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랑 산사람] 강원도 청태산

입력 2011-01-20 14:12:16

대미산 능선 휘감은 상고대 비경 어느 진경산수화가 이보다 좋으랴

오대산에서 시작하여 계방산(1,577m)과 보래봉을 솟구쳐 서진하던 차령산맥은 흥정산과 태기산을 지나면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청태산을 일으킨다. 여기서 남서쪽으로 백덕산이, 남동쪽으로 대미산, 덕수산, 장미산이 이어지고 이 산줄기를 따라 평창강이 남동쪽으로 길게 흐른다.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과 평창군 방림면의 경계에 솟은 청태산은 해발 1,200m의 준봉이다. 태조 이성계가 '푸르고 웅장한 산세에 놀랐다'는 의미로 청태산(靑太山) 휘호를 하사했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청태산을 오른 후에 그 덤으로 오를 대미산(大美山)은 높이가 1,232.4m로 청태산보다 오히려 30여m 더 높다.

◆차령산맥이 일으킨 산 이성계도 감탄

이름 없는 산이 주는 즐거움은 기대와 호기심이다. 산행의 시작은 10만 분의 1 지도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는 영동1호 터널 입구의 '숲체원' 간판이 있는 곳. 영동1호 터널은 2001년 영동고속도로 둔내터널이 개통되기 전까지 청태산을 통과하는 해발 895m에 위치한 터널로, 대관령(832m)보다 더 높다. 그러나 이제 옛날의 영화는 사라지고 터널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쳐 통행까지 금지했다.

강원도 오지산에서 마주한 설경. 근래에 이처럼 아름다운 눈꽃과 상고대를 본적이 있었던가. 소백산과 치악산 인근을 지나며 바라보았던 설경은 이제 더 이상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다. 어린 시절 꿈꾸었던 동화 속 풍경보다도 더 아름다운 경치가 두 눈을 사로잡는다. 헐떡이며 고개를 오르는 버스 기사도 눈꽃 풍경에 잠시 노고를 잊는다. 환상적인 설경에 감탄사를 내뱉으며 터널 왼쪽 산길로 접어든다.

10분여 정도 올랐을까. 폐쇄된 초소 건물이 보이고 곧이어 백덕지맥 주능선으로 연결된다. 백덕지맥은 영월지맥인 태기산 남서쪽 1.3km에서 분기하여 남쪽으로 뻗어 내려가며 양구두미재, 청태산, 오봉산, 문재, 백덕산, 신선바위봉, 다래산을 넘어 주천강과 평창강의 합수점까지 이어지는 약 55km 산줄기를 말한다. 길은 생각했던 것보다 순하다. 부드러운 여인의 허리선 같은 흙길이 울멍줄멍한 봉우리를 거치며 이어진다. 등산로의 체감온도가 영하 10℃를 밑돌지만 설경에 도취돼 추위마저도 잊는다. 청태산 6등산로가 있는 안내판을 지나자 곧 헬기장인 1,011m봉에 도착한다. 청태산자연휴양림이 있어서 그런지 이정표가 잘 정비돼 있다. 앞사람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길이라 길을 잃을 염려도 없지만 청태산 정상까지는 아직도 2.8km를 더 가야한다.

◆산허리 휘감은 상고대 물결 황홀

애써 오른 봉우리에서 10여 분을 내려서자 또 한 번 헬기장이다. 남쪽으로는 오늘 목표인 청태산이 너풀거리는 운해 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뼈대처럼 드러낸 지능선의 산허리 부근부터 휘감아 오른 하얀 상고대가 눈부시듯 아름답다. 그 아래로는 영동고속도로와 청태산 자연휴양림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뒤로 산 너울이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낸다.

청태산까지 연결되는 등산로는 '묵언의 길'이다. 능선을 오르내리면서 감상하는 비경이 침묵을 강요한 게 아니라 전국을 휩쓸고 있는 구제역 파동이 침묵을 강요했는지도 모른다. 구제역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분투하는 축산업 종사자들의 한숨이 하얀 서릿발의 상고대로 피어난 것은 아닐까. 평창군내 국도와 지방도로에는 아예 차량통행을 금지하는 곳도 있다.

각종 포털사이트에 소개된 청태산의 정보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 1시간 30여 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는 등산시간이 2시간 넘게 소요되었다.

힘들게 오른 만큼 보람도 크다. 청태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파란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먼저 온 일행들이 상고대와 주변의 경치를 카메라와 눈에 넣기 바쁘다. 동쪽으로는 가야 할 대미산과 주변의 능선이 하얀 소복처럼 빛나고 남서쪽의 아래에는 하산 지점인 대미동이, 그 너머로 저 멀리 백덕산이 외지인들을 반갑게 맞아준다.

15분여 가파른 길을 내려서니 참재다. 중도에 대미동으로 하산할 수 있는 첫 번째 탈출로가 있는 곳이다. 대미산까지는 아직 1.5km가 남아 있어 30여 분은 더 올라야 한다.

힘들여 오른 대미산 정상은 넓은 공터였다. 기념 촬영을 하고 바쁜 걸음으로 600여m 진행하니 '덕수산'과 '움트골 3.4km'를 가리키는 갈림길이 나온다. 덕수산 가는 길에는 갈 길이 먼 등산로라 그런지 발자국이 없다. 진입로를 나무로 막아놓고 혹시나 발생할 안전사고에 대비한다. 90° 꺾인 우측 길을 한참 내려서니 또 하나의 이정표(움트골 2.3km, 대미산 1.7km)가 반긴다. 이정표 표지목에 움트골은 직진을 표시하나 그대로 따라서는 안 된다. 등산 중 가장 주의해야 할 지점이다. 지능선에서 우측으로 뚝 떨어지면 어지러운 임도가 나타나고 움트골에 도착하게 된다.

◆휘닉스파크 등 곳곳에 즐길거리도

대미동 마을이 보일 때쯤 고랭지 채소밭 사이에 한 그루의 소나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연리목처럼 사랑을 갈망하는 것일까. 몇 컷 인증샷을 찍고서 조금 내려서니 하산 지점인 동산교다. 다리 건너에는 대미산 등산로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아쉬운 듯 뒤돌아본 대미산 머리 위에는 하얀 상고대가 빛난다. 약 10km의 거리에 4시간이 소요되었다.

둔내와 평창 일대는 원래 눈이 많이 내리는데다가 해발 고도가 높아 내린 눈이 봄이 되도록 녹지 않는다. 그래서 그럴까. 청태산과 대미산 주변은 겨우내 눈부신 설경을 간직하고 있다. 산기슭에 자연휴양림이 조성돼 있어 겨울의 낭만을 만끽하기에 안성맞춤이고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95년 12월에 문을 연 휘닉스파크 리조트가 있어 스키도 즐길 수 있다.

이처럼 운치가 빼어난 겨울 산을 소수만 즐긴다는 점이 아쉽다. 온통 하얗게 뒤덮인 풍경은 한 폭의 동양화가 부럽지 않지만 보아줄 사람이 많이 없어 더욱 슬픈지도 모른다. 여름에는 야생화와 산나물이 많이 나는 '자연의 보고'라고 하니 이만한 산이 어디 흔할까.

산악정보 사이트의 청태산 자료와 소요시간은 100% 신뢰해서는 안 된다. 오지의 산이라서 이곳을 드나드는 산꾼들은 보통의 등산객과는 많이 다른 고수들이기 때문에 등산시간을 30분 정도 늘려 잡아야 한다.

돌아오는 여정에 찐빵으로 유명한 안흥에서 가벼운 먹을거리를 사오는 것도 좋을 듯하다.

◆교통= 대구~춘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만종JC에서 강릉 방면으로 진행, 둔내 IC 나들목에서 나와 둔내방향 6번 국도를 탄다. 이후 청태산자연휴양림 이정표를 따라 진행한 뒤 둔내터널 위 영동1터널 입구에서 정차해 등산 시작. 평창군 방림면 대미동 동산교로 하산한다.(대형버스 진입함) 구제역 방역작업으로 일부 지방도를 통제할 수 있으니 사전에 확인할 것. 하산지점에는 매점과 먹을거리가 없다. 돌아오는 길에 안흥에서 찐빵 시식 및 구입이 가능하다.

글'사진 지홍석 san3277@hanmail.net

(수필가'산정산악회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