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지역 3인 열정의 삶
"어르신 몇 살? 구십 여덟 살, 팔십 일곱 살, 팔십 여섯 살."
100세 시대가 열렸음을 절감한다. 본지 특집부에서는 '60청춘 90환갑'이라는 제목을 달아봤다. 곳곳에서 여든에도 팔팔하게 일하는 이들을 찾아볼 수 있기 있기 때문이다. 구십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히 힘자랑을 하는 노인들이 있으며, 일부 칠순이 넘은 노인들은 은밀한 성생활에 대한 진한 농담도 나눈다. 몇몇 팔순, 구순 청춘들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몇 군데만 수소문하자 이내 놀랄만한 청춘(?)들이 나타났다.
정년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건강수명은 더 늘어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 2020' 공청회를 통해 10년 뒤 건강수명을 75세로 늘린다고 발표했다. 현재 남성 69.7세, 여성 74.2세인 건강수명이 10년 뒤에는 남성 73.2세, 여성 76.6세가 된다는 얘기다. '9988' 구십 구세까지 팔팔하게 사는 지역의 노인들을 만나봤다. 놀랠'노'자가 절로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일 모레 100세, 송복만
송복만 할머니는 올해 방년 98세다. 그러나 일자리가 있다. 달서시니어클럽 직영 한마음한손 공동작업장(달서구 이곡동)에서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쇼핑백을 만드는 일을 한다.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기분이 좋을 때는 '독도는 우리 땅'을 4절까지 또박또박 부른다. 음은 약간의 이탈이 있었지만 가사가 정확했다. '지증왕 13년, 북위 37도, 평균기온 12℃ 등'발음이 유치원생처럼 또렷했다.
"일하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집이 북구 칠곡 읍내동인데 인근에 사는 장래원(78) 작업반장이 항상 출퇴근을 시켜주기 때문에 달서구에 있는 일자리로 가는 시간이 즐겁기만 합니다. 100살, 110살까지 일하고 싶어요. 기자 양반 고맙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시종일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이곳에서 최장수 근로자지만 남들 만큼 일하고, 또 즐겁게 일하는 것으로 따진다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이러다 보니 97세를 보내는 지난해 마지막 날 작업장을 찾은 김범일 대구시장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는 행운을 가지기도 했다.
사실 월급은 많지 않다. 매월 20여만원 남짓 돈을 만진다. 하지만 그 보람은 200만원에 달한다. 평균 나이 70세가 넘는 이곳 작업장에서 일을 많이 하는 이들은 60만원 가까운 수입을 올린다.
2년 전 문을 연 이 공동작업장은 활기가 넘쳐난다. 자동차 부품과 식품관리 용품, 고무 지우개, 쇼핑백 등 4가지 파트로 나눠서 일을 한다. 작업장 벽에는'노풍당당! 빛나는 금빛 인생!', '일하는 100세, 아름다운 실버', '은퇴는 남의 일, 제2의 인생 활짝!'등 일하는 실버세대들을 위한 글들이 넘쳐난다.
달서시니어클럽 류우하 관장은 "노년에 열심히 일할 수 있다는 작업장이 있다는 것은 행복"이라며 "일하고 싶은데 실제 일자리가 없어 돌아가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노인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도 멋쟁이 신사, 정원용
대구에서 점잖은 노인들이 많이 모였다는 담수회에 전화를 해서'60청춘 90환갑'에 걸맞은 인물을 추천해 달라고 하자 올해 우리 나이로 팔십 칠세인 정원용 전 담수회장을 소개해줬다. 11일 기자와 만나러 담수회 사무실로 나왔는데 정정했다. 아니 중절모를 쓴 멋있는 중년 신사의 포스였다. 아직도 힘쓰는 일을 할 법한 카리스마도 느껴졌다.
현재도 직책을 맡고 있다. 김굉필 기념사업회 회장과 담수회 전 명예회장 그리고 아직도 각종 사회단체의 원로 및 고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아직도 정정하며, 의견 개진도 확실하다. 세미나 등에도 참석한다. 신문도 매일 읽는다. 심지어는 아들이 쓴 신헌법 저서도 매일 20쪽씩 읽고 소화할 정도다. 600쪽에 달하는 법전을 보름 정도에 걸쳐 벌써 절반이나 읽었다.
"힘이 닿는 데 까지는 일해야지요. 그리고 가족들에게 아직도 미안할 때가 있습니다. 건국준비위원회부터 각종 사회 단체의 여러가지 일들로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하지 못한 시간들이 아쉽습니다. 지금도 남은 힘이 있다면 이 사회에 돌려주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은 이랬지만 처복·자식복도 많았다. 아내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고 2남 3녀 모두 출가해서 잘 살고 있으며, 친손자 5명, 외손자 4명, 외손녀 1명, 친손녀 1명에다 증손녀·증외손녀 등 후손들 복도 터졌다. 그는 수많은 손주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며, 입학이나 여행 등의 일이 생기면 큰 돈을 용돈으로 챙겨주는 자상함까지 갖고 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보람된 일을 묻자, "이규이 대구시장 때 일입니다. 대구 동촌 쪽에 200여 가구가 철거를 해야 했는데 이 마을을 철거대상에서 제외한 뒤, 시장과 상의해 다시 살기좋은 마을로 만들어 땅값도 오르고 철거민들도 그곳에서 더 좋은 삶을 살게 해 준 일이 있습니다. 당시 매일신문에도 대문짝 만한 게 나왔습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떠냐고 질문을 하자, "건강을 허락해 준 것은 하나님이 내게 준 선물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왔던 경륜을 바탕으로 사회에 더 많은 봉사를 하고 싶으며, 구십 세가 넘어도 사회 활동을 계속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사의 달인, 김유필
1926년 생, 올해 나이 86세의 김유필 교육자는 아직도 이팔청춘이다. 매주 신문 시사상식 코너에 응모하며, 시사상식에 관한 것과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화제에 대해 그 누구보다 발 빠르고, 정확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언뜻 봐서는 78세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젊다. 물론 마인드는 더 젊다.
대구 달성초교·중앙초교 교사, 남부초교·송현초교 교장, 대구교육청 장학사·장학관 등 평생을 교육에 몸담아 온 그는 1992년 정년 퇴임을 한 뒤, 19년 동안 꾸준하게 평생 교육의 연장선상에서 사회 활동을 해오고 있다. 대구교육 삼락회 회장을 거쳐 고문을 맡고 있으며, 각종 교육단체의 공동대표를 거쳐 고문 역할을 해오고 있다.
평생교육 및 한자학습 강사로도 인기가 있다. 아직도 시사에 관한 한 젊은 강사도 그를 당할 수가 없을 정도로 박식하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는 동부화재 사원 교양강좌에 투입됐으며, 대구 희망초교 부설 주부교실 강사, 동구 노인복지회관 교육강사 등을 해오다 지난해부터는 대구노인사회교육원에서 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평생을 배우고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할 수 없다는 법도 없고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많은 혜택을 받고 자란 만큼 죽을 때까지 나눠줘도 모자라지 않겠습니다. 더 베풀고 나누면서 살아야지요."
이런 사고 방식으로 살다보니 지금 나이에도 못할 일이 없다. 지역에서 나오는 일자리 잡지인 '타운 워크'나 동대구 농협 등의 사보에도 글을 싣고 있으며, 퀴즈, 숨은그림찾기, 글쓰기 등 각종 공모에도 참여하고 있다. 가끔 당첨되는 행운은 그에게 삶의 엔돌핀이다.
특별한 건강비법이 있느냐고 묻자, "매일 밤 9시에 자고 다음날 4시쯤 일어나며, 항상 부지런합니다. 아침에는 특별히 춥거나 비나 눈이 오지 않으며 인근 운동장에서 구보 및 맨손 체조를 하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마음은 항상 가볍게 가지며 매일 매일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고 답했다.이들 세 명을 취재하고 나니 문뜩 자문을 해보고 싶었다. "나이가 뭐지?"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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