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청송의 600년 기적

입력 2011-01-15 09:00:00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아니라 암벽벽해(巖壁碧海)입니다."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을 표현할 때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 됐다'(상전벽해)고들 한다. 경북 청송의 한 마을이 그러했다. 경북에서도 '육지 속 섬'으로 불렸던 청송. 그 청송에서도 오지로 통했던 곳이 청송 부동면 항리의 속칭 '얼음골'과 '원굴리' 일대다. 청송~영덕을 연결하는 꾸불꾸불한 도로를 따라 산허리를 굽이굽이 돌면 만나게 되는 얼음같이 추운 곳, 항리. '원굴리' 마을 이름이 '조선조 시절 고을원이 말 타고 가다 길이 너무 험해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지역은 오지 중 오지였다.

바로 이곳에서 구제역의 악재 속 지난 7~9일까지 3일 동안 조선 세조 5년(1459년) 때 처음으로 '청송'이란 이름으로 도호부가 설치된 이후 600년 만에 가장 많은 나라의 대표들이 모였다. 불과 50여 명의 주민이 사는 이곳에 한국을 비롯해 25개국 대표 남녀 120명이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함께했다. 정확히 말해 이들은 오히려 칼바람 추위를 즐기러 왔던 것이다. 관람객들도 매일 수천 명 다녀갔다고 한다.

미국, 러시아, 루마니아, 오스트리아, 중국, 일본, 이집트 등 미주'유럽'아시아'아프리카 등 전 세계 젊은이들이 먼 낯선 땅 청송을 찾은 것은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참석 때문이었다. 이 월드컵은 국제산악연맹이 매년 주관해 여는 최고 권위의 대회.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청송에서 열렸고 앞으로도 4년간 더 열리게 돼 있다.

'대한민국 촌구석' 항리 얼음골'원굴리의 변신은 배울 만했다. 찾는 사람 없던 이곳은 천혜 자연환경에 민'관(民官)의 정성이 더해져 이제 겨울스포츠의 세계적 명소로 도약하려 하고 있다. 관광 명소를 만들기 위해 2002년 인공 폭포를 조성하고, 2004년 겨울철 빙벽이 만들어지자 1994년부터 이곳에서 수부정(水浮亭)이란 식당을 해오던 주민 김필상 씨가 밤낮없이 물과 얼음 관리에 나섰다. 그때부터 여름엔 인공 폭포로 더위를 식히려는 손님들이, 겨울에는 빙벽과 빙벽대회 관람 인파가 철마다 10만여 명이 찾는다고 한다. 한동수 청송군수는 외국 언론인에게 청송의 곳곳을 보여주며 직접 안내 책자 원고를 부탁했을 정도였다. 앞으로 변신을 거듭할 청송 얼음골'원굴리의 새 역사가 기대된다.

정인열 중부본부장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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