서 하지원이 입고 나와 더욱 유명해졌다. 스키복 또는 겨울 점퍼로도 활용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스텔라 라인은 아디다스 내에서도 고가 제품에 속한다. 트레이닝복 한 벌을 사려면 최소 20만원 이상을 주어야 한다. 또 스포츠의류 전문 브랜드인 카파의 웜업 기능 트레이닝복 한 벌은 30만원 이상을 호가한다. 명품브랜드인 아이그너에서도 트레이닝복을 판매하고 있는데 한 벌 가격은 59만원으로 웬만한 정장 값을 능가한다.

◆더욱 세련되고 멋스럽게

스타일보다는 편안함 때문에 트레이닝복을 입는다는 생각도 점점 편견이 되고 있다. 엣지 있는 패션 아이템으로 손색이 없을 만큼 트레이닝복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소녀시대가 방송에 출연하면서 입고 나온 빈티지풍 트레이닝복은 스타일을 중요시하는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소녀시대는 아이보리 바탕색에 핑크색 줄무늬로 포인트를 줘 깔끔하면서도 화사한 느낌을 살린 상의에 카고 스타일의 네이비 팬츠를 매치해 날씬하고 하체가 길어 보이도록 연출했다. 여기에 핑크색의 다운재킷을 믹스 매치해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트레이닝 패션을 완성했다.

트레이닝복의 패션화는 주로 여성의류가 주도하고 있다. 아디다스 스텔라 라인의 트레이닝복을 보면 트레이닝복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힘든 제품들이 많다. 파티복을 연상시키는 와인색의 우아한 제품이 있는가 하면 양쪽 팔에 주름을 넣어 평상복으로 입기에도 손색이 없는 트레이닝복도 있다.

패션화가 진행되면서 트레이닝복의 색상도 화려해지고 있다. 프랑스 스포츠의류 전문업체인 르 꼬끄 스포르티브 매장을 방문하면 원색의 화사한 옷이 시선을 사로 잡는다. 무지개색을 모두 찾을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색상의 제품들이 출시돼 있다. 전체가 꽃무늬로 장식된 트레이닝복도 있으며 니트를 사용해 트레이닝복보다 평상복의 이미지를 강조한 제품도 있다.

아예 패션 트레이닝복을 선언한 브랜드도 있다. 슈퍼모델 이소라 씨가 운영하는 우드리는 외출복 겸용 여성 트레이닝복 전문 업체를 표방하며 슬림 라인을 강조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레이스가 달린 트레이닝복부터 호피무늬 또는 보석으로 장식된 트레이닝복까지 한결같이 디자인이 화려하다. '이 옷을 입고 어떻게 운동을 해?'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운동복보다는 외출복에 더 어울린다.

트레이닝복이 패션 트렌드를 선도하는 예도 비일비재하다. 트레이닝복이 일상복으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패션화되면서 이에 어울리는 낮고 가벼운 운동화인 스니커즈가 큰 인기를 끈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파카를 변형한 재킷이나 스포티한 스타일이 가미된 티셔츠 등도 편안하고 캐주얼한 느낌의 스포츠웨어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패션이다. 트레이닝복에서 스타일이 강조되다 보니 패션과 스포츠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대백프라자 아디다스 매장 관계자는 "일명 추리닝으로 대변되는 칙칙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트레이닝복의 패션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컬러와 디자인, 소재가 다양해지고 젊은층의 취향을 반영한 감각적인 스타일로 진화하고 있다. 생활 속에서 레저를 즐기려는 젊은층이 늘어나면서 패션 트레이닝복의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거리를 누비는 트레이닝복

최혜인(26·여) 씨는 트레이닝복 마니아다. 그녀가 사는 옷의 대부분이 트레이닝복일 만큼 트레이닝복을 좋아한다. 스타일이 괜찮은 트레이닝복을 보면 꼭 사야 직성이 풀릴 정도다. 당연히 외출할 때 가장 많이 입는 옷도 트레이닝복이다. 편하기도 하지만 예쁘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 씨는 "직장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옷 입는 것이 비교적 자유롭다. 여러 가지 옷을 입어 봤지만 트레이닝복 만큼 좋은 것이 없다. 결혼식 등 특별한 일이 없으면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간다. 요즘 나오는 트레이닝복은 평상복으로도 손색이 없다. 디자인이 화려해 트레이닝복이라고 밝히면 놀라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트레이닝복이 길거리 패션의 한 축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됐다. 바로 트레이닝복의 패션화가 가져온 새로운 풍속도다. 지난해 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스포티즘(평상복으로 스포츠 룩을 입는 패션 경향)은 이러한 경향을 잘 반영하고 있다.

대백프라자 카파 매장 관계자는 "과거에는 기능성이 트레이닝복을 고르는 중요한 기준이었지만 요즘은 기능뿐 아니라 스타일까지 많이 고려한다. 트레이닝복이 일상복이 되면서 두루 활용할 수 있는 트레이닝복을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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