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광장] 왜 지금, 다시 공동체인가

입력 2011-01-18 10:54:23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누구와 뭔가를 공유하는 것이 참 낯설다. 특히 가족이나 특별한 친구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의 공유는 더욱 그러하다. 자본주의 틀 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는 성인이 되면서 온전한 '내 것'들을 소유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내 집, 내 일, 내 돈. 이 사회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할 '내 것'이었다.

한두 살 나이를 더 먹은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훨씬 많은 내 것들이 생겼다. 노후 대비 연금도 준비하고 있고, 직장도 있고, 이전보다 집값이 더 비싼 동네로 이사를 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하지가 않다. 노후를 대비한 연금은 넣으면 넣을수록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고,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그만두면, 돈도 돈이지만 누구와 무엇을 하며 긴 하루를 보낼지 걱정이 된다. 애써 이사한 지금 동네는 주변에 신개발지가 생기면서 점점 생기를 잃고 있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 지는 오래여서 간혹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어른이나 동생들을 치한으로 오해해 떨며 긴장하기도 한다. 많은 것을 갖추었지만, 나는 여전히 외롭고, 세상이 참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부터 내가 일하고 있는 연구원에서 공동체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면서 공동체적 지역사회는 거의 해체되었다. 그런데 다시 공동체였다. 이름하여 '대구경북지역문화공동체 연구회'.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유형의 공동체 활동가들과 지역의 공무원, 연구자 등이 모여 지역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공동체 활동에 대한 점검과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이다.

이 모임을 통해 최근 들어 우리 지역에서도 문화, 경제, 정치 등 다양한 유형의 공동체들이 생겨나고, 다수의 활동가들이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작지만 큰 걸음을 내딛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살맛 나는 지역사회 만들기이다. 살맛 나는 사회란 내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뛰어놀 수 있고, 이웃사람 누구나 함께 이야기할 수 있으며 동네 구성원들의 의견이 수렴되어 소외되는 사람 없이 마을이 존속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누군가는 아이들의 말과 글에 노래를 붙여 살맛 나는 마을 만들기에 동참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엄마들의 힘을 모아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마을 도서관을 만들기도 했다. 또 누군가는 마을 사람이 주체가 되는 방송국을 운영하기도 하고, 자신의 예술적 소양을 마을 사람들과 나누기도 했다. 이들의 활동은 급속한 변화에 민감한 내가 보기에 다소 느리고 답답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그 속에 있는 그들은 안전하고 행복해 보였고, 또한 그렇다고 굳게 믿고 있다. 과연 무엇이 이들을 움직이고 있는가.

크고 작은 공동체가 늘어나는 것은 시대적 필요이다. 개인이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믿던 초기 자본주의에서는 공동체가 급속히 해체되었다. 그런데 지금 다양한 유형의 공동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최근 등장한 창조도시(Creative City), 사회자본(Social Capital), 사회도시(Social City), 슬로시티(Slow City) 등은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시대적 위기 의식 속에서 나타난 개념들로 근저에는 공동체 실현을 통한 지역사회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 개인의 풍요가 아닌 공동체적 관심과 실현이 화두이다. 그들은 산업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불안과 소외를 공동체에서 해결하고자 한다.

실제로 어떤 목적이든 공동체 활동을 경험한 사람들, 특히 그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느낀 사람들은 그 활동이 너무 재미있고 힘이 되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힘든 것도 많지만, 사람 간의 연대, 협동의 과정을 겪으면서 얻어지는 친밀함과 성취는 더 이상 이 사회에서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한다고 한다. 이 작은 행복 속에서 사람이 변하고, 마을이 변하고, 지역이 변하는 것이다.

어떤 물질적 풍요로도 채워지지 않아 부족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혹자는 충분하지 않아서라고 하겠지만, 내가 경험컨대 그것만은 아니다. 뭔가 부족하고 모자란 것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생활하고 있는 공간부터 하나 둘 변화하고 행복해진다면 그 속에 있는 나도 결국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다시 '내 것'에서 '우리 것'으로 살아봐야 될 듯하다. 지금.

김성애(대구경북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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