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강의 도시를 만들자] <4>라인강 운하 출발점, 스위스 바젤항

입력 2011-01-17 08:00:49

알프스 끝자락 작은 내륙도시가 '스위스 수·출입 수도'로

스위스에 바닷길을 열어준 바젤운하. 바젤운하는 스위스 물동량의 30%를 차지하는 등 경제 성장에 상당한 역할을 맡고 있다. 하루 수십여 척의 바지선이 오가는 바젤항 전경.
스위스에 바닷길을 열어준 바젤운하. 바젤운하는 스위스 물동량의 30%를 차지하는 등 경제 성장에 상당한 역할을 맡고 있다. 하루 수십여 척의 바지선이 오가는 바젤항 전경.
바젤항을 드나드는 배들.
바젤항을 드나드는 배들.

인간이 강을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등장한 존재가 '운하'다.

자연의 물길을 사용하다 중세 이후 땅을 파고 물길을 내거나 강을 인위적으로 개조해 운하를 만들기 시작했다. 현 정부가 '한반도 대운하' 카드를 꺼내들면서 찬반 양론이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를 휘두르고 지나갔다. 정부가 '운하'를 포기하면서 숙지기는 했지만 아직 '여운'은 상당하다.

유럽은 운하의 나라다. 각 국가를 연결하는 라인강과 다뉴브강 등 주요 강마다 화물선과 유람선이 다니고 북해와 흑해가 내륙 운하로 연결돼 있다. '환경 파괴'와 '효율적 물류 수송'이란 양면이 아직도 맞서고 있지만 운하는 유럽 경제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2차 대전 이후 폭격으로 상실된 도로와 철도를 대신해 독일의 물류 수송을 대신한 것이 라인강이고 이는 '라인강 기적'의 바탕이 됐다. 라인강 운하가 출발하는 스위스 바젤슈타트주의 주도인 바젤을 찾았다.

▲내륙 산악 도시 스위스에 바닷길을 열어준 운하

알프스에서 발원한 라인강이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독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스위스 바젤. 프랑스와 독일, 스위스 3개국 국경이 맞닿은 이곳은 국제 금융 결제원인 BIS가 있고 노바티스(Novartis)와 로슈(Roche) 등 다국적 제약회사가 있는 국제도시다.

알프스 끝자락 작은 내륙 도시가 국제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 중의 하나가 된 것이 운하다. 라인강의 출발점인 스위스 제 2의 도시 바젤에서 출발한 바지선들은 독일과 네덜란드를 거쳐 북해로 진출한다.

지난 12월 찾은 바젤시 항구. 눈발이 날리는 추운 날씨지만 각종 화물을 실은 바지선들이 끊임없이 운하를 오가고 있었다.

바젤항이 스위스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원유와 철강 등 각종 원자재의 80%가 라인 운하를 통해 바젤로 들어오고 생산된 제품들은 내륙 운하를 통해 네델란드 로테르담 항구까지 운송된다. 또 스위스와 인접한 프랑스와 독일 국경 도시들의 물동량도 라인항이 담당하고 있다.

라인항에 근무하는 미셀 판 씨는 "3곳의 선적장으로 들어오는 바지선들은 짧게는 30~40km에서 길게는 1천km 이상을 운항해 네덜란드까지 운항하고 있다"며 "산악 국가인 스위스 입장에서는 인근 국가뿐 아니라 바다까지 연결해주는 대동맥"이라고 설명했다.

40척의 대형 바지선이 동시 선적을 할 수 있는 바젤항은 3개의 부두로 하루 평균 30~40척 이상의 배들이 끊임없이 오가고 있다. 특히 프랑스와 이어지는 A-3 및 독일을 잇는 A-5 고속도로와 철도가 바젤과 연결돼 있어 물류 수송에 있어 최적의 요충지 위상을 점하고 있다.

바젤이 국제 항구 도시가 된 것은 19C 독일 정부가 시작한 라인강 대토목 공사가 시발점이다. 독일 정부는 매년 봄철이면 일어나는 홍수로 라인강이 범람하는 것을 막고 선박운항을 위해 지난 1813~1876년까지 1차로 라인강 상류인 스위스 바젤부터 독일 빙엔까지 340km에 운하를 건설했다. 현재 전장 812km인 라인강은 바젤-빙엔간의 상류와 빙엔-본간의 중류(1백27km) 그리고 본-네덜란드간의 하류(345km)로 구성돼 있다. 당시 독일은 운하를 건설하면서 강 양편 3~4km의 습지를 개간, 강폭을 1km로 줄이고 높이 12~14m의 둑을 쌓았다.

또 라인강 인접 국가들은 1815년 자유로운 항해를 보장하는 빈 조약을 체결했으며 이때부터 라인강은 국제 하천으로, 본격적인 뱃길로서의 기능을 갖추게 됐다. 이후 산업혁명과 맞물려 물류 수송이 늘면서 바젤은 섬유와 공업을 근간으로 공업 도시로 성장을 거듭했다. 하류 도시인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 독일의 뒤스부르크, 마인츠 등 라인 강의 본류와 지류를 따라 형성된 공업 도시들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운하

유럽의 운하망은 본류와 지류를 합하면 총 3만5000㎞에 이르며 2천t이 넘는 바지선 1천여 척이 운항을 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운하는 라인강과 다뉴브강을 따라 만들어진 뱃길이다. 2차 대전 이후 패전 독일의 부흥을 이끌어낸 원동력이 된 라인강 운하는 스위스와 독일 네덜란드까지 총 연장이 3천500km에 이르며 독일과 오스트리아, 헝가리, 루마니아를 통과해 흑해로 들어가는 다뷰브강 운하는 길이가 4천200km에 달한다.

또 독일과 폴란드, 체코를 흐르는 운하(3천km)와 프랑스와 벨기에를 흐르는 센강과 론강을 따라 만들어진 운하의 연장은 1천200km 정도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프랑스의 최대 항구인 르아부르에서 파리를 거쳐 로테르담 항구에 이르는 6개 도시를 연결하는 센-쉘트운하가 2013년까지 준공을 목표로 건설 중에 있다. 프랑스는 현재 650t급 바지선이 운항하는 운하를 4천500t급이 다닐 수 있도록 확장하고 있으며 운하를 통한 프랑스 물동량은 1997년 이후 40% 증가하고 있다. 또 독일은 운하와 관련된 산업에 40만 명 이상이 종사하고 있으며 유럽연합 전체로 볼 때 석유 및 화학 제품 등 위험 물질의 80%를 내륙 운하가 맡고 있다.

수에즈운하나 대서양을 건너온 화물들이 그리스나 이탈리아, 스페인이 아닌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의 항구를 이용하는 것도 내륙 운하가 있어 가능하다,

네덜란드는 내륙 운하의 화물 운송 비중이 30%를 넘고 있으며 독일과 벨기에도 전체 화물운송의 각각 13%씩을 내륙 운하가 맡고 있다.

바젤항 관계자는 "2015년까지 EU국가들의 내륙 운하는 해마다 3~7% 정도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며 "항공이나 육로 수송에 비해 물류비가 적게 들고 가장 안전한 운송 수단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밝혔다.

▶운하개발에 따른 환경 파괴

운하는 경제 부흥에 상당한 역할을 해 왔지만 필연적으로 생태파괴란 후유증을 가져왔다

원래 라인강은 수많은 지류로 갈라져 있고 구불구불한 형태의 자연 하천이었지만 준설을 통한 직강화로 거대한 '하천 고속도로'의 모습으로 변했다.

바젤까지 배가 들어올 수 있도록 깊이 2m, 폭 75~100m의 수로를 만들면서 홍수를 막는 습지의 85%가 사라졌고 라인강 길이는 100km 짧아졌으며 강의 유속도 3분의 1가량 증가했다. 빨라진 유속은 강 바닥을 쓸어내려 강 수위가 내려가기 시작했으며 강 연안 숲과 나무들이 물공급을 제대로 못해 고사되는 등 황폐화가 시작됐다. EU 조사에 따르면 직강화 공사로 라인강 전역 중 98%가 개발됐고 불과 2%만이 원래의 생태계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다.

특히 홍수 예방을 위한 하천 직강화 공사는 오히려 대규모 홍수를 불러왔다.

라인강 인접 국가들이 30년 이상 걸리는 '라인강 홍수터 복원' 사업에 착수한 것은 이 때문이다.

1950년부터 '라인강 보호를 위한 국제위원회(International Commission for the Protection of the Rhine·ICPR)를 구성해 공동의 하천 관리를 모색해온 라인강 인접 국가들은 1996년 '친환경 홍수 방어'와 '자연에 가까운 홍수터 복원'을 목표로 IRP(Integrated Rhine Program·통합라인프로그램)를 수립했다.

이 프로그램으로 라인강의 옛 물길을 복원해 지류와 본류를 다시 연결하고, 제방을 바깥쪽으로 후퇴시켜 홍수 시 넓은 침수 면적을 제공해 유속을 저감하는 방안이 추진됐다.

인공적인 수로와 준설로는 홍수를 다스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강에게 더 많은 공간을 돌려주는' 하천 관리의 전환이 시작된 것. 라인강 보호 위원회는 2005년까지 홍수터 25㎢을 복원키로 한 목표를 초과 달성해, 2020년까지 160㎢의 강 주변의 땅을 확보해 홍수터를 복원할 계획이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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