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투표의 함정

입력 2011-01-19 10:47:39

초등학생 시절 학급회의의 끝은 대부분 투표였다. 학생들에게 자신의 뜻을 밝히고 다른 이의 생각을 듣게 만드는 한편 다수의 뜻에 따르는 훈련을 시키고자 함이 목적이었다. 나름 진지했지만 간혹 엉뚱한 안건도 있었다. 여름철 따가운 햇볕과 겨울의 매서운 찬바람을 막기 위해 창문에 커튼을 달자는 제안이 나왔다. 누구나 반대할 일이 아니었고 투표 결과는 찬성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학교에서는 커튼을 달아 줄 형편이 아니라고 했다. 십시일반 돈을 걷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육성회비조차 제때 못 내던 학생들에게 커튼 값 추렴은 어림없는 일이었다. 격식을 갖춘 절차에 효과적인 결론을 냈지만 회의 결과는 흐지부지됐다. 투표는 만능이 아니었다. 공허한 결론으로 끝나는 일도 많았다. '착한 사람이 되자' '공부를 열심히 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었지만 실천이 담보가 되지 않는 일은 투표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었다.

서울시와 서울시의회가 무상 급식 전면 실시를 놓고 힘 겨루기를 계속하고 있다. 하자는 쪽이나 문제점을 지적하는 쪽 모두 일리가 없지 않지만 양측 주장은 평행선을 달릴 뿐이다. 무상 급식을 주민투표로 결정하자고 제안하려던 서울시가 계획을 무기 연기키로 했다. 시의회가 주민투표 동의안을 즉시 처리하지 않고 무한정 끌면 소모적인 갈등과 혼란만 깊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대신 서명운동을 통한 주민의 발의를 기대하는 눈치다.

무상 급식은 과연 주민투표로 결정할 사안일까. 주민들의 입장에서야 공짜로 아이들 점심을 해결해 준다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점심값이 세금에서 나온다지만 세금은 그 다음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공짜 점심을 먹일 돈이 있는지 그럴 경우 무슨 문제가 일어날지를 시민들이 제대로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국가와 자치단체 살림을 맡은 이들이 서로 자기들의 주장이 옳다며 심판을 맡긴다면 자신 있게 판단할 시민들이 얼마나 될지 모를 일이다.

투표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개개인의 공통분모를 찾는 일이다. 그래서 투표권은 신성하다고 한다. 그러나 투표의 결과는 반드시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투표에는 감정과 호불호가 끼어든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일에는 후유증도 남는다. 무상 급식의 문제는 과연 찬반 정치의 영역일까.

서영관 논설실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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