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인력, 추위와 싸움…축산농, 공포와 전쟁

입력 2011-01-20 10:42:03

대구 연경동 표정…영하 11도 밤샘 매몰, 30여 가구 두문분출

19일 오후 구제역이 발생한 대구 북구 연경동에서 방역차량이 마을을 돌며 소독작업을 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19일 오후 구제역이 발생한 대구 북구 연경동에서 방역차량이 마을을 돌며 소독작업을 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대구에서 구제역이 첫 발생한 북구 연경동은 19일 오후 인적이 끊긴 듯 유령도시를 연상케 했다. 골목은 텅 비어 있었고 희뿌연 소독약을 뿌리는 방역 차량만이 오갈 뿐이었다.

집집마다 대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가게도 손님을 외면했다. 가게 주인은 "3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에 덮친 재앙이 동네 사람들을 변하게 만들었다"며 "모두 외출을 삼가고 사람을 기피하게 됐다"고 한숨지었다. 구제역이 몰고 온 공포와 걱정 탓이었다.

다른 한 주민은 "구제역 원인을 모르는 상황에서 괜한 말을 했다가 오해를 살 수 있어 모두 입을 다물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며 "조금 있으면 설인데 자식들에게 고향에 오지 말라고 할 생각"이라고 했다.

축산농가들은 사람을 더 경계했다. 방역하는 공무원도, 마을 입구 약수터에 물을 뜨러 온 외지인들도 모두 경계의 대상이었다. 구제역이 언제 자신들의 소들을 덮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 농장주는 "외부인들이 자꾸 돌아다녀서 구제역이 터진 것 아니냐"며 "어제 살처분 현장에 있었던 공무원도 계속 마을을 돌아다닌다. 다들 빨리 마을에서 나갔으면 좋겠다"고 화를 냈다.

이곳에서 30년 넘게 소를 키우고 있다는 정한필(61) 씨는 "어제 살처분한 농장 주인과 동네 사람들 모두 한가족이나 다름없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이 났다"며 "언론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구제역은 다른 동네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실감이 안 난다"며 허탈해했다.

구제역 방역에 동원된 사람들도 방역작업뿐 아니라 추위와 싸우느라 이중고를 겪고 있다. 수의사 구건룡(48) 씨는 살처분 작업을 회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최저기온이 -10.8℃를 기록했던 18일 대구를 덮친 구제역 때문에 구 씨는 밤새도록 살처분 작업에 임해야 했다.

그는 "안락사 주사를 놓아야 매몰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데 주사기가 얼어붙어 작업이 더 길어졌다. 생명을 죽이는 것도 고통스러운데 추위가 우리를 더 힘들게 한다"고 말했다.

대구 북구청 공무원 K(53) 씨는 "어제 오후 5시부터 밤새도록 현장에 남아 방역 작업을 했다. 대구로 구제역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 달 동안 휴일도 없이 일했는데 이제는 추위까지 우리를 괴롭힌다"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공무원 L(31) 씨도 "어제는 소독약이 얼어서 핫팩으로 약품통을 감싸고 있어야 했다. 구제역도 버거운데 추위와 동시에 사투를 벌이니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며 힘겨워했다.

더 힘든 것은 차가운 땅에 아우성치는 소를 파묻는 일이다. 방역요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는 소를 바라볼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린다고 했다. 이날 소 110마리를 매몰한 굴삭기 기사 이우석(48) 씨는 "소를 땅에 파묻을 때 가슴이 너무 아파 바라볼 수 없었다"며 "앞으로 추가 작업이 있다고 해도 다시 참여하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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