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새물결 '트레이딩업'…고가 명품도 지름신 팍팍

입력 2011-01-15 09:00:00

직장인 윤지영(34) 씨는 점심식사 가격으로 한 끼에 5천원을 넘게 지출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식후 커피전문점에서는 거의 점심 한 끼 값과 맞먹는 커피를 꼬박꼬박 마시기를 거르지 않는다. 동료들도 거의 윤 씨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에게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문화인 것이다. 하지만 세제나 휴지 등 생필품을 살 때는 10원의 차이까지도 꼼꼼히 따지는 것이 윤 씨의 소비 습관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깐깐하게 따지고 비교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지만 윤 씨는 "가치를 두지 않는 물건에는 한 푼이라도 지출을 줄이는 것이 합리적 소비"라고 강조한다.

◆명품의 가치를 존중하는 30대

유통업계 신주류층으로 떠오른 30대를 중심으로 '상향구매'로 정의되는 '트레이딩업'(trading up)과 '하향구매' 경향인 트레이딩다운(trading down)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상향구매'로 직역할 수 있는 '트레이딩업'은 중저가의 상품을 주로 구매하던 중산층 소비자들이 소득이 늘어나면서 '감성적 만족'을 위해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고가의 명품을 기꺼이 구입하려는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고소득층이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고가의 명품들을 선호하는 현상과는 달리, 중산층들이 매스티지급의 럭셔리 상품을 필요에 따라 구매하는 성향을 가리키는 것.

이 같은 트레이딩업 현상은 실제로 백화점 명품 매출분석에서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롯데백화점이 지난 한 해 동안 대구점과 상인점을 이용한 지역의 명품 구입 고객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연령대가 40, 50대일 것이라는 통념을 깨고 30대가 40%로 1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는 20대가 28%를 차지하면서 명품 구매에서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40대와 50대는 각각 17%와 12%로 나타났다.

백화점 명품 매출의 3분의 2를 20, 30대 젊은 소비자들이 올려주고 있는 셈이다. 가족을 위한 소비를 중시하는 40, 50대 장년층과는 달리 30대의 젊은 층은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상품에는 비싼 가격일지라도 기꺼이 지불하고 적극적으로 구매에 나서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 대구점 해외명품담당 박장수 매니저는 "일반인들의 예측과는 달리 명품시장에서의 소비주도층은 젊은 30대가 주류"라면서 "이들은 우리나라 명품시장이 자리 잡아가는 시기에 10대나 20대 시절을 보냈으며 기성세대들보다는 자연스럽게 명품을 받아들이는 편"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트레이딩업' 현상은 패션·잡화뿐 아니라 식품이나 가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좀 더 품격 있고, 몸에 좋은 제품을 고르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명품'을 강조한 제품들이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서로 다른 소비행태의 공존

자칫 명품이라면 돈을 마구 써 대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는 30대. 하지만 이런 이들에게서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바로 '하향구매'로 풀이되는 '트레이딩다운'이다. 최근 들어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상품에 대해서는 꼼꼼하게 따지고 비교해가면서 조금이라도 저렴한 상품을 구매하는 '트레이딩다운' 현상도 함께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전혀 상반되는 소비 행태가 한 개인에게서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그래서 30대가 '무서운 30대'로 통한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자신에게 특별한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품목에 대해서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깐깐하게 따지고 비교해가면서 조금이라도 더 싼 상품을 찾아다니다 보니 이들의 취향에 맞추는 일이 더욱 힘들어졌다"고 푸념했다. 고가의 의류보다는 저가 의류나 이월상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강하고, 정장 의류 한 벌을 구매하기보다는 블라우스나 스커트 등 단품을 많이 찾고, 스카프 등의 액세서리를 통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해 한 벌로 여러 벌의 느낌을 살리려는 '약은' 소비를 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는 것.

실제로 롯데백화점의 경우 20, 30대 젊은 층이 선호하는 브랜드의 이월상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특설매장 매출은 지난 한 해 동안 평균 25%의 신장세를 나타냈다. 같은 기간 여성복 평균 신장률 11.2%와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 높은 성장세다. 롯데백화점 상인점에 입점한 젊은층 선호 SPA 브랜드(제조·유통 일괄 브랜드)인 '유니클로'의 매출도 지난해 45%가량 크게 늘어나는 등 30대가 명품 매출과 함께 중저가 브랜드 상품의 매출을 견인하는 새로운 소비층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롯데백화점은 이들을 공략할 마케팅 전략으로 기존 유통업계 명품매장에서 애용하던 트렁크쇼, 고객초대회 등 화려한 이벤트 행사보다는 이 세대들이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 등에 익숙하다는 점에 착안해 IT기기를 활용한 버즈(BUZZ) 마케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롯데백화점 대구점 한승훈 영업총괄매니저는 "30대층이 소비시장의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명품은 물론 SPA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감성에 호소하는 마케팅과 함께 이들을 잡아두기 위한 소규모 그룹 모임을 활성화하는 등의 다양한 기법들이 시도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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