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두고 있는 구글 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우연히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의 집무실을 잠시 들렀다. 사장은 오전 11시에 출근해 퇴근시간이 대중없고 오후 11시 전후에 나가기도 했다. 집무실은 10여 명이 들어가서 회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좁았고 양쪽 벽을 등지고 2개의 책상이 하나씩 놓여져 있었다. 수시로 운동을 할 수 있는 실내자전거와 세 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는 소파 하나뿐. 누가 봐도 미국의 젊은이들 누구나가 근무하고 싶어 하는 세계 굴지의 기업 창업자 집무실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검소했다. 창업자 두 사람이 한 사무실을 쓰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벤처 회사를 새로 차린 후 자금이 달려 겨우 꾸려나가는 작은 창업자 방이 이러할까.
외국 생활을 오래한 뒤 한국에 와 특별하게 느끼는 차이점은 조찬 모임 문화다. 미국에서는 거의 모든 중요 행사는 조찬 모임이다. 조찬 모임이다 보니 술잔이 오고 갈 일이 없고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강한 2차, 3차 연장전이 없다. 이른 아침이다 보니 회의도 짧다. 서양에서 저녁 모임이 적은 것은 '아무리 누추해도 내 집만한 곳은 없다'라는 철저한 가족 중심의 생활이 오래전부터 배어 있기 때문이다. 저녁 약속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잡지 않고 저녁 초대를 받아도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필요악으로 치부되는 2차, 3차 접대가 필요없으니 기업의 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서양의 더치페이도 기업경영에서 중요한 대목이다.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갈 경우 어김없이 자기 것은 자기가 낸다. 맥주집에서도 같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지만 자기 것은 자기가 주문해 가지고 오니 공짜 술에 취해 흥청망청 먹고 속 쓰릴 일도 없다. 어찌 보면 삭막한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자기가 알아서 먹을 만큼만 주문하니 돈을 물 쓰듯 할 일이 없고, 누가 같이 점심먹자고 해도 부담이 없다. 얻어먹는 사람도 크게 고마워하지 않지만 여러 사람 몫을 내는 사람의 부담은 적지 않다.
선물 문화도 판이하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 주정부 공무원은 50달러 이상의 선물을 받으면 신고를 해야 한다. 그 물건이 탐나면 돈을 주고 사가야 한다. 최근 5천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이 나온다고 하는데 50달러가 넘으면 필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물로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응접실, 임원실, 비즈니스 미팅, 더치페이, 조찬 모임, 선물 문화 등은 모두 만남과 관계가 있다. 위의 사례들처럼 만남의 경제적'사회적 비용은 국가와 도시마다 다르다. 만남과 관련한 비용이 이처럼 높은 것은 단순히 기업의 비용이 증가하는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결국은 만남을 피하고 소통이 경색되는 사회적 비용의 문제로도 볼 수 있다. 기업 비용의 증가뿐만 아니라 소통의 부재로 이어진다면 이는 큰 문제가 아닌가. 많은 기업이나 조직에서 우리 회사의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대답이 팀간 부서 간 소통이 적다는 것이다.
소통의 길을 넓히고 우리가 하루빨리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결코 거창한 곳에서 시작할 필요가 없다. 상식이 통하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비용을 줄이고 고쳐나가는 데서 시작하면 된다. 풍족한 연봉이나 인센티브, 적극적인 R&D투자, 우수한 신제품 개발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기업과 사회 전반에 끼어 있는 거품을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면 기업의 비용도 사회적 소통의 문제도 해결돼 기업 경영의 효율과 사회의 정신적인 건강행복지수가 올라갈 것이다.
그래서 금년 한 해는 각 기업마다 사치스런 집무실을 줄여 회의실로 개조하고 고객 접대라는 명목으로 집에는 자정이 넘어 들어가는 접대 관행도 조찬 모임으로 바꾸어나가면 좋겠다. 회사 동료나 친구 모임에서도 더치페이 문화를 정착시켜 필요없는 소비를 줄이자. 고객용으로 선물을 준비해야 하고 또 받지 않으면 허전해하는 문화도 바꾸어보자. 합리적 소비와 지출을 해나간다면 만남에 대한 경제적 부담도 적어질 것이다. 막혀 있던 소통의 통로는 시원하게 뚫려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아이디어가 강물처럼 흐르고, 이것이 도시의 분위기마저 바꾸어 나갈 것이다. 사회적 비용도 줄이고 건강도 챙기는 일거양득이 아닌가. 선진국의 문턱은 일인당 GDP가 높은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될 일이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넘어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공짜 문화를 너나없이 줄여나가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투명경영 공정사회의 출발은 바로 이런 작은 만남의 문화, 생활습관의 변화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기업과 사회의 발목을 잡는 거품을 빼는 계기를 대구경북에서부터 시작해보자.
김태형(엑스코 경영·사업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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