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경지 논' '軍초소 길'…"버려질 뻔한 공간이 관광명소 부활"

입력 2011-01-22 07:53:45

톡톡 튀는 아이디어 지역 이색 놀이공간

휴경지 논이 썰매장으로 변모해 동심을 자극하고 있다.
휴경지 논이 썰매장으로 변모해 동심을 자극하고 있다.
군 초소 길목의 을씨년스런 오솔길이 연인과 가족들이 찾는 관광명소로 바뀌었다.
군 초소 길목의 을씨년스런 오솔길이 연인과 가족들이 찾는 관광명소로 바뀌었다.

삭막한 휴경지 논의 겨울풍경, 군인들이 초소를 지키기 위해 지나던 길, 생각만 해도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느낌이다. 우리 주변에는 흔히 있되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공간이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만나 '신개념' 놀이공간으로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 휴경지 논은 아이들의 멋진 썰매장으로, 초소로 향하던 길은 연인과 가족들의 멋진 나들이 코스로 변신했다. 체험하고 산책하고, 조금만 발품 팔면 하루가 즐거운 우리 지역 이색공간을 찾아간다.

◆겨울아 비켜라, 신나는 썰매놀이

칼바람이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강추위를 비웃기라도 하듯 아이들은 썰매 삼매경에 빠졌다. 어른들도 체면을 벗어던지고 술래잡기와 팽이치기를 하며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소싯적 실력이 나오지 않는다며 투덜대는 아버지의 모습을 아이들은 재미있게 쳐다본다.

성주군 선남면 장학리(은점)의 간이썰매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휴경지 논이었지만 한 주민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접목되면서 이곳 5천여㎡의 공간은 물이 채워지고, 하루 평균 적게는 200명에서 많게는 500여 명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

성주군은 주민이 잘 조성한 썰매장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다른 관광요소를 연계한 즐길거리도 준비했다. 바로 주변 산에 산악자전거 코스와 등산로를 마련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곳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이디어. 겉모양새만 보자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썰매장이지만 내용면에서 살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만큼 아이디어가 대단하다는 얘기다. 허기가 질 때면 군고구마를 구워먹을 수 있는 공간을 찾으면 되고, 이색적인 겨울풍경을 사진에 담고 싶으면 얼음조각으로 만든 이글루(얼음 집), 게르(몽골 전통 집), 인공 얼음동산 등을 방문하면 된다. 또 아이들과 함께 연날리기, 제기차기, 빙상축구, 썰매경주 등의 체험도 할 수 있다. 주민이 지은 썰매장이라는 '밥'과, 군이 내놓은 다양한 프로그램이라는 '반찬'이 관광객들에게는 더없이 맛있는 밥상이 되고 있는 것.

박상희(37·대구시 본리동) 씨는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았는데 아이들과 같이 신나게 놀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면서 "아이들이 매일 이 곳에서 놀자고 할까봐 걱정이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썰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두석(48) 씨는 "아이들에게 겨울철에도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해 무료 개방했는데 호응이 너무 좋아 기쁘다"며 "이곳은 봄이 되면 친환경 농사를 지어야 하기 때문에 방문객들이 쓰레기나 오물투기를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부탁했다.

◆대나무 향기에 취해볼까

홀로 걸어도 좋은 길이 있다. 하얀 눈발이 날리면 더 분위기 있을 것 같다. 차가운 날, 혼자 둘러보아도 좋은 곳이 바로 울진군 죽변면 '폭풍에 언덕' 촬영지 부근에 있는 대나무 숲 오솔길(일명 용의 꿈길)이다. 겨울에는 호젓하기 그지없고 눈이 오면 금상첨화다.

오솔길을 찾아가는 길도 정겹다. 대게잡이 어선들이 항을 바쁘게 드나들고, 식당마다 대게를 찐다고 뿌옇게 증기를 쏟아내며 여행자를 푸근하게 맞아준다. 하늘로 솟는 용을 닮은 500m의 굽이치는 오솔길에 일단 들어서면 빽빽한 대나무와 병풍처럼 둘러쳐진 바다풍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길은 좁지만 평탄해 쉬엄쉬엄 걸어도 왕복 20분이면 충분하다.

대숲에 들어서면 한낮이라도 조금 어둡다. 하지만 어둠 따위는 문제되지 않는다. 우선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눈을 감아보자. 오케스트라의 향연처럼 웅장하고 깊게 퍼지는 파도소리 사이를 바람이 비집고 들면 작은 댓잎들은 서로의 몸을 부대끼며 서걱거린다. 조용한 오솔길에는 바람의 세기에 따라 대나무의 합창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한다. 지휘자인 바람이 도심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훌륭한 소리를 선사한다. 눈이 내리면 또 어떠한가. 눈가루가 지휘자를 따라 춤을 춘다. 이 섬세한 풍경을 느낄 수 있어야 오솔길의 맛을 제대로 보고 갈 수 있다. 대숲 아래로 내려가면 항아리처럼 물을 가두고 돌아가는 바다(일명 엄마의 바다)가 나오는데, 손발을 담그고 돌탑을 쌓으며 놀기에 안성맞춤이다. 길이 시작되는 지점에는 해당화가 멋스럽고, 끝나는 지점에는 팔각정자가 달콤한 휴식을 제공한다.

지금에야 관광명소로 발돋움 했지만 원래 이곳 오솔길은 군인들이 초소로 향하던 길목으로 쓰였다. 하지만 군인들이 철수하고 길은 흉물스럽게 변해버렸다. 이때 죽변면이 나섰다. 오현정 죽변면 부면장은 공공근로자 2명을 이끌고 오솔길 정비에 나서 2008년 2월 마무리지었다. 대나무를 정리하고 길을 만들자 운치 있는 코스로 변모했고, 이 길이 1박2일이라는 연예프로그램에 소개되자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특히 주민들의 반응이 좋았다. 우범지대로 변할 우려가 있던 길이 면 직원의 아이디어로 관광명소로 새 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포항에서 연인과 함께 왔다는 김홍일(32) 씨는 "길이 참 소담스럽다"며"연인과 손을 잡고 걷다 보니 대나무 향취도 좋고, 탁 트인 동해의 풍광도 멋지다"고 말했다.

오 부면장은 "자칫 버려질 뻔 했던 공간이 작은 아이디어 하나로 관광명소로 되살아났다"며 "앞으로도 주민과 관광객이 즐길 수 있는 자투리 공간을 찾아 현대적 감각에 맞게 변화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성주·정창구기자 jungcg@msnet.co.kr

울진·박승혁기자 ps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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